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으면 최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살아온 방식도 다르고 태어난 나라의 문화나 주변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사고방식과 태도, 취향도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모두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중력 문제’에 빠져있는 것이 아닐까. 몸이 너무 무거워서 중력이 조금 약하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결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다양한 팀에서 이해관계자가 얽히게 된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그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사항을 수집하며 최적의 고객 경험으로 서비스를 디자인 해야한다. 물론 요구사항을 하나씩 뜯어보면 분명 좋은 기능이긴 하지만 각 요구사항이 상충될 수도 있으며 너무나 많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스펙이 점점 커지고 개발 공수도 늘어나 결국 고객에게 서비스가 제공되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빠르게 고객 피드백을 받아서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을 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다른 팀의 요구사항이 상충할 경우 무한 수정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A 요구를 충족하여 수정했더니 B 요구가 부족하다고 피드백이 돌아온다. B 요구를 추가했더니 A 요구가 약해졌다며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온다. 자신의 기준이 없이 다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만 진행할 경우 수정 도돌이표에 빠지게 되며 정체성 없는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다. 최대한 다양한 요구사항은 충족했지만 핵심 메시지가 없어서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서비스.
핵심 메시지의 중요성
존 야블론스키의 주요 10가지 심리학 중에 ‘밀러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보량에는 한계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7가지의 정보밖에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학에 의거하여 UXUI에서는 한 화면에서의 정보의 위계를 중시하며, 광고에서도 핵심 메시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을 홍보한다고 했을 때 A도 좋고, B도 좋고, C도 좋고, D, E, F, G … 좋다는 것을 다 나열하는 것보다는 정말 좋은 것 1가지만 이야기하는 것이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대상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 내 역량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은가? 여기서도 너무 많은 대상은 오히려 뭣도 아니게 될 수 있으므로 딱 2가지만 적어보았다.
- 내향적이고 소심하지만(찐 INFJ, ISFJ) 자기만의 인생을 구축하고 싶은 사람
- 사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성장을 추구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첫 번째는 ‘삶 디자인’, 두 번째는 ‘프로덕트 디자인’이라는 전문성을 쌓아서 도움을 주고 싶은 집단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사람, 주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처럼 포괄적인 집단을 대상으로 정해보았는데 이렇게 디테일하게 적은 것을 보니 나도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성공한 모습이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나도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지만 하루하루 시간와 노력을 나에게 투자하여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물론 처음부터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에 비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을 했음에도 부족할 수 있지만 타인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며 어제의 나와 비교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어릴 때 활발하지 않은 내 모습에 크게 우울했던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걸고 친해지는 외향적인 친구들을 부러워했었다. 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여전히 사람들이 어렵고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처음보는 사람들과도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 활발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억울하기도 했다. 누구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다른 누군가는 노력없이 갖고 태어난 것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활발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조용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 때에도 역시 비합리적으로 중력문제를 탓하고 있었다. 비록 세상이 외향성을 내향보다 높이 평가한다고는 하나 나는 이미 내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외향이라는 것도 결국 내향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내향도 외향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가지고 있는 당연한 것에는 이름이 붙지 않는 법이니까. 예술에서도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장르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취향이 그만큼 다양하고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로맨스를, 누군가는 액션, 스릴러, 다큐, 코메디 등을 좋아한다. 춤도 그렇다. 최근에 유행했던 스우파를 보면 댄서들의 주종목도 각각 다르다. 코레오그래피, 락킹, 왁킹, 팝핀, 보깅, 터팅 등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다양한 춤의 장르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소심함, 내향적인, 완벽주의, 걱정쟁이 같은 것들도 그러한 장르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창업을 해서 수백명의 사람을 관리하는 CEO가 되자고 원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내 자리에서 내 장르의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제공해보는 것도 좋겠다. 성공한다는 것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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