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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

사소한 행복의 추구

by 점점이녕 2022. 4. 17.

 

세상에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몇 달 전에 우울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지 도대체 행복이라는 감정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때는 잘 알 수가 없었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한데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러다가 나는 행복 세포가 없이 태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결론까지 다다랐다. 

하하 호호 웃는 사람들을 보면 뭐가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워서 웃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단 한 번도 웃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억지웃음이기는 했다. 분위기를 망치면 안 되니까. 코로나가 터지고 마스크를 일상적으로 쓰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했지만 나는 마스크가 편했다. 입이 보일 때는 억지로 웃는 것이 조금 티 난다고 생각했는데 마스크는 그것을 가려줘서. 사회성이 결여된 나를 조금 숨길 수 있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편하게 웃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술에 취하면 조금 풀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술에 취한 채 살 수는 없으니...)

자기 발견 글쓰기 챌린지를 할 때 ‘나를 즐겁게 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이라는 주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 기억을 뒤져서 즐거움과 행복의 경험을 찾아보았지만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적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멍해 있었다. 그리고 조금 우울해졌다. 내 삶은 왜 이렇게 무의미한지.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챌린지를 포기하기는 싫어서 그냥 솔직히 적기로 했다.

‘사실 나는 즐겁거나 행복한 감정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 두려움과 걱정은 자주 느낀다. 좋은 일이 있더라도 여기서 안주해서는 안 돼, 더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고 나를 다그치며 애써 감정을 꾹꾹 눌러버린다. 거의 늘 긴장과 걱정모드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그런지 ‘즐겁다’든가 ‘행복’이라는 생각했을 때 딱히 떠오르는 것들이 없었다. 따라서 즐거움까지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행복과 즐거움의 단계를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긍정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으로. 기준을 낮추니 그래도 쓸 거리가 조금 생겼다. 그리고 주제별 가이드 글과 다른 동료들의 글을 보며 행복이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납득하고 사소한 거라도 적어보았다.

  • 넷플릭스에서 올라푸스 앨리아손의 디자인 철학을 보았는데 빛의 소외 계층을 위하여 귀여운 태양광 램프를 만든 것이 좋았다. 진정한 UX라고 생각했다.
  • 예전에 지하철에서 한 할아버지에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길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이가 어리면 다짜고짜 반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존칭이라니.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피노키오>라는 드라마를 보며 일의 의미와 윤리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재택 근무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고구마를 깎아주셨다. 말하지 않아도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피곤하지 않을 때
  • 책이나 영상 등 콘텐츠를 보다가 의미 있는 구절을 발견했을 때. 어떤 소설에서 앞에 있는 사람을 더 품속 깊숙이 안고 싶어서 팔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참 좋았다.

등등..

그러다 깨달은 것이 있다. 행복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는 것. 또 내가 너무 행복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 사소하게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무시하고 넘어갔다는 것. 완벽주의의 강박이 행복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늘 행복해야만 좋은 삶이고 의미 있는 삶이라고 착각했었다. 하지만 1분 1초, 시간, 하루, 한 달, 일 년, 수십 년을 어떻게 행복하게만 살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삶과 행복한 삶은 등가관계가 아니었다. 행복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추구할 때 ‘삶 자체는 의미 없다’라는 것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삶에는 의미가 없으므로 의미를 부여 하면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없는 것을 찾지 말고 내 삶에 내가 의미룰 부여해주자고 다짐했다. 행복도 똑같다. 행복하기만 한 삶은 없다는 것과 인생 자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자. 행복은 거창한 것도 아니며 그냥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을 때 시켜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사소한 것에서도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긍정적 기분일 수 있다.

삶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늘 행복해야 한다거나 늘 즐거워야 한다거나.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것을 찾지 말고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에서 의미를 가지자. 이렇게 하루하루 일기를 쓰며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1% 성장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재미있고, 슬프고, 기쁘고, 공허하고, 행복하고, 그저 그렇고. 이런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삶 자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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