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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뱉고 쓰고 맛보고 배우고

반려동물을 사랑한다는 의미

by 점점이녕 2024. 12. 31.

 

아침 햇살이 비치는 거실에서 고양이가 창문 너머로 날아다니는 새를 바라보고 있다. 강아지는 소파 한쪽에서 꾸벅꾸벅 졸고, 한 사람은 커피잔을 들고 그 장면을 지켜본다. 이 순간만 보면 모든 것이 평화롭고 완벽해 보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일까. 이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단순히 애정과 돌봄의 문제로 정의될 수 없는 것 같다. 이는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대하고,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며, 사랑과 소비의 경계에서 어떤 윤리를 가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행위는 과연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결핍을 채우려는 자기중심적 투영일까.

 

돌봄의 본질

종종 돌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돌봄은 정말로 타인을 위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돌봄을 통하여 스스로의 도덕적 이상을 충족하려는 욕구에서 나오는 것인지. 프로이트의 자아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은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 간의 역동적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원초아는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욕구를 충족하려 하고, 자아는 현실적인 판단을 통해 이를 조율하며, 초자아는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기준은 제시한다. 반려동물을 돌보는 행위는 어쩌면 초자아가 요구하는 윤리적 책임감의 실현일 수 있다.

 

초자아는 인간이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도록 촉구한다. 반려동물을 볼보며 느끼는 책임감은 내가 약자를 보살피는 자애로운 존재라는 믿음을 강화해준다. 이러한 행위는 내적 만족감을 주며,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 책임감은 진정으로 동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도덕적 완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만족일까.

 

프로이트의 이론을 확장해 보면 돌봄의 행위에는 원초아적 본능과 초아자적 윤리가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의 귀여운 모습을 사랑하는 것은 원초아의 감각적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초자아가 지시하는 도덕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이중적 행위일 수 있다. 이렇게 돌봄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이중성은 돌보는 행위의 본질에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더 나아가, 자아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돌봄은 단순히 이상적 기준의 실현이 아니라 현실적 제약과 욕구를 균형 있게 맞추려는 행위일 수도 있다. 반려동물을 돌보며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려 하지만, 동시에 나의 감정적 공백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도 충족시키고 있다. 이 균형점에서 돌봄은 진정한 상호작용인지 아니면 인간 중심적 관계의 산물인지 자문하게 된다.

 

사랑인가, 소비인가

반려동물은 현대 사회에서 ‘귀여움’과 ‘충성’, 그리고 ‘순수함’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장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을 떠올리면, 우리는 종종 동물이 가진 본질과는 무관하게(본질이 무엇인지는 또 다시 생각해봐야 할 주제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 속에서 그들을 사랑하고 소비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뮬라크르는 실재(Reality)와 표현(Representation)의 간극에서 탄생한 것으로, 원본 없이 복제된 기호적 세계를 의미한다.

 

반려동물의 귀여움과 시뮬라크르의 4단계

  1. 실재의 정확한 반영 : 모방은 실재를 충실히 반영하며, 실재와의 관계가 유지된다.
    • 반려동물의 초기 이미지는 단순히 인간과의 친밀함과 생물학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과거의 개와 고양이는 사냥이나 경비와 같은 실질적 기능을 수행했다.
  2. 실재를 왜곡한 모사 : 모사는 실재를 왜곡하거나 이상화하여 재현한다.
    • 현대에 들어 반려동물은 ‘귀여움’과 같은 특정 속성으로 이상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귀여운 모습을 강조하는 광고, 영화,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강화된다.
  3. 실재와의 단절 : 모사가 실재와 단절되어 자체적으로 존재하며 실재를 대체한다.
    • 반려동물의 ‘귀여움’은 더 이상 그들의 생물학적 본질과 무관한 문화적 기호로 자리 잡았다. SNS에서 공유되는 반려동물의 이미지는 실재하는 동물과 독립적으로 소비되며, 실제 반려동물의 특성과는 점점 더 멀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특정 종의 강아지가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 해당 종으로 교배가 집중되기도 한다. 인기에 힘입어 사람들은 쉽게 입양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 강아지가 커지거나 기호적 이미지의 인기가 달라질 경우 버려지는 문제가 나타난다. 이는 시뮬라르크가 실재를 대체하며 기호로서의 반려동물이 현실에서 소비되고 폐기되는 극단적인 단절을 보여준다.
  4. 완전한 자율적 시뮬라크르 : 모사는 더 이상 실재를 필요로 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동하며, 실재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 반려동물은 인간이 투영한 가치와 욕망을 담은 기호적 존재로 독립적으로 기능하며, 그들의 존재는 하이퍼리얼리티 속에서 대체된다. 특정한 종의 강아지나 고양이가 미디어를 통해 ‘최고의 반려동물’로 포장되면서 그 이미지가 반려동물을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이 과정에서 실제 동물의 개별적 특성이나 돌봄의 책임은 간과된다. 심지어 로봇 반려동물 같은 기술적 대체물이 등장해 실제 동물을 완전히 기호화된 대상으로 대체하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또한, 죽은 반려동물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동일한 외형과 특성을 지닌 동물을 만들고 똑같은 이름을 붙여 키우는 사례도 있다. 이는 원래의 존재와는 무관하게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되살리려는 시도로, 반려동물이 실재를 넘어 완전히 기호화된 대상으로 작동하는 극단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반려동물의 ‘귀여움’은 그들의 본질이 아니라 인간의 투영한 가치다. 우리는 귀여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공유하고, 그들이 우리를 따르고 기다리는 모습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다. 잘 훈련된 동물은 ‘순종적이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로 소비된다. 그러나 이는 반려동물의 본연의 존재가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기호적 환상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들의 실재가 아니라 우리의 기대와 욕구를 반영한 이미지일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소비적 관계는 단순한 애정 표현을 넘어선다. 반려동물은 때로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도구가 되고, 사회적 연결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활용된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반려동물을 사랑한다고 믿는 감정은 그들 자체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내가 그들을 통해 얻는 정체성과 만족에 대한 사랑일까.

