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밥통의 폐해
24살, 대학을 막 졸업하고 학교 교학팀에 바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4학년 2학기에 도서관에서 근로를 하게 되었고 도서관 관장님의 소개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원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사실 졸업을 하고 무슨 일을 해야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돈을 벌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업무와는 별개로 진정한 직장인이 된 것 같아서 감회가 새로웠다. 20살 때부터 계속 아르바이트를 해오기는 했지만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새로운 환경이 걱정이 되면서도 나름 잘 해보자는 기대와 포부도 있었던 것 같다. 살짝 설레기도 했다.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은 매뉴얼에 정해진대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었고 생각보다 할 일도 없었으며 그나마 있는 일도 의미 없는 업무의 반복같았다. 공문을 하나 보낼 때는 어떤 문장에서는 마침표를 띄어쓰기 두 번을 하고 찍는다거나 쓸데 없는 형식에 신경을 써야했다. 업무 처리 과정도 담장자, 팀장, 학장 등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그저 도장을 찍는 과정만 반복될 뿐이었다. 정규 직원들은 최대한 계약 직원들에게 업무를 주었고 팀장님은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 술을 먹고 늦게 나오기 일쑤였다. 이런 것을 철밥통이라고 할까. 각 부서는 일이 터지면 최대한 다른 부서로 돌렸다. 언젠가 한번은 조금 큰 일이 터진 적이 있는데 팀장님이 우리 팀의 과거 자료 조사를 시키는 업무를 주셨다. 일을 해결하기 위함인가 잠깐 생각했지만 우리 팀에 관련이 없다는 자료를 조사하라고 했다. 일의 철학이라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외에도 일이 없어서 업무 시간에 영화를 본다거나 다른 팀에 전화를 하면 담당자가 짜증부터 낸다거나(나이 많은 인간이었다.) 지원비를 소진하기 위하여 개인적인 일에 사용한 것을 회계처리 하려고 사인을 조작하는 등 내가 이런 학교에 다녔다는 것이 창피할 정도로 더러운 시스템으로 학교는 굴러가고 있었다.
그냥 기록해볼 겸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을 나열해보자.
- 인수인계를 받을 때 팀장님에게 커피 타는 것을 배웠다. 각설탕을 몇개 넣어야하는지.
- 열정이 없는 사람들
- 일이 별로 없어서 시간을 때우면서 보내는 하루들
- 최대한 다른 팀에게 일을 떠넘기는 분위기
- 술먹고 늦게 출근하고 때로는 출근조차 하지 않은 책임감 없는 팀장
- 매뉴얼에 따라서 하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들
- 쓸데없는 절차만 중시하는 업무 환경
- 능력을 쌓을 수 없는 업무
- 지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교수들
- 본받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
- 자기 딸의 통장을 만드는 일을 시켰던 팀장
- 업무적으로 전화를 했을 때 자기보다 낮은 직급이면 짜증부터 내는 사람
- 각종 비리와 사인 조작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일을 하는 것인지, 삶의 철학이나 일의 철학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평생 이렇게 산다면 나이가 들어서 죽기 전에 내 삶을 돌아보면 분명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시간을 때우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나는 계약직이어서 계속 여기서 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2년이라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때 읽고 있던 책에서 딱 지금의 내 상황을 설명해주는 글을 발견했다.
나는 하루 종일 책상에 그냥 앉아 있었다. 정말로 화분처럼 그냥 앉아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여기는 어디일까? 이런 철학적인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봤고... 회사는 도대체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혹시 달력이나 옷걸이 같은 것을 뽑으려 했는데 잘못해서 내가 뽑히게 된 것은 아닌지...
“여긴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게 주 업무야. 생각하기에 따라선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것도 꽤나 고된 노동이지.”
실제로 그랬다. 여기는 그냥 자리를 꾸준히 지키는 게 주 업무다. 과장도 그 일을 하고 있고, 계장도 그 일을 하고 있고, 대리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즉! 모두 자리를 지키는 일을 한다. 그리고 자리를 지키면 월급이 나온다.
솔직히 조금 맥 빠지는 기분이었다.
견뎠다. 밤나무와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사이좋게 한 그루씩 피어 있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육 개월 내내 창밖을 바라보며 그 시간들을 견뎠다. 아니다. 견딘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시간들이 그냥 지나갔을 뿐이다. 어떤 날은 길 건너편 붕어빵장수 부부가 하루 종일 붕어빵을 몇 개나 파는 지 세어 본 적도 있었다.
“하루 종일 칠백 쉰 두 봉지! 우와, 부자 되겠군.”
그리고 왠지 모르게 늦가을의 비쩍 마른 옥수수 대처럼 내 속은 텅 비어갔다. 세상은 전쟁이라는데 내 인생이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해도 되는 것일까.
그맘때쯤 가끔 불안이 엄습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않나? 달려온 세월이 있는데, 남들보다 더 빨리 달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남들이 뛸 때 대충 같이 뛰고 같이 고통 받았는데. 무엇보다 나는 심심했다. 술자리에 가면 친구들은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하고 빈정댔다. 맞는 말이다. 나는 상상임신을 한 것처럼 자꾸 헛배가 불러왔고, 나태와 굴욕과 아무 생각 없는 날들과 무엇이든 귀찮아지는 병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나의 뱃속을 채웠다.
이건 아닌데. 정말 열심히 살고 싶었는데.
<캐비닛>
# 옷걸이가 되기 싫어
경각심이 들었다. 나도 달력과 옷걸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을 수 있다. 옷걸이로 살고 싶지 않았다. 9시에 출근하여 점심 시간만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고, 또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고. 어떻게 보자면 일도 없고 돈도 버는 편한 직장이었지만 계속 불편했다.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았다. 만약 계약직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고 해도 이렇게 살기는 싫었다. 매뉴얼대로 진행하면 되는 업무. 머리만 바꾸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인수인계를 3일 정도 받고 일을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3일만에 대체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톱니바퀴였다. 내가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인간인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앞으로는 창의적인 업무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자고. 시간을 버리지 말자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일을 하면서 철밥통 집단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는 공무원을 준비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안정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어서 왠지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안정적인 환경의 폐해를 확실히 깨달았다. 어떻게 해도 잘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인간적으로, 능력적으로 도태되기 딱 좋았다. 이것 하나는 제대로 일깨워 주었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쓸데없이 공무원 공부를 하거나 위계 질서와 체계만 중시하는 기업을 준비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됐으니까. 어떤 일을 해야할지 기준을 만들어준 것에 감사한다.
# 디자인을 시작하다
그렇게 창의적인 업무와 대체되지 않는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할지 또 고민에 쌓였다. 답이 바로 나온 것은 아니다. 광고홍보가 전공이었지만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했다. 그렇게 국비지원으로 디자인을 알아보았다. 디자인이라면 창의성이 중요하고 개인의 사고와 능력이 중요한 분야라서 쉽게 대체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전문적인 능력을 쌓아야했지만.
다양한 학원을 알아보면서 상담을 받으러갔고 얼떨결에 상담사의 말빨(?)에 낚여서 생각보다 빠르게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일을 바로 그만두지는 않았다.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퇴근 하고 학원을 다니고 업무 시간에는 학원 숙제를 하면서 시간을 나름 효율적으로 보냈다. 새로운 도전과 이전과는 다르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나의 능력을 쌓고 있는 것 같아서 나름 보람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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