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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뱉고 쓰고 맛보고 배우고

내 삶의 속도를 찾아서

by 점점이녕 2025. 2. 2.

 

“있는 그대로도 괜찮아.” 살아가면서 수없이 듣는 말이다. 힘들거나 방황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이 말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살면서 있는 그대로 머물러 있던 적이 있던가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순간이 있었지만 의도적인 머무름은 아니었다. 되돌아보면 언제나 더 나아지기 위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시도했던 것 같다. 물론 계획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들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는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을 버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변화를 바라고 있다. 삶을 더 밀도 있게 살고 싶고, 싶을 구매하고 싶고, 커리어적으로 성장하며 리더십도 기르고 싶다. 피아노를 잘 치고 싶고, 근육량도 높이고 싶고, 요리도 잘 하고 싶다. 화목한 가정도 꾸려보고 싶고, 운전도 능숙하게 익혀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고, 친한 사람들에게 더 친절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성숙함도 기르고 싶다. 커뮤니케이션도 능숙하게 하고 싶고, 걱정을 떨치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많은 경험도 쌓고 싶다. 작게는 단순한 취미에서 크게는 삶의 중요한 선택까지. 내적인 변화와 능력적인 변화, 환경적인 변화 등 더 나아지고 싶은 영역은 끝이 없다.

 

변화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개인적인 욕망일 뿐일까. 사실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계절도 사시사철 바뀐다. 만나는 사람들고 달라지고, 하는 일도 달라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또 다를 것이다. 변화가 없어 보이는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서 보면 결국 무언가 바뀌었음을 언젠가는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더 이상 게임이 재미없어 진다거나, 맛있었던 음식이 끌리지 않거나, 부모님의 주름과 새로운 생명, 시간과 돈에 대한 생각, 고민의 범위 등.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처럼 보인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마치 정체된 채 세상에서 뒤처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어쩌면 변화의 욕구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에게 내재된 본능이 아닐까.

 

 

목적의 불분명

시간의 흐름과 같은 피할 수 없는 변화는 뒤로 하고, 그렇다면 왜 변하고 싶은 것일까. 단순히 경험해보지 못한 삶에 대한 호기심? 아니면 성장에 대한 갈망? 혹은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함이 밀려오고, 지금과는 다른 삶을 바라게 된다.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더 나아지고 싶다.” 변화의 이유를 생각할 때 쉽게 떠오르는 말이다. 하지만 더 나아진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변화라는 단어가 흔히 발전과 성취를 의미하는 듯하지만, 그래서 그 상태가 어떤 모습인지 수월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의문에 꼬리를 물자면 끝은 없다. 왜 발전과 성취를 해야 하는지, 지금 있는 그대로 만족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지. 때때로 변화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리는 순간도 있다. 나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으로 인한.

 

원하는 변화들을 돌아보며 왜 변하고 싶은지, 그 변화가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질문하는 것도 중요한 변화의 과정이 될 것 같다. 더 의미 있는 하루를 살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변화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일지. 방향과 목적이 불분명하다면 변화 자체가 강박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무의미한 변화를 반복하게 되는 수도 있다. 가짜 노동과 유사한 가짜 성장, 성장한다는 착각.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준을 갖게 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변화의 본질인 것 같기도 하다.

 

 


변화의 방향성과 속도

돌이켜보면 사회에서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흐름을 따라 살아왔다. 정규 교육을 받고, 대학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외부 활동도 하고, 취업 준비도 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사회의 속도에 맞춰왔다. 아주 열심히 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해야할 일들을 해왔고, 그 안에서 나름 잘 하기 위해서 노력도 해보았다. 적당히 먹고 살만한 삶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의문이 찾아 온다. 나 잘 살고 있는 것이 맞나? 잘 사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든다. 많은 것들이 변했고, 더 나아진 것들도 많았지만 무언가 막막한 느낌. 아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던 것 같다.

 

지속적인 성장을 향해서

살아온 방식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나아가는 방향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부족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러한 결핍을 통하여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 끝에 나름의 방향성을 설정해 볼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변화란 단순한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는 빠르게 성과를 내고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미 있는 변화와 성장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변화는 어느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그 자체로 지속적인 탐색과 발견을 반복하는 과정이라고.