 

보들리야르 시뮬라크르 이론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단지 우리의 욕망과 문화적 환상을 투영하는 매개체로서 기능한다. 이는 우리가 그들의 본질을 지우고, 기호로서의 반려동물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귀여운 강아지의 이미지는 인간의 보호 본능과 애정을 자극하며 감정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감은 실제 강아지의 개별적 존재와는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형성된 의미와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반려동물이 본래의 존재를 잃고 기호로 대체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우리는 반려동물을 기호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대신 동물의 고유한 특성과 욕구를 이해하고 이미지나 기대를 뛰어 넘어 개별 존재로서 존중해야 한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과 애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실재와 기호를 구분하고, 인간의 욕망과 결핍을 성찰햐느냐에 관한 문제다. 반려동물을 소비적인 이미지로 사랑하는 대신 그들의 본질적인 존재를 존중하고 인간 자신의 결핍을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관계의 비대칭성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비대칭적이다. 인간은 언어와 기술, 그리고 규칙을 통해 동물의 삶을 완벽히 통제한다. 이 통제는 동물의 자유와 본성을 제한하며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의 존재를 정의한다. 이는 곧 관계 속에서 권력의 편향성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이 언어를 배워 자신의 요구를 말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까? 인간의 기대와 상반되는 동물의 요구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여전히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동물이 자신의 독립성과 자유를 주장하며 우리의 규칙을 거부한다면 인간의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관계의 근본적 비대칭성이 사랑의 본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묻는 중요한 질문이다.

 

비대칭적 관계에서 사랑은 인간의 자비와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통제와 종속의 구조를 내포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인간은 반려동물을 사랑한다고 믿지만 그 사랑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인간과 동물 사이의 문제를 넘어, 모든 권력 구조에서 사랑과 통제의 관계를 반추하게 만든다.

 

이 관계는 또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의 한계를 드러낸다. 우리는 반려동물을 돌보며 스스로를 자애로운 존재로 규정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동물의 관점에서도 정당한가를 자주 간과하는 것 같다. 인간의 언어와 규칙 속에서 동물은 스스로의 의지를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동물의 침묵을 순응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 침묵은 자유를 박탈당한 존재의 고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명의 가치와 의미

생명의 가치는 단순히 외형적 아름다운이나 인간에게 주는 이익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생명의 가치는 자주 외적 기준에 의해 평가 된다. 귀여운 동물에게는 자연스레 연민과 애정이 가지만, 농업과 식량 생산에 이용되는 소, 돼지, 닭과 같은 동물은 생명을 존중받기보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자원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가치 판단은 인간의 본능적 반응일 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학습된 결과일 수 있다.

 

강아지와 고양이, 소와 돼지 사이의 가치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의 깊은 한계를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의 필요와 감각적 반응을 중심으로 생명을 분류하며, 이에 따라 특정 생명은 소중히 여겨지고 또 다른 생명은 경시된다.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진리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행되지는 않는 것 같다.

