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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배운 중요한 역량, ‘문제 정의’

by 점점이녕 2022. 5. 11.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배운 중요한 역량, 문제 정의

 

프로덕트 디자인 5년 차. 종종 채용할 때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거나 면접관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사실 내가 누군가를 평가할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내 선택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관심 있게 보는 부분은 어떤 의도로 설계했느냐 하는 부분이다.

 

창피하게도 5년 차가 될 때까지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량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연차가 높아지면서 신입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데 참여하게 되었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당연히 필수 질문으로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량은 무엇으로 생각하세요?’를 적고 있는 나를 보고, 나는 과연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지만 그럴듯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제대로 답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 심지어 나보다 연차가 낮은 디자이너에게 묻는다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 같아서 그제야 진지하게 이 질문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기 시작했다. 창피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디자인 철학을 가지고 일을 해오고 있던 걸까?

 

사실 예전에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주요 역량을 ‘문제 해결력’으로 보았다. 많은 권위 있는 디자이너분들도 그렇게 주장을 하기도 했었고, 내가 생각할 때도 발행한 문제를 잘 해결하고 고객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주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어떤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실패를 맛보면서 문제 해결력보다 중요한 역량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문제 정의’였다.

 

A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른 팀의 요구사항을 취합하여 개선 방향 및 신규 서비스를 기획했다. 이해관계자들과 모여서 회의도 했고 최종 기획 문서도 잘 정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잘하고 있다고 보람도 느꼈다. 그렇게 디자인과 개발 작업에 착수했고, 몇 개월 뒤 고객들에게 서비스도 오픈되었다. 결론적으로 그 서비스는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고물 덩이가 되었다.

 

문제를 잘 해결했지만 애초에 정의한 문제가 진짜 고객이 원하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면 모두가 바보가 되었던 것일까) 팀장님은 이슈를 처음 공유할 때 경영진과 협의해서 진행하는 이슈라고 했고, 나도 언뜻 보기에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 해야 하는지, 고객이 겪는 진정한 문제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없이 해결 방법에만 진행한 이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간 낭비만 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경험으로 문제 해결력보다 문제 정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why를 추구하는 삶

 

사이먼 시넥의 ‘골든 서클’이라는 모델이 있다. 위대한 리더들이 행동을 이끌어내는 법으로 why, how, what 순서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why, 바로 목적이다. 리더십을 공부하다 보면 팀원들에게 동기부여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이크로매니징 하지 말고 왜 해야 하는지 이해를 시키라는 것이다. 문제를 인식했으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해야 직원도 성장하고 직원이 발휘한 창의력으로 회사의 서비스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동의 한다. 팀장님이 이슈를 전달할 때 어떻게 하라고만 줄줄이 이야기하면 내가 도구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나름대로 문제를 정의하고 기획을 해가면 일부 팀장님은 하나하나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변경한다. 내가 고민한 시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다음부터는 고민을 줄인다. 어차피 내가 생각해봤자 반영되지도 않을 테고 팀장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바꿀 테니까. 그렇게 수동적인 태도로 변하게 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팀장을 떠나거나, 그런 조직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왜’에 대한 중요성은 충분하게 이해하고 있어서 최근에 동료 디자이너들과 스터디를 계획하면서 ‘why’에 대한 납득을 시키려고 노력했다. 스터디 기획서를 작성할 때도 ‘골든 서클’에 따라서 why, how, what 순으로 작성했다. 킥오프 미팅 때도 주제를 ‘본인이 생각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량과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지?’로 정했다. 스터디의 필요성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무작정 방법론이나 정보를 공부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성장하기 위해서 주도적으로 학습한다는 책임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스터디는 4달 가까이 진행하고 있으니 결과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인생에서도 why는 중요하다. 주변 환경과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만의 인생 why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홀로서기를 다짐한 것도 단순히 회사 생활이 싫어서가 아니다. 도구가 되지 않고 내가 나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고, 내 것이 아닌 서비스를 위하여 내 인생을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 시간을 사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적어도 내 이름으로 된 콘텐츠와 내 팬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에는 연봉을 올려준다고 하면 퇴사 생각을 접곤 했다. 그러나 이런 주체적인 삶에 대한 목적들이 내 마음에 단단히 박히면서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에 흔들림이 줄어들고 있다. 내 인생을 팔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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