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알베르 카뮈를 인용하는 문구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에밀리 에스파니히 스미스의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에서 주의를 끄는 문장을 찾았고, 그 문장은 작가가 카뮈를 인용한 말이었다. (이 책은 이진선님의 자기발견 글쓰기를 하면서 추천도서로 알게 되었다.)
“신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카뮈는 세 가지 답을 했다. 살고, 행동하고, 쓴다.”
나는 무교이기 때문에 신 없이 살아가고 있다. 신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을 믿는 사람들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신은 마음 속에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 신을 믿는다면 그들의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본다. 그렇게 믿음으로써 본인의 삶이 나아진다면 종교의 긍정적인 효과다. 다만 자신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고로 무교인 내가 잘 사는 방법은 오로지 내 생각과 행동에 달려있다. 그리고 ‘쓰는’ 행동이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어서 저 문장에 인상깊게 다가온 것 같다.
삶이란 무엇인지, 나는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질문은 삶을 살아가면서 주기적으로 나를 괴롭힌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내려본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듯한 결론이 나오지 않아서 오히려 삶에 대한 혼란만 가중시켰다. 그래서 회피했던 것 같다.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거라고 별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제대로 답하지 않은 질문은 가슴 한 구석에 남아서 종종 머리를 드리밀곤 한다. 그 때는 무기력하고 우울에 빠지는 시기다.
아직도 무기력한 기간이 오기는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그 기간이 짧아지고 깊이도 낮아졌다. 그 이유로 뽑자면 ‘쓰기’,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그저 누워서 쓸데없는 생각만 했다. 사실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민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그저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신세한탄이었으니까. 그러나 경험을 하기 위해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삶과 인생, 행복 등 많은 관념적인 부분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중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삶은 원래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동안 행복과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지, 나는 왜 행복하지도 않고 사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지 우울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삶에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니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으며 쓸데 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무겁다고 중력을 거부할 수는 없다. 의미가 없다면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보자고 다짐도 했다. 의미를 발견하지 말고 발명해보자고.
그 외에도 다양한 인정을 했다. 삶은 즐겁지만은 않다. 살아가면서 사소한 즐거움, 고통, 괴로움, 우울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원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등. 이렇게 인정을 하고 나니 한결 편해진 것 같았다. 지금 느끼는 우울을 피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그리고 그 모든 감정과 경험들을 기록으로 남겨보자고 다짐하면서. 우울하게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시간을 무의미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록으로 나의 콘텐츠를 남겨놓는 것이었다.
오늘도 ‘부조리’, 인생의 덧없음에 대하여 좋은 영감을 얻었다. 알베르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은 부조리한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인간의 삶이 부조리한 것이라 해도, 난 계속해서 ‘오직’ 인간이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생각하는 능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내 이성을 사용해 끊임없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적이지 못한’ 신의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며, 미래나 영원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삶에 충실할 것이다.”
내 삶의 철학은 실존주의에 가까운 것 같다. 내 삶은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상의 삶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다. 그 긴 시간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삶과 인생,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각자의 답을 내렸을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평가할 수 없다. 다만 특정 개인의 인생에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내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으로 무언가를 믿는다면 그 자체는 한 개인의 인생에서 옳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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