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된 것 같다. 최근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열심히 칼퇴를 하는 신규입사자를 보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업무를 제대로 끝내지 않았으면 업무 시간이 지났더라도 다소 추가 근무를 하고 어느 정도 마무리를 하고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작업 속도는 느리고 퀄리티는 좋지 않고,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내가 문제일까, 그들이 문제일까 계속 고민을 해보았다.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위와 같이 근로자를 설명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회사에 제공하고 그에
따른 돈을 받는다. 월급이다. 일반적으로 회사원의 근무시간은 9시에서 18시다.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은 1주에 40시간, 1일에 8시간을 근로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 회사에서 9시간을 보내고(점심시간 포함) 바로 퇴근하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근무 시간에 제대로된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계약을 불이행했으니.
내가 그들의 컴퓨터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업무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재택이 있기도 하고. 그러나 투자 시간 대비 작업물의 퀄리티를 보면 제대로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결론이 났다. 월급 루팡을 만났다.
나는 팀장도 사수도 아니다. 회사에서 기술력이 필요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사내에 전문가가 없어서 내가 이런저런 강의를 들으며 프로젝트를 진행시켜왔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후 그 다음 단계는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었다(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전공자/전문직을 채용하고 나는 내 본업에 집중하려고 했다. 기대한 것은 그들이 가진 전문 기술을 살려서 프로젝트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었다. 면접에서 그들은 자신의 적절한 지식과 노동력을 제공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두 명의 전문가가 채용이 되었다. 한 명은 팀장 경험도 있는 경력직이었다.
두 명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일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동적이었다. 그리고 2-3일이면 끝날 업무를 2주를 붙잡으며 저퀄리티로 뽑아내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도졌다. 고퀄은 포기했고 적어도 중퀄리티로 높이기 위하여 디테일한 피드백을 계속 제공했다. 바닥부터 내가 쌓아온 프로젝트라서 잘 운영되었으면 했다. 소심한 성격이라 피드백을 하면서도 너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것은 아닌지 말할까 말까 고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고심하여 전달한 피드백들은 수정이 안 되어있는 것도 많았고, A를 수정하면 새로운 B라는 문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다음 이슈를 진행하면 이전에 이야기했던 A라는 문제가 또 발생했다. 이들이 정말 전공자가 맞는지, 일을 할 생각은 있는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는 것인지 매우 답답했다. 그렇게 내 속은 타들어갔다.
합리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나도 신입 시절 어리버리한 올챙이였을 수 있다. 일할 의욕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상사가 보기에 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때의 나도 누군가에게는 월급 루팡으로 비쳐졌을 수 있다. 사실은 그들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인데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기준이 높아서 사실은 잘 하고 있는 것인데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정말 이런 이유라면 나의 스트레스는 오로지 내 문제였다.
온갖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못하는 사람이 있어야 내가 잘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으니 사실은 그들이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건 조금 위안을 주기는 했지만 또 저퀄리티의 산출물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쓰렸다. 이게 정말 최선인가? 내가 월급은 주는 것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 매우 못마땅했다. 책임감 없이 일을 하는 모습이 꼴보기 싫었다. 아... 이게 젊은 꼰대인가.
라떼는 말이야...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하루에 포스터 디자인 4개를 해야했다. 수량을 채우기 위하여 밤 늦게 택시를 타고 간 적이 많았다. 야근 수당은 없었다. 그래도 내 실력을 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꽤 오랫동안 무료 야근을 했다. 때때로 퇴근을 하고 집에서도 일을 할 때도 있었고, 주말에도 일을 할 때도 있었다. 일을 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는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번다고 생각했다. 뭐 물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업무 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해서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6시가 되었다고 해도 '내 할 일은 끝-' 이러고 퇴근하지는 않는다.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칼퇴를 하는 것은 도둑심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내 회사가 아닌데 내 일처럼 여기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수당을 받는 것에 동의를 했으면 본인이 적절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적어도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주었으면 한다. 내 일이 아니니까 문제가 발생하든 알게 뭐야-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한다.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드백을 잘 하면서 일을 진척시켜 나갔으면 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피해를 주지 말았으면 한다. 워라밸이 중요한 것은 알겠다. 그러나 '라밸'을 추구하기 전에 '워'는 제대로 제공을 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생각을 적고 나니까 더 꼰대 같기도 하다. 😥 무슨 나는 1분 1초 의미있게 일하는 사람같네... 물론 아니다... 나중에 글을 보면 이불킥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 따로 포장을 하지는 않겠다. 그냥 이렇게 무책임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 조금 아쉽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과 프로젝트 퀄리티를 높이고 싶었는데. 어차피 회사를 다닐 거라면 본인도 성장하고 회사도 같이 성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회사에는 9시간만 있으면 돼(버티면 돼), 일을 못(안)하든 누가 뭐라 하든 알게 뭐야 월급만 받으면 되지-라는 식으로 회사 생활을 하면 정말 내 시간을 회사에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본인도 얻는 것이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는데 말이다. 뭐 돈은 얻을 수 있겠다.
그런데 퇴사를 생각하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글을 쓰니 회사에 뼈를 묻은 사람 같아 보이긴 하다. 물론 뼈를 묻지는 않았다. 그저 무언가 해야한다면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도 발전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이건 꼭 회사와 직원 간의 관계가 아니라 삶의 전반에 걸쳐서 추구하는 나의 철학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새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이렇게 일에 의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게 되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데, 결론적으로 글쓰기의 주제로 삼았으니 나에게 좋은 경험인 듯하다. 또 세상을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다음에 이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 지금보다 조금은 유연해지지 않을까? 갑자기 기승전개이득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아졌다. 이래서 일기를 쓰나보다.
'나야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 9. 16 끄적임 + 경험을 쌓는 중 (0) | 2021.09.16 |
---|---|
2021. 9. 15의 끄적임 (0) | 2021.09.15 |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좋아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 (0) | 2021.09.14 |
내성적인 프로걱정러의 삶 (0) | 2021.09.10 |
경험을 위한 글쓰기 (0) | 2021.08.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