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끊임없이 세계를 일으켜 세운다는 점이다. 여기서의 세계는 나의 세계 전체를 의미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가진 강력한 선입견 중 하나는 세계를 자아와 분리된 객관적인 실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계는 개념적으로만 존재할 뿐, 결코 닿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객관적인 세계라 믿는 물질세계도 실제로는 나의 감각기관이 나의 정신에 제공한 감각자료를 가지고 의식이 재구성한 세계다.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중
세계가 주관적이라는 것은 공감한다. 같은 세상을 살아도 다른 가치관과 행동을 기반으로 살아가곤 하기에. 결국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세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한편으로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수많은 걱정과 고민들도 결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고, 이는 곧 마음을 바꾸면 없어질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해서. 돌이켜보면 걱정했던 것들은 현실에 일어나지 않거나, 생각나지 않거나, 오히려 인생이라는 과정에 있어서 유익한 경험이었던 적이 많다.
버클리는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는 핵심 명제를 바탕으로 관념론을 이야기했다. 버클리에 따르면 감각 경험만이 존재하며, 우리는 모든 사물을 감각을 통해서만 경험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무'를 본다고 할 때 '녹색, 단단함, 길다'와 같은 감각적 속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각은 항상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기에 우리가 인식하지 않는 객관적인 물질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물질적 실체란 결국 감각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므로, 감각이 사라지면 사물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보지 않으면 책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버클리의 관념론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내가 보지 않는다고 하여 회사의 내 책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책상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세상은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버클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않을 때도 사물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신이 그것을 계속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이 모든 것을 영원히 인식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보지 않는 순간에도 사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제대로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터무니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하여 세상을 깨우친 것 같고 만족한다면 상관은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역시 세상은 알 수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답답하고 그냥 무시하곤 했는데, 요즘은 다양한 관념들을 알아가는 것이 조금은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을 해석하며 자기 나름의 삶의 패턴을 그리는 것이 한 존재로서 환희에 찬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존재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모든 존재들을 응원하고 싶다. 물론 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없어도 세상은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객관적인 세상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인 세상을 파악할 수는 없고 주관적인 해석을 통하여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기는 하다. 해석에 답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고, 이제는 답을 찾고 싶지는 않다. 결국 이해를 높이고 수용의 면적을 높이는 것은 잘 살고자 하는 일인 것 같아서. 그래서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나도 내가 편한대로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가고 싶다. 서은국 교수님은 책상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면 고장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살면 어떤가.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앞에 기어가는 개미를 보고 행복하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굳이 행복할 필요가 없다면 그렇게 살면 될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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