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야나

실수는 좋은 것

by 점점이녕 2022. 4. 26.

(예전에 쓴 글 취합)

 

습관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꽤 많이 실패했다. 그림 그리기, 일기 쓰기 등등 한동안 지속하다가 중간에 그만두거나 아주 드문드문 작성한 것들이 많다. 이것은 실패니까 나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을까? 얼마 전까지는 이런 결과를 보면서 나는 왜 꾸준하지 못한 사람인가, 왜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인가, 하며 한탄했다. 그러나 부정과 긍정이 있으면 나는 부정을 크게 보는 사람이라는 것은 인지하게 된 이후로, 긍정도 잘 살피고 부정은 앞으로 조금씩 개선하면 된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꾸준한 삶을 살려는 목표를 세우고 행동도 하고, 한동안 지속을 해본 그 경험이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안다. (훠어어어얼씬)

 

아마 흐지부지되었을 때는 목적이 불분명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냥 꾸준하게 하는 것이 좋으니까 시작해본 거라서. 하면 좋지만 오래될수록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잃어서 중단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실패가 도움이 된 경험이다. 그리고 이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 하는 것을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실패를 빠르게 하고 깨달음도 빠르게 얻으면 좋다. 그리고 실패는 행동했을 때 비로소 발생할 수 있다

 

 

 

부족한 글쓰기의 시작

사실 이전까지는 충분한 경험이 쌓여야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하려는 마음가짐은 오히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벽주의의 폐해다. 나는 자기 의심이 심했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를 부족하게만 보았다. 생각만 하고 무의미하게 흘러간 시간도 몇 년은 되었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경험을 쌓자고. 완벽한 글쓰기가 아니라 부족한 글쓰기를 해보자고. 글을 쓰기 위해서 일부러 경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부족한 내 모든 것을 기록해보는 것이다.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를 종종 운영했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은 마음에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새로 만들었다. 블로그 이름도 부족하지만 나아간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방황한다, 고로 존재한다' 블로그가 개설되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모르겠으니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방황을 해보자고. 방황이 목표라면 실패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험을 위한 글쓰기에 관한 고민은 첫 포스팅에 담겨 있다. 그때의 생각을 일부만 가져와 보았다.

<2021.8.31의 일기 🖍> '사실 아직도 답답하긴 하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아직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경험을 쌓기 위해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생각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쓰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경험하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처음부터 너무 완벽한 글을 쓰려고 해서 오히려 시작을 못 했던 것 같다. 그냥 나는 부족한 사람이니까 부족한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애초에 목표를 '부족한 글쓰기'로 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1년 뒤에 보았을 때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글을 써보는 것이다. 만약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1년 뒤의 내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이 아닐까? 1년 뒤에서 여전히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1년간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겠고. 그리고 정말 피해야 할 것은 못 쓴 글이 아니라 평가할 글조차도 없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실패는 실패 자체가 아니라 도전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니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전에는 뭐가 그리 무서워서 시작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못 쓴 글을 올린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돈>에는 실수에 관한 에디슨의 이야기도 나온다.

 

천구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이 9,000번 정도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나는 실수는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전구를 발명할 수 없는 새로운 방법을 계속 배우고 있는 거라네. 매번 실수는 나를 점점 더 발명에 가까워지게 하고 있다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