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존재를 나누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본질이란 어떤 대상의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즉 존재 자체가 본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장 폴 사르트르에 의하면 존재와 본질은 전혀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에는 즉자와 대자가 있다. 사실 어려워서 아직 잘 이해는 못했지만 공부한 것을 조금 요약해보자면, 즉자 존재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이며 대자 존재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는 못하고 의식으로만 존재한다. 앞에 놓인 책과 세상에 놓인 인간이 구별이 되는 것은 대자의 여부이다.
펜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쓰는 것이다. 무언가 쓰고 기록하기 위하여 펜이라는 사물이 생겨났다. 펜의 본질은 기록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세상에 어느 누구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순간 의식이 생겼고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을 뿐이다. 즉, 인간의 본질은 없다. 그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인생의 의미가 없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
도구적인 사물은 본질이 앞서고, 인간은 존재가 앞선다. 그러나 본질이 없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자인 의식으로 자기를 인식하고 타자를 인식하고 세상을 인식하며 자신의 쓸모를 스스로 구축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평생 자신의 쓸모를 만들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쓸모를 보여주고 타인의 쓸모에 영걈을 주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정답은 없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방식으로 살면 그 자체로 자기에게는 옳을 뿐.
인생에 의미는 없지만 내 인생의 의미는 있으며, 인간의 본질은 없지만 나의 본질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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