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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종료] 글쓰기 챌린지

12일차. 피노키오

by 점점이녕 2024. 6. 18.
[6/18] 오늘의 글감 : 최근 1년간 시청했던 영화/드라마 중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드라마를 소개해주세요.

 

영화나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아서 최근 1년간 본 콘텐츠 중에 크게 인상 깊었던 것은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와 드라마는 러닝타임이 길어서 시간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에 유튜브의 요약본으로 보는 편인데, 아무래도 감상의 깊이가 깊지 않았기 때문에 킬링타임으로 전락해 버린 것 같다. 대신 시간의 제약을 두지 않았을 때는 <피노키오>라는 드라마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다.

 

<피노키오>는 어릴 때 오보로 가족을 잃은 최달포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드라마는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이 존재하는 세상이며, 피노키오들의 말에는 신뢰가 있다. 최달포의 아버지는 화재 진압 중 다른 소방관들과 건물에 갇혀 죽는다. 그러나 다른 소방관들의 시신은 모두 발견되었지만, 달포 아버지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한 피노키오가 소방관이 도망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인터뷰하면서, 언론과 기자는 달포의 아버지가 무리한 지시로 다른 소방관들을 죽게 만들고 자신은 도주했다고 허위 보도한다. 화살은 도주를 도왔다며 달포의 가족으로 향했다. 이로 인해 달포의 어머니까지 목숨을 잃고, 한 가정이 파멸한다. 달포는 항상 성실했던 부모님을 생각하며 분노했다. 자신은 말의 무게를 아는 책임감 있는 기자가 되어서, 자기 가족을 앗아간 기자를 무너뜨리기로 결심한다.

 

기자가 된 달포의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헬스장 다이어트 사망 사건 취재다. 새내기 기자가 된 달포는 단독 보도를 위하여 라이벌 언론사와 취재 경쟁을 한다. 발 빠른 정보 수집을 통하여 예뻐지기 위한 과도한 다이어트가 심장 마비로 이어졌다며, 사회적으로 지나친 미적 강박을 우려하는 내용을 담아 가장 먼저 보도에 성공한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사망한 여성의 딸은 병을 앓고 있었고, 간 이식이 필요했다. 어머니의 간은 살을 빼야만 이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빨리 딸에게 간을 이식해 주기 위하여 쉬지도 않고 무리해서 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게 된 것이었다. 그 딸의 앞에 있는 텔레비전에는 달포가 취재한 기사가 방송되고 있었다. 달포는 자기 말이 다른 사람의 말보다 무섭다는 것을 알았어야 한다고, 자기가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말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이 기자가 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렇게 혐오했던 기자의 행동을 자기가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피노키오>는 기자와 기사의 사회적 책임감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직업을 한정 짓지 않고 일에 대한 철학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달포는 실수는 했지만 반성하며 더 나은 기자가 되기 위하여, 자신이 어릴 때 목표로 삼았던 진정한 기자가 되기 위하여 계속 노력한다. 결국 자신의 가족을 망가뜨린 기자도 용서하게 된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삶의 기준과 북극성이 느낄 수 있었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던 당시에 나는 회사와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달포를 보면서 나는 과연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입사 초기에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자는 기대와 능동적이고 의미 있게 일하자는 포부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회사와 집을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것 같았다. 하는 만큼 보상을 주지 않는 것 같아서 주는 만큼만 해야 할까 고민도 했던 것 같다. 답답하긴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회초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 일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일에 대한 태도를 제대로 지녀야겠다고 마음먹은 부분이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있다. 도주했다는 오보로 삶이 망가진 달포를 생각해 보면, 과연 그게 언론과 기사만의 잘못일까. 아무런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이고 낙인을 찍어버린 대중 개개인의 잘못은 없을까. 예전에는 극 중의 기자만 비난했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드라마 내에서는 임팩트 있는 기사 쓰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 잠깐 나온다. 누군가의 이상형이 키 큰 남자라고 했을 때 두 가지 제목의 기사를 낼 수 있다고 했다. ‘000 키 큰 남자 좋아해’와 ‘000 키 작은 남자 싫어해’. 전자는 팩트고 후자는 팩트에 기반한 임팩트 있는 제목이라고 했다. 후자의 기사에 대한 관심이 월등히 높다고. 사람들은 부정적이고 남을 헐뜯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드라마에서는 임팩트만 있는 제목의 문제점을 꼬집고 마무리되었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현실이었다. 자극적인 제목, 자극적인 섬네일.

 

요즘은 정보 하나만 보고 사람을 매장하는 사건이 너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 같다. 과거에도 문제였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글 몇 줄만 읽고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는 것이 너무 쉬워졌다. 잘못된 것에는 눈에 불을 켜고 관심을 가지고 비난을 하지만, 사실은 잘못이 아니었다는 진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는 해도, 보고 있는 것이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 의심해 보고 찾아보는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피노키오>는 언론의 책임과 일의 의미, 갈등과 문제 해결, 사회적 문제 등 다양한 부분에서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드라마다. 앞으로도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작품들이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이미 좋은 콘텐츠들은 많기 때문에 스스로 가치를 알아보고 느낄 수 있는 관점을 기르고 싶기도 하다. 사실 글로 적어보기 전까지는 단순히 ‘좋았다’ 정도로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하고 쓰는 과정에서 왜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납득할 수 있었고 오히려 생각하지 못한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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