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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365 나에게 접속

1일1배움. 곧 사라질 것, 그러나 반짝이는

by 점점이녕 2025. 2. 13.

 

겨울 하늘을 떠돌던 눈송이가 조용히 지상에 내려 앉는다. 어떤 눈송이는 나뭇가지에, 어떤 눈송이는 사람의 손에, 꽃에, 머리에, 바다에, 길바닥에. 지속의 차이는 있지만 잠시 머물다 이내 사라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삶이란 것도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디선가 왔고, 결국 어디론가 사라질 운명이다. 눈송이는 사라진 자리에 차가운 감촉과 물방울, 감촉을 남긴다. 그런다면 사람도 어떤 흔적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그리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일까.

 

불교에서는 '무상(無常)'을 강조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어떠한 것도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도, 성공도 실패도, 심지어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조차도 한순간의 흐름 속에 있다. 삶이 본질적으로 유한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 

 

하이데거는 이를 '죽음으로서의 존재'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이 죽음을 의식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를 더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표를 세울 때 기한을 정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호하게 언젠가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으로는 차일피일 미루다 흐지부지되기 일쑤이며, 명확한 날짜를 정한 경우에는ㅡ그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더욱더ㅡ 시간을 쪼개서 이루고자 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 무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기억되기를 원하고,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곧 우리가 존재했다는 증거이며,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기에.

 

사라지는 것과 남겨지는 것

흔히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과연 그럴까. 만약 지금 이 순간을 무한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제 보았던 아름다운 꽃이 영원히 매일 보인다면, 특별한 날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감동받았던 영화를 매일 보게 된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계획한 여행지에서 평생 살 수 있다면. 그 때 느꼈던 특별함이 매 순간 유지되면서 황홀하게 영원히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보지 않아서 확답을 할 수 없지만 특별한 감정은 곧 익숙함으로 바뀌어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변하고, 영원하지 않기에 가치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특별함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가치는 그 순간에 오롯이 받아들이되, 그 이면의 대부분의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눈송이는 내려 앉으며 사라지겠지만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의미를 가지듯, 인간의 삶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이들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어떤 이들은 한 사람의 기억 속에 따뜻한 순간으로 남는다. 누군가는 가족과 친구에게 온기로 남고, 누군가는 예술이나 글을 통해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남겨진 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온전하게 빛났는가일지도 모른다.

 

눈이 내리고 녹는 짧은 순간에도 감탄하고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은 짧지만 그 안에 담김 의미는 충분히 크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어쩌면 오래 남을 필요조차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닌,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한마디의 말, 타인에게 베푼 작은 친절,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그것도 남기는 것이고, 삶이 사라지면서도 남겨지는 것이 아닐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온다. 여름도 사라질 수 있다. 겨울이 지는 것이 슬픈 일이 아니 듯, 우리의 소멸도 필연적인 자연의 흐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남긴 발자국의 크기가 아니라, 어떻게 걸었는지가 아닐까. 발을 키울 수는 없겠지만 걸음의 방식과 방향은 설정할 수 있다. 남기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순간을 충분히 경험해보고 내 발로 직접 걸어다녀보면 어떨까. 그렇게 끝이 왔을 때 큰 발자국, 많은 발자국을 남기지 못해서 후회하기 보다는 그래도 내 발로 많이 걸어다녀봤노라고, 하루에 한 걸음은 떼보아서 나름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고 생각해보고 싶다. 이렇게 오늘의 한 걸음을 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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