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것은 어렵다. 쉽다, 어렵다를 왈가왈부할 정도로 책을 꾸준히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을 읽어 나가면서 정신은 다른 곳에 가있던 적도 많고, 책을 읽은 후에도 머리에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경험을 생각해보면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요즘에는 빠르게 읽기보다 가치관을 바꿀 한 문장이라도 발견하자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고, 독서 후에 뭐라도 얻기 위해서 다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뒤늦은 깨달음을 얻기도 하면서 어렵기 때문에 독서가 가치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것은 문학이다. 비문학의 경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면적으로나다 이해할 수 있지만, 문학의 가상 이야기는 도무지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 얻는 것은 없어서 그렇게 문학을 피해왔던 것 같기도 하다.
"전쟁은 참혹해". 전쟁이 참혹하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다르다. 이 단순한 문장은 문학이 되면서 수많은 등장인물과 그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비문학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라면, 문학은 마음으로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분명 그렇다. 며칠 전까지 '사랑과 찬탄'이라는 감정은 내 삶에서 너무 동떨어진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말로는 무언가를 보고 경탄스럽다고 표현할 수는 있어도 마음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내 가치관을 바꾸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이해하는 깨달음'의 느낌이라는 것을 이해하니 삶에서 찬탄할만한 것들은 꽤나 많았다. 부모님, 나의 업무, 다양한 롤모델, 책에서 발견한 한 문장, 너진똑, 그리고 '문학은 머리로 아는 수준을 넘어서 마음으로 아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는 설명.
최근 <캉디드>를 보았다. '우리는 우리 만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라는 문장을 보고 매력을 느꼈던 책이다. 하지만 책을 보면서, 보고 난 후에는 도무지 무엇을 얻어가야 할지 알지 못해서 또다시 해석의 도움을 받았다. 낙천적인 캉디드가 살아가는 방식, 모든 것은 원인과 결가 있고 이 세상은 최선의 세계라는 믿음을 고수하는 것, 하지만 칼에 찔리고, 목에 매달리고, 엉덩이 살점을 잘라서 먹고, 얼굴이 망가진 퀴네공트 공주에게 실망하고.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세상은 여전히 최선의 세계라 이야기라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고 멍청한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내용적으로도 무지한 낙천주의의 문제와 전쟁의 참혹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야기는 시대적인 상황과 연관지어 보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돌이켜보니 꽤 다양한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그렇게 경탄할 만한 작품인지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건 앞으로 마음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더 키우기로 하자.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아는 것
살면서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접한다. 책을 통해, 강의를 통해, 혹은 누군가의 조언을 통해 세상의 원리를 배우고, 사랑, 죽음, 고통 같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는 것'이 반드시 '깨닫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칸트는 이성적 이해와 실천적 이해를 구분했다. 가령, '죽음은 모든 생명에게 필연적인 과정이다'라는 말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이 생명의 끝이고,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혹은 스스로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 개념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머리로 알던 죽음이 마음으로 아는 죽음이 되는 순간, 그건 단순한 대념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것은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따라서 문학과 예술을 통한 간접 경험을 통하여 아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문학은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상상하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돕는 예술이 아닐까. 경험이 없는 지식은 공허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지식으로 만들기 위하여 체험과 이해가 필요하다. 드라마나 영화, 책 등 많은 콘텐츠도 길어서 요약해보곤 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제대로된 경험을 깨우칠 수 없는 것 같다. 요약은 결국 빠른 지식 습득과 오락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수백 페이지의 소설로 풀어낼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던 태도가 마음 없이 머리로만 살아가는 모습 같아서 조금 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다.
빠르고 명확한 정보를 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삶이 단순한 정보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도 단순한 논리만으로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감정과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다. 직접 겪지 않은 삶을 살아보고, 다른 시대와 공간을 경험하고, 타인의 감정 속에서 깊게 빠져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을 접한느 태도를 바꾸어야 비로소 제대로된 마음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직접 체험이다. 가능하다면 간접 체험으로 느낀 것들을 체득할 수 있도록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확장의 방식이 아닐까.
https://www.youtube.com/watch?v=Gsv_lwRLI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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