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걱정이 많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치도 많이 보는 소심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소심한 성격이 싫었다. 자기주장이 강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쉽게 이야기하고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이상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도전정신이 강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 누구에게는 무척 간단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소심하게 태어나서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지 억울해했던 적도 있다. 애초에 활발하게 태어났다면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성격을 바꾸어보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았다. 대학생 때는 팀플을 하면서 다른 팀원들이 내키지 않아하길래 내가 발표를 한다고 한 적도 있고 팀장도 여러 번 맡았었다(하기 싫어하길래 내가 한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도 사회생활을 경험할 겸 시작했다. 성격 바꾸기 관련한 책도 읽었고, 책에서 사람을 많이 만나라고 해서 독서 동아리에 가입했던 적도 있다. 새로운 환경에 나를 놔보기 위해서 혼자 여행을 간 적도 있다. 그러나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소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질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다른 누군가는 살면서 성격이 180도 바뀌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 사람은 쉽게 바뀌는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정말 쓸데없는 걱정들과 소심함
- 상대방이 평소보다 무뚝뚝해보이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생각한다.
-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말, 행동 하나하나가 의식된다.
- 나의 본모습을 들킬까봐 사람을 잘 만나지 않고 깊게 친해지지 않는다.
- 비행기를 타고가는 내내 추락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난기류를 만나면 심장은 폭발할 것 같다.
- 공사하는 곳을 지나가면 갑자기 무너져내릴 것 같다.
- 그냥 길을 멀쩡이 지나가더라도 갑자기 간판이 떨어져서 나를 덮지지 않을까 상상한다.
- 타야할 지하철과 버스가 정거장에 도착해있을 때 뛰어가다가 문이 닫히면 내가 끼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웃기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일부러 다음 차를 타는 것처럼 느릿하게 걸어간다. (신호등도 마찬가지)
- 버스에서 내릴 정거장에 버튼을 누르고 섰는데 기사님이 문을 안열어 주셨다. 말을 못하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한 정거장을 걸어서 돌아왔다.
- 횡단보도에 서있으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 코로나는 싫지만 마스크를 쓰고다니는 것은 좋다. 어색한 표정을 가려주기 때문에.
- 대화를 하면서 억지 웃음을 지은 적이 많다. 사실 정말 웃겨서 웃은 적은 많지 않은 것 같다.
- 은행에 가면 강도가 들 것 같고
- 지하철을 타면 탈선을 할 것 같고, 버스를 타면 갑자기 폭발할 것 같고
- 지나가는 사람이 갑자기 칼부림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 .....
# 사람이 불편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살 수 없다. 어떻게든 사람을 만나게 되어있다. 나는 사람이 정말 불편하다. 새로운 사람은 당연하고 심지어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도 불편하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그들이 하는 말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머릿 속으로 생각을 하다가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대화가 끊긴 적은 비일비재하다. 아마 그들은 내가 이야기에 반응이 없거나 별로 교류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어릴 때부터 이런 성격이라 사람을 만나는 일은 최대한 피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대화를 할 일도 적어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많이 부족하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오히려 더 실행함으로써 부족함을 메꿔야하지만 부족하다고 계속 피해왔다. 부족이 더 부족해지는 안좋은 방향으로 흘렀던 것 같다. 슬프게도 활발한 사람은 계속 사람을 만나서 교류하며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키우겠지만, 소심한 사람은 더더욱 사람을 피하며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없어질 것이다. 갑자기 위기감이... 😥
#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까
내가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면 어쩌나 항상 고민한다. 보통 처음 만나면 가족관계를 많이 묻는다. 가족은 몇명이냐, 언니/오빠/동생이 있으면 몇살이냐 무엇을 하느냐 등등. 하지만 어릴 적에 친구에게 아빠는 뭐하셔?라고 물었다가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관계도 쉽게 묻지 못하게 되었다. 말하기 싫은 가족사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상상을 해보니 나도 언니가 있지만 사고로 언니를 잃었다고 생각하면 '언니 있어?' 라는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막막할 것 같았다. 있다고 하면 언니는 뭐하냐는 질문이 들어올테고, 없다고 하자니 '그럼 외동이야?' 이런 질문이 들어와서 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상상하니 막막했다. 그렇게 가족관계는 쉽게 묻지 말자는 결론이 났다.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
이렇게 말에 대한 고민을 함에도 가끔은 생각없이 말을 하게 될 때도 있다. '생각없이'라고 적었지만 그때는 문제될 것 같지 않은 말이었지만 상대방의 반응 및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보니까 문제가 될 것 같은 말이었다. 이럴 때는 나중에 집에 와서 내가 한 말을 곱씹어보다가 실례가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후회를 하며 잠 못들지 않는 밤도 많았다.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그냥 가만히나 있을 걸. 혹시 상처받았으면 어떡하지?' 등등. 하지만 굳이 그 사람을 찾아가서 '이런 말에 상처받았어요?' 라고 묻는 것도 소심해보일 것 같아서 하지 않는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은 생각도 지금 든다. 총체적 난국이다. ㅜㅜ