 

‘지속적으로 배우고 긍정적인 영향력 발산하기’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여전히 모호한 부분은 있지만 지금 수준에서 원하는 변화의 방향성이다. 목표 달성 자체가 만족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변화의 방향성, 즉 삶의 비전 또한 결코 성취할 수 없도록 정하고 싶었다. 절대 이룰 수는 없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작은 보람들을 느낄 수 있는 것. 성취는 했되, 성취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목적으로 남아 있는 것. 그리고 혼자 잘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

 

이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성을 설정했다고 해서 기존에 하고 있던 것들이 무의미했고, 모두 포기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하고 있던 것들 중에서도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니 내 삶의 충분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도 많았다. 타인에게 휘둘린다는 것은 보통 부정적으로 생각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이나 행동 양식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일단 따라해보니 이로웠던 것도 많았다. 그저 눈과 귀를 닫고 있어서 발견하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태도의 변화는 조금씩 행동의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개인적인 성과보다는 나와 회사, 동료들과 함께 성장을 꾀하게 되면서 더 의미 있게 일하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은 삶에서 중요하지만 회사의 삶이 인생 전반에 너무 영향을 주지 않도록 개인적인 시간을 확보하자는 다짐도 함께 하게 되었다. 여전히 개인적인 욕심이 앞설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동반 성장의 방향성은 어떤 변화에 대한 선택에 있어서 고민이 될 때 중요한 기준이 되어주는 것 같다.

 

살아가며 가치관은 계속해서 바뀔 수 있다. 더 많은 세상, 사람, 생각들을 접하면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하지만 그 과정은 방향의 초점이 더 뚜렷해지는 변화겠지 갑자기 180도 회전하는 변화가 아니라는 것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다.

 

 

나만의 속도를 찾아서

변화의 방향성을 설정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목표를 정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에 휩쓸리는 것 같다.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들이 주변에서 중요하다고 할 때 정말 그런가 의구심을 가지며 쫓아가 보기도 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어느 순간 정말 중요한 것인지 회의감이 들며 멈춰 서기도 한다. 결국 방향성에 대한 적합도 판단 뿐만 아니라 나에게 맞는 변화의 속도를 찾는 것이 의미 있는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과정인 것 같다.

 

보통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인식을 가지기 쉽다. 더 젊을 때 많은 것을 성취할수록 더 가치 있다고 평가받고, 도전이 늦어지면 기회를 놓친다는 불안감이 만연하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반드시 나은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회의 변화에는 따라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과 많은 경험을 쌓으면 더 많은 만족을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막연한 느낌으로 무작정 일을 벌렸던 순간들. 하지만 깊은 고민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다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얕아진다. 변화 자체가 목표가 되어 버려서 변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느릴수록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다독여보는 시간도 많았지만, 그런 시간들은 이상하게도 온전히 쉬는 시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산적인 시간도 아닌 애매한 시간으로 남았다. 차라리 제대로 쉬거나 무언가를 확실히 했다면 좋았을텐데.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노력 없이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낸 느낌이었다.

 

느리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고, 빠르다는 것이 휴식도 모르고 달려가는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줏대 없이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결국 속도의 균형을 잘 모르고 있음을 여지없이 드러내주는 것 같다. 사실 아직 내 삶에 적합한 속도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욕심이 많아서 빠르게 나아가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에게 느린 속도가 적합한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내려놓고 여유를 가지는 연습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느린 삶’ 보다는 ‘밀도 있는 삶’이 더 적합하겠지만.

 

바다거북은 결코 파도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헤엄치지 않았어요. 대신 파도를 이용했죠. 제가 바다거북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건, 저는 파도의 흐름과 상관없이 계속 파닥거렸기 때문이었어요.

 

<세상 끝의 카페>에는 파도를 거스르지 않고 이용하는 바다거북 이야기가 나온다. 파도가 올 때는 몸에 힘을 빼어 힘을 저축하며 몸을 맡기고, 파도가 밀려 나갈 때는 힘을 주고 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아마 나는 파도가 올 때 밀려나지 않으려, 더 나아가기 위하여 힘을 주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무기력해지거나 때로는 뒤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그 제자리걸음으로 인하여 물길이 잔잔했음에도 가만히 있었을 수도 있고, 파도가 빠져나갈 때 기회를 잡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제대로 항해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내 속도를 스스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삶의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단순히 빠르게 이루거나, 느리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변화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 속도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도 느림 50, 빠름 50처럼 단순히 동일한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무작정 달리거나 그저 멈추어 쉬기보다 내 삶의 방향성에 맞게 변화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조절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는 느림 20, 빠름 80이 균형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느림 80, 빠름 80이 균형이 되지 않을까. 결국 사회와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변화와 방향을 찾아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 지속 가능한 변화를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 더 집중해야 할, 의미 있는 변화의 과정일 것 같다.