 

만약 소나 돼지가 인간과 같은 언어로 자신의 고통와 요구를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반려동물처럼 대우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단순히 동물의 문제를 넘어 생명의 본질과 인간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이어진다. 우리는 인간과 닮은 생명체, 귀여움이라는 이미지를 부여 받은 생명체에게만 가치를 부여하는 편협한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방식으로 고유한 의미와 목적을 지닌다. 인간이 생명을 존중한다고 말할 때 그 존중은 모든 생명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자신도 조건 없이 존중받고 싶다면 더욱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는 생명만이 존중을 받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존중이 아니라 인간의 편의와 기준에 따라 조작된 가치일 것이다. 생명의 가치는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에서 출발해야 한다.

 

 

 

관계의 재구성

진정한 관계의 재구성은 인간이 동물을 단순히 돌봐야할 객체로 여기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데서 시작된다. 동물을 인간과 함께 존재하며 삶의 의미를 공유하는 동등한 주체로 바라봐야하며, 단지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동물을 객체로 여길 때 우리는 그들의 환경을 관리하고 먹이를 제공하며, 그들이 인간의 삶에 적응하도록 요구한다. 이 과정은 돌봄이라는 이름 아래서 동물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간의 기준에 맞춘 삶을 강요하는 형태로 이어지기 쉽다. 반면 동물을 동등한 주체로 바라본다면 조금은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동물을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첫 시작이다. 이는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과 표현으로는 부족하며, 그 사랑이 행동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소통 측면에서는 동물의 표현하는 미묘한 신호와 행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동물의 감정과 필요를 관찰하고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적으로는 동물의 본성과 자연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단순히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본능과 자유를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동물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산책의 경로나 놀이의 방식에서 동물의 선택권을 인정하는 작은 행동도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도전이 될 수 있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단순히 사랑이나 돌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을 통하여 내가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나의 윤리적 책임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 탐구는 우리가 단지 생명을 대하는 태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어떻게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게 한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도 결국 사랑의 깊이를 재정의하고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과정이다.

 

 


 

생각 거리

  1. 돌봄의 본질
    1. 우리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정말로 타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가?
    2. 돌봄의 행위가 윤리적 책임에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도덕적 만족감을 위한 자기위안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3. 반려동물을 돌볼 때 우리의 행동이 진정한 상호작용인지, 인간 중심적 요구를 반영한 것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4. 인간의 도덕적 완전성을 확인하려는 욕구와 진정한 돌봄은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
  2. 사랑인가, 소비인가
    1. 우리는 반려동물을 정말로 사랑하는가, 아니면 사랑의 기호를 소비하는가?
    2. 반려동물의 귀여움은 본질인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기호인가?
    3. SNS에 공유되는 반려동물의 모습은 그들의 진정한 존재를 반영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욕망과 기대를 반영하는가?
    4. 인간이 만들어낸 미디어 이미지가 반려동물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5. 기호적 사랑이 아닌 본질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3. 관계의 비대칭성
    1. 인간이 동물의 삶을 통제하면서도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일까?
    2. 동물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면,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3. 반려동물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여 내 공간을 떠나겠다고 말할 때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4. 반려동물의 침묵은 순응의 표현일까 아니면 억압의 결과일까?
    5. 사랑과 통제는 공존할 수 있는가? 관계에서 사랑과 권력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4. 생명의 가치와 의미
    1. 왜 우리는 특정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생명은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
    2. 소, 돼지, 닭과 같은 동물의 생명 가치와 반려동물의 생명 가치가 다르게 평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모든 생명이 존엄하다는 가치를 현실에서 실현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4. 생명의 가치를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가?
    5.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태도가 인간이 다른 생명과 관계 맺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5. 관계의 재구성
    1. 동물을 단순히 돌봐야 할 객체가 아니라 동등한 주체로 바라보는 태도는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2.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소통과 자유를 존중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3. 동물을 독립적 존재로 바라보기 위해 인간이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4. 관계의 대등함을 실현하려면 어떤 환경적, 사회적 변화가 필요할까?
  6. 현대 사회와 반려동물
    1. 왜 현대 사회에서는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을까?
    2. 반려동물이 우리의 정체성과 감정적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3. 로봇 반려동물이나 유전자 복제를 통한 반려동물의 재생산은 생명과 관계의 본질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4. 반려동물을 소비하는 문화가 동물 복지와 윤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1. 반려동물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사랑, 책임, 윤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2. 우리는 반려동물을 돌보는 행위에서 나 자신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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