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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

허락된 만큼의 오너십

by 점점이녕 2022. 5. 19.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항상 오너십을 가지라고 말한다.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내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 달라며. 그러나 정작 오너십을 발휘하여 내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일의 진행 방향성을 결정했을 때, 그리고 그 방향성이 찐 오너십이 있는 경영진의 생각과 다를 때면 순종을 요구한다. 여기서 정말 내가 오너라는 생각으로 내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대화가 되지 않는 문제 직원으로 찍힌다. 결국 회사가 요구하는 오너십이란 능동적으로 회사를 위해 일하지만 의견이 다를 경우는 회사의 요구대로 순종하길 바라는 것이다. 허락된 범위에서의 오너십이다. 아니, 애초에 오너가 아니니 오너십을 가질 수 없다. 단지 가졌다고 착각할 뿐. 그 착각이 회사가 바라는 것이기도 하고.

 

직장 생활에서 회의감을 느끼는 부분이 이런 맥락인 것 같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 경험을 담당하고 있는데, 종종 비즈니스와 고객 경험 간의 상충에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물론 기업이 이윤 추구의 집단이기는 하나,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고객들이 유입되어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드는 서비스라면 디자인 윤리를 잘 지켰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설사 고객을 속였을 때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고객을 속이지 않고 수익을 덜 대는 것이 낫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사기를 쳐서 돈을 벌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종종 당장의 매출을 위하여 고객 경험을 해치는 작업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불쾌한 고객 경험과 법적으로 저촉되는 이슈가 있다고 팀장님에게 해보았지만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으니 당장에 중요한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 옳다는 답이 돌아왔다. 목적을 위해서는 잘못된 수단이라도 사용할 거냐고 몇 번 더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고 감정적인 트러블만 격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의욕은 바닥을 찍었고, 오너십 따위는 개나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절이었고 나는 중이었다.

 

오너십도 없고 디자인 철학도 없어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으면 이슈도 더 빨리 끝낼 수 있었을 것이고 감정적인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을지 모른다. 괜히 내 서비스라고 생각해서 더욱 친절한 고객 경험을 제공해야겠다는 마인드가 악영향을 끼쳐버렸다. 덕분에 얻은 것은 있다. 회사에서 괜한 오너십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것. 어차피 내 서비스가 아니므로 큰 책임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 서비스가 망가지든 말든 더 이상 크게 신경 쓰지 말자는 것. 어차피 일개 직원으로서 회사를 떠나면 이 서비스와도 이별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시원하면서도 섭섭했다. 몇 년을 회사 서비스에 투자한 시간도 아까워졌다. 결국 내 것이 아니었는데.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빨리 조직 생활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누군가 허락해준 범위 내에서만 뛰노는 것이 아니라 내 세계를 스스로 창조해보자고. 남 탓, 환경 탓을 그만하자고. 회사에 다니는 것도 결국 나의 선택이었으니 틀을 깨는 것도 내 선택에 달려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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