# 인간관계 스트레스에 쥐약
학교를 가든 회사를 가든 나는 공부와 일보다는 인관관계가 항상 걱정이었다. 지금은 회사원이니까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일을 못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도 결국 일을 못해서 사람들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할까하는 이유였다. 이직을 상상해도 업무보다 경력으로 뽑았는데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지, 텃세가 있으면 어쩌지- 이런 고민들이 주를 이루었다. 회사에서 성과를 신경 쓰는 것도 내 개인적인 만족보다 주변 사람들이 평가를 좋게 받기 위함이었고. (지금은 조금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회사에서 신규 입사자가 들어와서 내가 어지저찌 준사수가 된 적이 있다. 기대보다 훨씬 일을 못했다. 일단 내가 알려주는 입장이었고 이것저것 정리해서 알려줬음에도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시기에 나는 정말 하루 '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며 나를 망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는 시간에는 어떻게 말해야 기분 나쁘게 말하지 않을까 고민을 했다. 멀티가 되지 않는지 고민으로 멍때리게 되었고,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 회사에 늦게 출근한 적도 많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 신경이 쓰여서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기분이 나빠서 그 사람이 폭발하여 폭력을 휘두르면 어쩌지 하는 고민도 했던 것 같다. 퇴근하고? 말해 무엇하나.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람의 역량이기 때문에 일단 말을 하고 나서는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예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여하튼 나는 이론으로 알고 있다. 이런 걱정들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하는 걱정의 99%는 실제로 이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책을 읽고 마인드를 바꾸자고 다짐을 여러번 했음에도 걱정은 계속 나에게 달라붙었다. 그래서 결론을 냈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고 걱정과 불안을 떼놓을 수 없겠구나.
#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걱정도 많고 불안이 많은 사람이다.
예전에는 활발하고 걱정이 없는 삶을 이상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불안함에 가득찬 내 현실과의 괴리에 나는 자주 우울에 빠졌다. 나는 왜 이럴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읂데, 어떻게 하면 활발해질 수 있을까, 나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등등. 하지만 어떻게 하면 외향적이게 될 수 있는지 생각한다고 외향성이 높아지지 않는다. 소심함을 없애기 위해서 억지로 사람을 만나면 또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느 순간 그냥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인정을 하자고 다짐했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유부트에서 심리관련된 컨텐츠로 많이 봤고 책도 많이 봤다. 걱정만 하지 말고 그냥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뭐라고 시작하라는 이야기가 많아서 조금은 그런 마인드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인정하니까 오히려 더 나아졌다. 억지로 활발하려고 나를 갉아먹는 활동들에 신경을 덜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게 되었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 지금 글을 쓰는 것도 그 활동의 일환이다.
그리고 목표도 생겼다. 나처럼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들도 충분히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자는 것. 내가 가질 수 없는 외향성을 위해서 억지로 외부 활동을 하고 활발하고 능동적인 척 자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방법으로 삶을 가치있게 살 수 있다는 것. 이런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다양하게 시도하고 실패하고 작은 성취감을 느껴봐야한다. 그래야 뭐라도 이야기해줄 것들이 있을테니까.
또 꼭 성공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매우 우울했을 때 긍정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같이 우울하고 공황장애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과 환경에 있는 사람이 있구나. 그 분이 공황장애가 심하게 온 시기의 일기를 읽으면서 울 때 나도 같이 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많이 나아졌다.
# 소심이의 홀로서기
어제에 이어서 또 한번의 퇴사 다짐. 분명 많은 실패를 할 것이다. 생각한 것 만큼 성과가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고 과거에 한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와 후회의 스토리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후회가 없는 삶이 어디있겠는가. 특히 나처럼 소심한 사람들은 매 순간 후회 속에서 산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말이다. 회사를 꾸준히 다녀도 과거에 왜 더 용기내서 도전하지 않았는지 후회를 할 것이고, 퇴사를 하더라도 왜 준비되지 않은 채 나왔는지 후회를 할 것이다. 어차피 후회를 할 거라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자.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또 한 번 훑어보니 내가 매우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다짐했으니...! 아직 나를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못하겠지만 이렇게 글이라도 써보니까 나를 조금은 알아가는 기분이다. (솔직히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나는 나와 친해져야 한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나야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 9. 16 끄적임 + 경험을 쌓는 중 (0) | 2021.09.16 |
---|---|
2021. 9. 15의 끄적임 (0) | 2021.09.15 |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좋아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 (0) | 2021.09.14 |
월급 루팡과 꼰대에 대한 고찰 (0) | 2021.09.01 |
경험을 위한 글쓰기 (0) | 2021.08.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