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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365 나에게 접속

1일1주저리. 나무에 달랑이는 이파리를 보면서

by 점점이녕 2025. 2. 14.

 

만약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끝 점에서 무언가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남길까. 조금은 어려운 느낌. 뭔가 거창한 것을 적어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구질구질하게 삶에 미련이 남은 것처럼 적고 싶지는 않고.

 

자연스러운 노화의 죽음이라면 나름은 먼 미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병에 걸리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도 죽을 수 있는 것이 인간사. 굳이 무언가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남기고 싶은 이유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내 죽음으로 인해 크게 슬퍼하지 말라는 위안을 주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부모님.

 

사후 세계를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없어진다고 믿기보다는 자연으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은 편한 것 같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고 그저 빠르게 맞이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살아온 시간이 나름은 괜찮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그렇다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면, 아니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곧 죽게 된다면 무엇을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을까. 엄청나게 잘 살아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못 살아오지도 않았다. 아니, 요즘에는 나름 잘 살았던 것 같다. 돈을 많이 번 것도, 부자가 된 것도, 유명인이 된 것도, 사회적인 직위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 피해끼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려고 나름 노력했고, 내가 있는 위치에서 조금은 게으른 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시간에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고. 물론 그게 외부의 시선을 신경써서 그런 적도 있지만 그래도 다양한 실행을 해보면서 수백만명이 쓰는 서비스도 기획해보았고, 집에 처박혔던 적이 많지만 그로 인하여 활동을, 그 순간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집중을 해보자고 다짐을 할 수 있었다.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객관적인 힘듦이었다기 보다는 그저 스스로 만들어낸 걱정과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피할 수는 없는 인간의 굴레였던 것 같고. 꽤나 자주 걱정이 많은 성격을 한탄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하여 미래를 대비하고, 인생 계획을 세우고, 일에서도 의미를 추구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유익한 문화를 조성해보려고 하기도 했으니 세상에 유해한 상태는 없는 것 같다. 용기를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고, 소심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을 잘 활용하느냐, 활용하지 못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잘 살고, 살지 못하고가 나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항상 변화는 할 수 있으니까. 그러한 점에서 나는 어느 순간 나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받아들이면서 나아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받아들였다는 것이 순응했다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노력해보았다는 의미다. 부족한 사회성을 키우는 것, 말을 먼저 걸어보는 것, 무섭지만 도전해보는 것. 물론 처음부터 모험심이 강하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만큼 할 수는 없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범위 내에서는 나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더 살고 싶냐, 죽고 싶냐고 묻는다면 사실 더 살고 싶긴 하다. 아직 세상에는 경험할 것들이 너무 많고, 이제 더욱 깨닫게 되는 사소한 행복들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금 마시고 있는 카페라떼를 내일도 마실 수 있으면 좋겠고, 지금 보고 있는 풍경도 내일 볼 수 있다면, 같은 장소와 같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새롭게 느껴진 것 같다. 일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종종 소통의 오류, 잘 풀리지 않는 이슈로 스트레스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건전한 성장통이다.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이제는 딱히 넓은 집에 사는 사람, 좋은 대학에 간 사람, 많은 사람을 거느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지는 않다. 오히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자연과 일상 속에서 웃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안경점의 주인분. 항상 웃는 얼굴로 맞이해주고, 친절한 말투,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너스레 말을 거는 친근함. 그런 태도라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누구와 있더라도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훈훈한 분위기를 조성할 것 같다. 물론 나도 잠깐의 겉모습으로 파악한 것이고 웃고 있다고 하여 항상 행복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래도 스스로 지옥을 만드는 사람과 천국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의 차이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고통이 있다고 희망이 없는 것고 아니고, 희망이 있다고 고통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다만, 환경과 사건 사고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것을 더 많이 느끼려는 태도 자체는 스스로 구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환경의 달라짐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각, 태도의 달라짐일 것이다.

 

어제 본 눈송이의 완벽한 육각형이 아름답다. 왜 지금까지 자세히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삶은 소중하다고 말해도 내일 또 늦잠을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버렸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날도 어차피 내 인생의 일부지 않을까. 꼭 생산적으로 보낼 필요가 있나.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하면 될 일이고, 쉬어가고 싶다면 조금은 쉬어가도 될 일이다. 마음이 편한 상태. 그게 최고인 것 같다. 다만,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만약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고.

