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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뱉고 쓰고 맛보고 배우고5

생각의 경계를 넘어서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에스키모인들에게 눈은 50가지가 넘는 단어로 표현된다. 각 단어는 눈의 상태와 질감, 그리고 환경과의 상호작용 방식을 세세히 담아낸다. 반면 많은 사람들에게 눈은 “눈”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정의된다. 이 차이는 단순히 어휘의 다양성 문제를 넘어 자연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같은 겨울 풍경도 어떤 이들에게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고유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단지 하얀 배경으로 인식될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라고 말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경험과 사고를 규정짓는 틀이 된다. 언어는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고 이해.. 2025. 1. 4.
무감각을 넘어 의미 있는 여행으로 여행은 우리 삶의 중요한 과정으로 여겨진다. 새로운 공간과 낯선 환경은 많은 이들에게 일상을 벗어나 자신을 재발견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그러나 나는 여행에 대해 미묘한 거리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여행이 삶의 의미를 풍부하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낯선 환경에서의 불편함과 여행 후 희미하게 남는 기억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험이 더 많았다. 새로운 풍경은 일순간 마음을 사로잡지만, 곧 피로와 낯섦이 밀려온다. 돌아오면 남는 건 몇 장의 사진과 희미한 기억 뿐이다. ‘나는 왜 이토록 여행에 무감각할까’라는 의문은 조금씩 깊어지며 결국 근본적인 질문에 다다랐다. 만약 죽음을 앞둔 순간 여행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면 그 후회는 무엇을 의미할까. 낯선 땅을 밟지 못한 발걸음에 대한 아쉬움일까, 아니면.. 2025. 1. 3.
삶의 부조리와 종교적 신념 알베르 카뮈는 삶의 부조리에 직면한 인간의 선택을 탐구하며 종교적 신념을 “철학적 자살”로 규정했다. 인간은 세상에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답을 갈구하지만, 세상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 질문과 대답 없는 충돌은 카뮈가 정의한 부조리의 핵심이다. 카뮈는 부조리를 직면하고 반항하는 태도가 진정한 삶의 방식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은 초월적 존재를 통해 부조리를 해결하려 하며, 카뮈에 따르면 이는 부조리와의 정면 대결을 회피하는 도피에 불과하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을 단순히 도피로만 볼 수 있을까? 종교는 인간의 심리적 안정감과 공동체적 유대감, 도덕적 방향성을 제시하며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종교적 신념이 부조리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를 조.. 2025. 1. 2.
반려동물을 사랑한다는 의미 아침 햇살이 비치는 거실에서 고양이가 창문 너머로 날아다니는 새를 바라보고 있다. 강아지는 소파 한쪽에서 꾸벅꾸벅 졸고, 한 사람은 커피잔을 들고 그 장면을 지켜본다. 이 순간만 보면 모든 것이 평화롭고 완벽해 보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일까. 이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단순히 애정과 돌봄의 문제로 정의될 수 없는 것 같다. 이는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대하고,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며, 사랑과 소비의 경계에서 어떤 윤리를 가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행위는 과연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결핍을 채우려는 자기중심적 투영일까. 돌봄의 본질종종 돌봄의 의미를 되새겨.. 2024. 12. 31.
살아냈다는 껍데기 남기기 표현과 실재의 간극, 언어와 사고의 불완전함글쓰기는 단순한 기록 행위가 아니다. 글쓰기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그리고 내가 세계 속에서 어떤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고유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늘 쉽지 않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경험을 쌓아도 글을 쓰는 순간마다 단어와 문장은 더 가볍고 빈약해 보인다. 생각은 분명 존재하지만, 생각이 언어로 화하는 순간 의미는 흐려지고 흔적은 희미해진다. 머릿속에서 선명했던 것들이 막상 문장으로 나오면 무의미한 낱말의 나열로 느껴진다. 이 어려움은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한 피할 수 없는 본질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진 생각, 즉 내면의 실재를 글이라는 외부의 표현으로 옮기는 과정에는 항상 왜곡이.. 2024.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