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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

일상 속의 여행

by 점점이녕 2022. 4. 20.

여행은 설렌다. 전에 가보지 못한 장소에 가본다는 기대감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떠난다는 설렘.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하여 여행지에 대한 사전 조사는 필수다. 꼭 가봐야 하는 장소는 어디인지, 맛집은 어디인지. 자가용이 없다면 교통 정보도. 준비에 진심인 사람들은 시간 단위로 철저한 계획을 세운다.

 

인생도 장기 여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설레이거나 내일이 기대된다거나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이 많으면 많았지. 똑같은 하루의 반복도 지겹기만 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잠을 자겠군. 이런 삶을 몇십 년 동안 반복하겠구나! 삶은 지겹기만 했다. 종종 빨간 날사이에 연차를 넣어서 여행을 가는 것이 인생의 낙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여행의 기억으로 살아간다고.

 

과연 여행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장소로 가는 것? 사실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집순이기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귀찮기도 하다. 그러나 방에 처박혀 있는 삶을 사회에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히키코모리라는 단어는 보통 부정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에 반대되는 말은 없는 것 같다. 일반적이고 보통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에는 특별한 단어가 붙지 않는 법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외국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도 한다. 나에겐 그럴듯한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그러다 어떤 책에서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나를 놓아야 한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무슨 용기였는지 회사에 연차를 내고, 기차표와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하고 2박 3일로 혼자 부산 여행을 떠났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 경험이었다. 아마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과 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쌓였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여행 자체가 좋았냐고 한다면 그저 그랬다. 일단 너무 더웠고, 가보기로 한 명소가 공사 중이어서 모래바람만 얼굴로 맞이했다. 하지만 나 홀로 여행이라는 전에 해보지 않는 경험을 했다는 것과 처음으로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해봤다는 것 자체는 좋았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추천해준 횟집에서 물회를 먹은 것도 좋았다. 혼자 브런치 카페에서 와플을 먹고 사진을 찍고, 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많은 것들을 혼자 해봤다. (아쉽게도 눈치 보면서...)

 

사실 이전까지 바깥에서 무언가 혼자 한다는 것은 내향적인 성격상 너무 어려웠는데 이 여행을 계기로 많은 것들을 혼자 해보기 시작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혼자 오뎅을 먹어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거 아니지만 나는 정말 많은 노력과 용기를 가지고 시도해본 도전이었다. (며칠은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지나쳐서 실패했다) 오뎅이 먹고 싶은 것은 아니었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길거리에서 혼자 음식을 먹어보는 시도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아직 떡볶이까지는 못 해봐서 코로나 좀 풀리면 시도해볼 생각이다.

 

친구들과 4박 5일간 태국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한 친구가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에 진심인 친구여서 정말 시간 단위로 가야 할 곳, 먹어야 할 곳, 투어 프로그램이 세밀하게 짜여 있었다. 친구들에게 하루는 나 혼자서 여행을 해보겠다고 했다. 이건 한국의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먹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영어도 못 했고 태국어도 못 했으니까. 하지만 구글 지도를 활용하여 걸어서 큰 시장에도 가보고 썽태우도 혼자 잡아타보았다. 세계 1위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커피도 사 마셨다. 4박 5일의 여행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바로 이 하루였다. 오로지 내 계획대로 움직이고 혼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본 것.

 

그다음 목표는 치앙마이에서 혼자 한 달 살기를 해보는 것으로 잡았다. (코로나...)

 

 

일상의 여행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도 한번 부산으로 떠나보았지만, 단순히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 자체는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돌아다니는 것 자체는 힘들고 귀찮기만 했으니까. 새로운 풍경을 눈으로 보아도 별다른 깨달음은 없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고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가치는 ‘용기’였다. 이전에는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두려움이 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까 별거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혼자 떠나보기도 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는 말이 딱 이런 거라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이처럼 내가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경험인 것 같다. 꼭 새로운 장소에 가는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즉, 나에게 좋은 여행이란 나를 발전시키는 새로운 경험이다.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교훈을 얻는 것도 여행이며, 하루하루 일기를 쓰고 성장을 기록하는 것도 나에겐 여행이다. 오히려 서울, 경기, 대구, 부산을 줄줄이 돌아다니는 것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주는 그런 여행.

 

예전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것이 잘못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많은 경험과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행도 많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성장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나처럼 장소에서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글 속에서 더 멋진 세상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책은 하나의 세계다. 타인의 인생을 여행하는 것도 충분히 멋진 여행이다.

 

여행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여행이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인의 삶을 느껴보는 것도 여행이다. 또한 늘 걷는 똑같은 장소여도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달라진다면 그것 역시 여행이다. 여행은 일상에 있다. 여행의 의미에 관해 생각해보는 오늘의 나는 새로운 여행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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