 

그래서 나름 짧고 굵게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너무 돈보다는 다양한 것을 많이 먹고 새로운 것도 경험했으면 좋겠고. 물론 아끼는 것에서 만족을 하고 보람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엄마아빠의 딸로 태어나서 부족한 것 없이, 크게 걱정하지 않으면서 수월하게 살아온 것 같아서 감사하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이냐고 할 때 부모님의 사랑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회사에서는 믿어주고 성장시켜주었던 리더분들에게도 감사하고, 자격지심과 강박이 있었던 부족한 나와 함께 일하고 조금 더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동료들에게도 감사하고. 동생하고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데 굳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냥 우연히 만난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헤어짐에서 눈물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지. 눈물이 곧 슬픔은 아닌 것 같고. 아쉬움? 감격? 잘 모르겠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이 여전히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고,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수학처럼 객관적인 지식을 알고 싶지는 않다.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각자의 무늬를 그리며 살아가는 존재 정도. 오히려 혼란이 있기 때문에 의미를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태어나자마자 태어난 이유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이 정해져있다면 굳이 살아야할 의미가 없었을 것 같다 . 세상은 불공평하고 제약이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름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정규교육, 대학생, 취업, 회사생활.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규정한 삶을 따라왔다고, 얽매였다고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모든 제도를 벗어 던지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법자로 사는 것보다는 그래도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합의한 공동체와 규칙 안에서 지킬 것은 지키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에는 선택하고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성인이 되어서 부모님에게 빌붙지 않으려고 사회 생활을 했고, 물론 은행에서 빌렸지만 내 돈으로 입학하고 졸업했고, 너무 거창한 환경보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학원을 다니고 직무를 정하고. 나는 자유로웠다.

 

유서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시간을 느낄 감각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떠나야 한다면 의미있게 떠나고 싶어서 이것저것 의미를 부여해보는 것일 수 있고.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의미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겠나. 시간이 영원할 것 같고, 죽음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당연한 것들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오늘 경험한 것을 내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래가 있어서 현재가 가치 있을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미래가 있어서 현재가 크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 대충 보내도 내일 원하는 것을 하면 되니까. 카뮈가 말했듯 미래 없이 오늘을 산다는 것이 어떠면 오늘 죽을 것처럼 산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오늘 죽는다면 오늘을 의미 있게 보내지 않을까. 매 순간.

 

뭐 아쉬운 게 전혀 없겠냐만은 그 정말 죽음이 다가왔을 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고. 하지만 돌이켜봐야 지금이라도, 아주 조금 남은 시간에라도 새로운 시도, 아니 새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봤으면 좋았을 것을 할 수 있지 않을지. 그렇다면 정말 후회하는 것은 마음을 진심으로 나눌 관계를 만들어보지 못했던 것. 개인적인 성향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있어서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피했던 것 같다. 어차피 언젠가 헤어질 것이니 상처받기 싫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휘둘리기 싫었을 수도 있고. 그래도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의 신뢰와 믿음,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헌신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는 것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사랑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이어진 혈연이기 때문에 조금은 논외로 치고, 타인에 대해서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그럼 감정은 만들어지는 것일지 아니면 이미 내재되어 있는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지. 또 아니면, 그렇게 되기 까지의 과정일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은 것에 후회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무엇일지. 여전히 마음과 생각은 어렵기만 하다. 사람도 그렇지만 무언가에 깊게 빠져보는 경험도 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면 기록에 빠졌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중간에 쉬어간 날도 많지만 어릴 때부터 무언가 쓰고 허물을 남겨두려고 했으니까.

 

유서가 뭐 별거 있나. 잘 살았다고 말하는 것보다 그냥 지금까지의 기록을 슬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 나름 밀도 있게 괜찮게 살았다고.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뭐 엄청난 후회를 해서 앞으로 개과천선을 하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다. 그냥 앞으로도 지금처럼 물 흐르듯, 하지만 조금은 노력하면서, 그러나 때로는 게을러지기도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있으면 더 보낼 것이고, 없다면 그렇게 보내 왔음에 감사할 것이고.

 

죽음을 웃으면서 받아들이는 방법은 없을까. 보통 죽음은 슬픔과 안타까움과 함께 찾아온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존재와 매일 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쩔 때는 1년에 한 번 보기도 하고, 수십년 뒤에 보이고 하며, 아예 연략이 끊길 수 있다. 그러다가 죽음을 마주하면 전에 없던 슬픈 감정이 내려 앉는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 만나지 않았던 것은 똑같은데 '죽음'이라는 단어에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일지.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 만약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았던 관계더라도 그래도 살아는 있으면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은 있지만, 세상을 떠난다면 그 기대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일까. 육체가 사라지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일까. 그 많은 생명은 다 어디로 갔을지.

 

여전이 의식이 어떻게 존재하고 육체가 사라진 후에 의식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부모님이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 물론 나는 부모님이 떠나신다면 슬퍼하겠지만. 그냥 적당한 슬픔과 적당한 기억을 가지고, 너무 결핍에 매몰되지 않은 채로 남아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충만하게 살았으면 한다. 예전에 한 소설에서 이별이 슬픈 이유는 어떤 존재가 떠났기 때문이 아니라 기억에서 떠나보낼 수 없기 때문이라는 문장이 와 닿았다. 기억에 계속 남아서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슬픔에 잠겨 있다는 말. 그래서 만약 내가 먼저 죽게 된다면 부모님의 기억에서 내 존재를 지워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슬퍼하지 않았으면 해서.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나는 기억을 지우고 싶지는 않다. 그건 내가 편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선택같기에. 그리고 지금은 그러한 감정들도 피하지 않고 적절히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 온다면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너무 잊어버리지도 말고, 그냥 살아가면서 종종 이런저런 함께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각자 파란만장하게 자기 삶을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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