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요양원병에 계신다. 어릴 적 시골에 방문하면 똥강아지들이라고 반겨주던 할머니는 이제는 우리의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신다. 종종 병문안을 가면 항상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아빠와 삼촌들은 모두 사회생활을 하고,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집에서 돌봐드릴 수 없는 상황이다. 생각해보면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서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깝다. 요양병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활동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리 좋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만약 요양병원 내에서도 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한편, 이건 할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어르신들, 그리고 나이를 분명히 먹을 우리들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와 정신적 이슈를 떠나서 좋아하는 활동을 하고, 자기 시간을 의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편 장애를 가진 친척이 있다. 친척의 삶을 보면 평범한 일상조차 힘겹게 느껴진다. 일반적인 학교에 다니는 것도 어렵고, 가족은 항상 그의 상태를 염려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가족은 그를 위하여 평생을 헌신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경제적 부담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상적인 여유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돌아보면, 돌봄이라는 것이 개인과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 생명이 사회적으로 규정한 일반적인 기준에 벗어났을 때 그것을 단순히 한 가족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시청각 장애인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은 시청각복합장애를 가진 한국인이 영국에 방문하여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 체험하는 내용이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그들은 음악을 귀가 아닌 소리의 파동으로 느끼며 연주를 배우고 있었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며,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보겠냐는 질문에 한국 남성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살아서 처음 경험하는 시원함이었다며 황홀한 표정과 감사를 했다. 그러는 한편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림자 속에서 지내야했던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씁쓸해 했다. 그는 “어둠과 적막에서 살아온 세상은 같았지만, 영국의 달팽이들은 웃고 있었다.”라는 표현을 했다. 사회적으로 돌봄이 어떻게 제공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돌봄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다. 우리는 모두 늙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애를 가질 수 있으며, 언젠가는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 돌봄의 질은 정신과 육체의 상태와 상관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간디는 “한 국가의 위대함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말했다. 돌봄 문제를 계속 외면한다면 더 나은 사회로의 발전은 가로막힐 것이다.
나이가 들어 돌봄이 필요하게 될 날을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처럼 개인과 가족이 모든 부담을 떠안는 사회에서는 결고 존엄한 노후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지혜를 쌓고, 다른 감각이 부족하다면 또 다른 감각이 더욱 발달하여 특별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세상은 모든 것이 평범하거나, 그 이상이 아니라면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일반적인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 장애가 있든 없든, 몸이 불편하든 상관없이 평범한 취미를 즐기고 일상의 삶을 느끼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더 나아간다면 ‘장애’라는 의미조차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을 무한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가치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과 개인의 인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지속적으로 이슈를 제기하여 삶에 있어 중요한 생각거리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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