 

길을 잃었다는 결핍으로 어느 정도의 방향을 설정해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 느끼게 된 속도감의 미비도 어느 정도의 내 속도를 그려볼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문제 의식에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 경험하고 실행하는 많은 것들과 그 변화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돌아보고, 천천히 느껴보는 과정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파도 이해하기

왜 멈추는 것에서 불안을 느끼는가?

나만의 속도를 찾는 과정에서는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지금 마주한 것이 파도 인지, 파도가 아닌지. 파도라면 얼마나 크고 거센지, 혹은 파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나에게서 비롯된 문제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제대로 대처를 하면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가장 큰 파도 중 하나는 불안감이다. 가만히 머물러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 마치 내가 정지된 것 같아서 두렵거나 불안이 찾아온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 같은데 나만 그대로인 것 같은 걱정. 변화가 없다면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회의감은 밀려온다. 내가 조금 더 나아지면 불안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어보지만, 그 기대는 쉽게 깨진다.

 

 

실존적 불안

하이데거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불안을 경험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우리는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끝이 온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존재다.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현재를 의미 있게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강박은 우리를 끊임없이 변화하도록 몰아간다. 변화하지 않으면 마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데거가 말하는 실존적 불안은 단순한 두려움과는 다르다. 두려움은 특정한 위험을 향하지만, 실존적 불안은 그 대상을 명확히 지목할 수 없다.

 

변화와 성취를 통해 불안을 덜어낼 수 있다고 믿지만, 변화는 결코 불안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못한다. 오히려 변화 속에서도 불안은 계속 따라붙는다. 목표를 달성해도 ‘이것이 충분한가?’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곧바로 또 다른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디까지 필요할까. 하이데거는 불안이 절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비본래적 존재와 본래적 존재 두 가지로 구분했고, 불안을 통하여 사회적 역할과 규범에 자신을 맡기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비본래적 존재에서 자신의 유한성과 실존적 불안을 자각하고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 비본래적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불안이 피할 수 없는 파도라면 불안을 없애기 위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불안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변화가 불안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공존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욕망의 연쇄

라캉은 인간의 욕망이 본질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갈망하고 그것을 얻으면 만족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막상 손에 넣는 순간 또 다른 결핍을 느낀다. 바로 끝없는 욕망의 연쇄다. 변화도 마찬가지다. 변화는 더 나은 상태를 향한 도약이라고 생각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또 다른 목표가 생겨나도, 그렇게 끊임없는 새로운 변화를 찾게 된다.

 

이러한 욕망의 본질을 라캉은 ‘대상 a’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대상 a는 결코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이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도 만족이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실제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을 통해 채워질 것이라 기대하는 결핍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변화도 단순한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결핍을 드러내는 과정이 된다. 더 나은 직장, 경제적 자유, 더 깊은 인간관계를 꿈꾸지만 이를 이루는 순간 또 다른 욕망이 생겨나는 이유다.

 

변화가 끝없는 과정이라면 언제쯤 ‘이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도적으로 가진 것에 만족하는 노력을 해보는 것도 좋지만, 만약 그럼에도 결핍과 욕망이 지속된다면 욕망의 연쇄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 속에서도 균형을 찾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완전한 만족에 도달할 수 없지만, 어떤 변화를 선택할 것인지는 결정할 수 있다. 변화가 단순한 결핍 해소와 이상적인 상태의 달성이 아니라 성찰과 선택의 과정이라면 그 안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결국 변화는 불안을 없애주지도, 욕망을 완전히 채워주지도 않는 것 같다. 변화는 만족과 불안을 오가는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고, 여기서 해야 할 일은 그 흐름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의도 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변화는 필연적이지만, 그 변화의 방식과 속도는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기에 변화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을 배워야겠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되, 변화에 휩쓸리지 않는 것. 변화가 한 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라면, 그 과정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고 나에게 맞는 속도와 리듬을 찾아 유유히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양한 헤엄 방법이 있겠지만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지속하는 것이 세부적인 시도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표현인 것 같다.

 

행동력과 회고

제대로된 계획을 세우고 나서야 움직이려는 습관이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직접 부딪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과거의 경험 중 의미 있었던 변화들은 철저한 계획보다는 실행 속에서 발견된 것들이었다. 앞으로는 불필요한 고민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기보다, 일단 실행해보고 그 과정에서 배운 점을 회고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싶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경험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에서 그 경험들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반추하는 것이다.

