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뭐 평소보다 특별하게 보내지는 않았다. 어제 치아 치료를 하고 계속 피가 나서 신경 쓰인다는 핑계로 얼굴에 얼음팩을 대고 누워서 웹툰을 보기로 했고, 새로운 폰으로 데이터 옮기는 방법을 배워서 옮기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에 앞에 앉아서 습관 기록을 했다. 저녁에는 아빠가 닭볶음탕을 해서 맛있게 먹었다. 어릴 때는 아빠는 집안일에 손도 안 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많이 바뀐 것 같다. 이젠 오히려 엄마보다 더 요리를 많이 하신다. 심지어 잘하신다. 종종 단호박에 오리고기와 각종 야채를 넣는 고급 요리를 선보이기도 한다. 엄마는 일을 두 가지나 하셔서 매일 피곤한 상태기도 해서 못 하는 거라 생각한다. 여하튼 오늘 닭볶음탕에 있던 당면이 정말 쫄깃쫄깃하고 맛있었다.
생각해보니 아빠가 쉬는 날에는 거의 항상 저녁을 차려주신 것 같다. 나는 요리를 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직접 만들지는 않고 배달을 많이 시켰었다. 아빠가 요리를 하면 나는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좋은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람이 있어서 요리를 자주 하시는 것이 아닐까. 사실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귀찮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굉장히 무료한 인생이 된다. 아빠가 쉬는 날에 계속 등산을 하고 장을 보시고 요리를 하시는 것도 매일 비슷한 삶의 과정에서 아빠만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해준다면 의미가 더 강화될 것 같다.
저녁을 먹으면서 1박 2일을 봤다. 어버이날 특집으로 효에 관련된 주제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최근에 1박 2일이 조금 재미없어서 오늘도 그냥 밥을 먹으면서 시간을 때울 겸 틀어놨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2인 1조로 물바가지를 옮기는 게임이나 복불복 음식을 먹는 것 등. 모두가 잘하면 재미가 없어서 일부로 재미있게 만들기 위하여 과장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그들도 게임에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당연한 것 같다. 덕분에 엄마 아빠와 하하 호호 웃으면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조금 후반부에 되어서는 어떤 시인의 ‘아버지’에 관한 시를 들려주었다. 이런 진지한 상황이 되면 괜스레 어색해진다. 부모님을 사랑하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사랑한다고 말을 한 적은 없다. 왠지 낯간지러운 느낌이다. 그래서 괜히 딴소리를 하기도 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사실 서로 알고 있을 것 같다. 말만 하지 않았지만 가족을 챙기는 것은 행동이라 다른 언어에서 충분히 느껴지니까. 날씨가 추우면 따뜻하게 옷을 입고 가라는 한마디, 감기가 걸리면 몸은 괜찮냐고 병원은 갔다 왔냐고 묻는 한마디, 치과 치료를 하고 왔더니 바로 죽을 챙겨주는 행동 등. 이런 말과 행동들은 상대를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니까.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지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님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감정 표현을 줄이지는 말자.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간접적인 표현은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나중에 표현조차 할 수 없을 때 후회하지 말고 사소한 이야기라도 부모님과 나눠야겠다. 다행인 것은 예전에는 엄마 아빠가 물어보는 것에 수동적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엄마 아빠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도 물어보기도 한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되게 커 보였다. 고민과 스트레스는 별로 없고 잘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른이란 당연히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성숙해지니까 고통도, 스트레스도 잘 해결하면서 살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이가 든다고 고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책임감이 생기면서 더 혼란스러워졌다. 심지어 나는 지금 내 인생 하나만 생각해도 이렇게 불안하고 막막한데, 부모님은 자식의 인생에 대한 고민도 많으실 것이니 그 막막함을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있을까.
세상에 위대한 사람은 많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부모님이다. 내가 이렇게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고,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한 것 없이 주시려 노력했으니까. 엄마 아빠의 성실한 모습을 본받아 나도 꾸준하게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래서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부모님이 최대한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드리고 싶다.
지금까지 롤모델을 외부에서 찾았지만 롤모델은 가까운 데 있었다. 나를 만들어주시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신 부모님. 종종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런 사소한 감정은 부모님과의 관계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보던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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