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의 죽음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막연하게나마 누구든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죽음은 무섭다. 특히나 나는 걱정이 많은 개복치 성격이라 날마다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조금만 덜컹거려도 추락하는 상상을 하고 손잡이를 붙잡고 벌벌 떤다. 우리 집은 15층이라서 한층 한층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며 이 위치에서 떨어지면 죽을 것이다, 3층 정도면 추락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길을 걸어가면 자동차가 나에게 돌진해올 것 같고, 가게의 간판이 내 위로 떨어질 것 같다. 지하철이 막 도착했지만 바로 코앞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달려가다가 문이 닫혀서 끼일 것 같아서 애초에 탈 생각도 하지 않는다. 비행기를 타면 내내 추락 생각하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이런 사고로 인한 죽음 말고도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많다. 육체는 편하지만 정신이 불편했던 시기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할 때, 사는 것이 즐겁지 않을 때, 삶의 의미가 없었을 때였다. 지금이라고 엄청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심했다. 고백하자면 그때는 잠깐의 일탈을 하고 싶었는지 허벅지를 칼로 슬쩍 그어본 적도 있다. 물론 아주 살살. 엄청나게 가난한 것도 아니었지만 뭐가 그렇게 힘들었나 생각해보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삶이 싫었고 소심한 내 모습도 너무 싫었다. 지금 상태로 평생 살아가야 하는 게 답답하기만 했다. 이 당시에의 죽음에 대한 고민은 발전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죽지 않은 이유는 무서웠기 때문이고 부모님에게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았다. 죽음에도 용기가 필요하던데 맞는 말이다. 아픈 것은 싫었다.
성장의 죽음
성인이 되어서는 조금 발전적인 죽음을 고민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교학팀에 취업했을 때 철밥통 같았던 업무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이런 식으로 평생 일하다가 늙어서 죽음이 닥쳤을 때 과거를 돌아보면 후회할 것 같았다. 이렇게 시간을 버리는 삶을 살면 안 되고 개인의 창의성이 중요한 일을 하자고 다짐했다. 이 죽음의 고민은 나를 디자이너로 만들어주었다.
지금도 죽음을 생각하며 후회를 덜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회사에 헌신하는 삶이 아니라 홀로서기를 하자고 다짐한 것이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라 되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경력과 괜찮은 처우를 받았지만 회사에서의 한계가 느껴졌다. 회사는 개인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 평생 회사에서 일을 하고 정년퇴임을 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했던 모든 것은 회사의 서비스를 발전시켜주는 것이었고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능력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그 능력도 결국 특정 회사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그래서 회사가 아닌 내가 나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을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기대수명이 늘어났다고 하나 내일 당장 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 몇 년 뒤에 병으로 죽을 수도 있고. 여전히 죽음을 생각하면 무섭기만 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죽음이 무서운 이유는 생이 끝나는 것 자체는 아니라 그저 아플 것 같아서였다. 추가로는 부모님이 슬퍼할까 봐서. 아직은 죽음의 가치를 점점 늘리고 있는 과정이기는 한데, 죽는다는 것이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나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아쉽다고 느낄 수 있는 경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어가고 있다. 젊을 때는 평생 젊을 것 같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체는 점점 시들어간다. (정신도) 그저 시키는 대로 순응하며 내 시간을 죽여갈지, 그 시간 속에서 나만의 것을 만들어낼지는 선택에 달려있다. 나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능력이 없더라도 평범하고 내향적인 사람도 자기의 것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죽기 전에 나름 내 것을 잘 남기면서 살아왔었다고, 두렵지만 용기를 내서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실패도 하고 종종 성공도 하면서 살았다고 나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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