 

행동과 회고는 짝을 이룰 때 비로소 힘을 가지는 것 같다. 새로운 시도가 그저 경험의 유무로 남지 않으려면 반드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말 필요한 경험이었는지, 내 삶의 방향성에 어떤 교훈을 주는지 점검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변화가 단순한 움직임과 성장에의 착각으로 끝나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느리게, 깊이 있게

이전에는 빠르게, 많이 경험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빠른 속도가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맞지만, 때로는 깊이를 잃게 만들고 얕은 경험들만 쌓이는 문제도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깊이에 더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배움에서도, 관계에서도, 그리고 삶의 전반에서도 깊이 있는 경험이 주는 의미를 되살려보는 과정을 탐험해보고 싶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책을 읽는 것이 목표였던 적이 있지만, 이제는 한 문장이라도 내 가치관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독서를 하는 것이 목표다. 영화를 볼 때도 단순히 서사의 요약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과 음악, 대사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곱씹어보는 것도 좋겠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피상적인 말들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일상의 작은 순간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찾고 배우는 기회를 발견할 수 있도록 감각을 잘 펼치고 다닐 수 있도록 의식해야 할 것 같다.

 

느림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경험을 만드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다. 순간을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선을 갖추어 나간다면 조금 더 나와 세상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https://www.cas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79

 

결국 사람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일과 삶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숙련도 발전 모델인 드라이퍼스 모델에 따르면 주니어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고, 시니어로 갈수록 더 깊은 프로세스와 지식을 바탕으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삶에 숙련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단순히 경험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질을 높이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역량인 것 같다. 일을 잘 하기 위하여 배우고 성장하듯,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깊이 있고 숙련될 필요가 있다.

 

단계 업무적 맥락 (직장, 기술, 직무) 삶의 맥락 (태도, 관계, 성장)
1. 초보자 (Novice) - 업무 규칙과 프로세스를 따르는 것이 최우선
- 매뉴얼을 보며 작업하고 실수를 줄이려 노력
-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지만,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함
- 삶의 방향성을 명확히 모르고 주변의 조언에 의존
- 정해진 틀(사회적 규범, 부모나 주변인의 기대)에 맞춰 행동
- 실패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시도를 꺼림
2. 견습자 (Advanced Beginner) - 경험이 쌓이며 기본적인 문제 해결 가능
- 매뉴얼 외에도 사례를 보며 유사한 문제를 해결하려 함
- 하지만 복잡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독립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움
- 삶에서 조금씩 주체적인 선택을 시도하지만, 여전히 남의 평가를 의식
- 새로운 경험을 쌓지만 깊이 고민하기보다는 단순한 경험의 나열
- 관계에서도 특정한 패턴을 따르지만 깊이 있는 관계 형성은 어려움
3. 숙련자 (Competent) - 목표를 설정하고 업무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음
- 복잡한 문제 해결 가능하지만, 아직 완전히 자동화되진 않음
- 실수를 통해 배우며 자신만의 업무 방식을 구축해 나감
- 자신의 가치관을 조금씩 찾아가며 삶의 우선순위를 고민
-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려 노력
- 관계에서도 표면적인 교류를 넘어 깊은 관계 형성을 시도
4. 숙달자 (Proficient) - 직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매뉴얼보다 상황을 고려한 대응 가능
-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동료를 도울 수 있는 단계
-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해결책을 고려
- 자신만의 삶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더 깊이 있는 경험을 추구
- 타인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선택
- 관계에서도 피상적인 대화보다 깊이 있는 교감을 중시
5. 전문가 (Expert) - 직관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문제 해결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
-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
- 규칙이나 절차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단계
- 자신의 가치관을 확고히 하고, 삶에서 본질적인 것에 집중
- 외부 평가나 기준에서 자유로워지고, 스스로 삶을 정의
- 관계에서도 진정한 의미를 찾고, 깊고 성숙한 관계를 유지

 

 

적합도 & 중요도 파악하기

무엇이든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경험이 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어떤 것은 단지 하지 않으면 불안할 것 같아서 시작한 것이었다. 앞으로는 해야 할 것들뿐만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것들도 의식적으로 정리하며 선택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많은 것들을 시도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면, 정말 집중해야 할 것들이 선명해질 것이다. 단순한 경험의 양보다, 삶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한 변화가 아닐까.

 

 

밀도 있는 삶을 위하여

이제는 무조건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조율하는 것이 목표다. 행동과 회고를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빠르게 변화하기 보다 깊이 있는 경험을 쌓으며,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덜어냄으로써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사실 이렇게 적어보았지만 아직은 삶의 초보자라서 아직도 많이 경험하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미리 생각해두면 지금부터라도 기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변화는 순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태도이기에, 나만의 속도를 찾고 피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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