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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

발에 달린 족쇄를 자랑하지 말지어다

by 점점이녕 2022. 5. 22.

나는 회사에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성과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으며 채찍질을 해왔다. 잘하고 있다고 해도 더 잘 해내야 한다며 이룬 것들을 과소평가했고, 현실 안주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오랫동안 우울했다. 노력의 산물을 뒤로 숨겨버리고 못 한 것은 눈앞에 놓으며 나의 부족함을 질타했다. 스스로에게 벌을 집행한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이렇게 스스로 검열하며 성과를 잘 내는 직원이 인재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사실 나는 아주 잘하고 있었다. 성장 강박으로 애써 무시하고 있었지만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고, 회사에서 바라는 것들도 대부분 초과 달성을 해왔다. 물론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애매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성과 리뷰 때 항상 좋은 평가를 받아왔고 연봉 상승도 평균 이상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노예로 살고 있었다.

노예가 자기 삶이 익숙해지면 노예끼리 자신들의 발목에 달린 족쇄가 금인지 동인지, 나무인지를 비교하고 자랑한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대기업과 복지가 좋은 회사 콘텐츠가 나오면 댓글에도 심심찮게 족쇄를 비교하는 댓글이 달린다. 누군가는 여우와 신포도처럼 대기업도 별거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누군가는 어차피 같은 머슴이면 대감집 머슴이 낫다고 자랑한다.

 

솔직히 회사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서비스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일하는 노예이고 머슴이라는 것을. 직장인을 비하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성장하고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러나 당연하게 직장 생활을 반복하고 워라밸을 추구하며 일하는 것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고 이런 사람들의 사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을까? 각본대로 사는 것이 편해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어서? 머슴으로밖에 살아보지 않아서 다른 삶은 어떻게 살지 모르니까? 그러나 대감과 주인들도 처음부터 대감과 주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대물림받은 경우는 처음부터 대감으로 타고났겠지만 그게 아닌 사람들도 충분히 많을 것이다. 그들과 그들처럼 되지 못한 사람들이 다른 점은, 각본을 벗어난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기존에 가진 생각을 깨는 행동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로, 나도 각본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해야 한다.

 

생각해보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월요일에서 금요일을 학교에 간다. 아, 유치원 때부터 그런 것 같다. 그리고 회사원인 지금도 동일하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노동 시스템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여져 온 것 같다. 당연히 월-금은 밖으로 나가 학습하거나 일을 하는 날이고 토, 일은 쉬는 날로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초등학생 때는 나의 희망 직업과 부모님의 희망 직업을 적어서 내기도 했던 것 같다. 중학생 때도 비슷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떤 고등학교 갈지 정도일까. 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어떤 대학교에 갈지가 주요 관심사며 친구들과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도 대학이 핵심 주제가 된다. 그렇게 당연히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하며,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꿈을 이야기하며 명사형 직업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동사가 되어야 한다는 인상 깊은 가치관을 알게 되었다. 명사형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며 동사형 꿈은 '사람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여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명사의 직업은 이루어지는 순간 허무해지며 또 다른 꿈을 좇아 방황하게 된다. 그러나 동사형 꿈은 과정이다. 우리 삶은 꿈을 이루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꿈을 이루어도 계속 살아가지기 때문에 과정이 담긴 동사가 꿈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초중고라는 정규 교육 과정과 지식인을 양성한다는 대학에서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떤 회사에 입사할지에 대한 형식적인 질문이 전부였고 수업은 미리 준비된 교재를 중심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보다는 수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것을 잘 집어넣었는지 확인하는 식의 시험으로 사람을 평가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도 특출난 친구들은 자기만의 길을 찾았겠지만. 어릴 때부터 진정한 인생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진심 어린 질문을 해주는 멘토를 만났다면 지금 달라져 있을 수 있었을까? 물론 이미 지나간 시간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고민임을 안다. 그러나 내 인생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개선하면 된다. 그게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빠른 변화의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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