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예전 같았으면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이 없는 생각들을 나열하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적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많은 철학자들과 삶을 먼저 걸어나간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 역시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나름대로 나에게 맞는 길을 잘 설정해 두었고, 행동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구나. 그 길은 물질적인 것에 목매지 않고 지속적으로 내면의 성장을 추구하며 주변에 베푸는 삶이다.
오늘은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좋은 삶의 기준을 알아보았다. 세상이 창조된 후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했던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아니, 반대로 이야기해서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시간에서 자신의 정신과 감정, 판단과 행동으로 나름의 삶을 구축하며 살아갔을까. 게 중에는 내 삶의 비전과 전혀 맞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이런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존재가 있다면, 분명 일반적으로 사회에 좋다고 여겨지는 삶의 방식은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산업화 이후에 개인화, 물질화가 되면서 소유의 욕심이 늘어나고 비개인화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본받을 만한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환경을 파괴하거나, 분란을 조정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비판받아야할 존재들도, 삶의 가치를 찾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배워야한 존재르 학습하고 있다. 부정적인 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는 하지만 분명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은데, 사회는 왜이리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인간 실격의 사회가 되는 것처럼 느껴질까. 어쩌면 부정의 영향을 크게 받아들이는 인지 편향일 수도, 시야가 좁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을 바꾸고 많은 사람들에게 옳다고 여겨지는 방식을 주입하고 싶다거나 하는 원대한 꿈이 있지는 않다. 그저 내가 만족하는 내 삶을 스스로 구축하고 싶고, 그 과정에서 비슷한 비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질적인 것과 눈에 보이는 대상, 사회적 인정, 권위와 같은 것보다는 지속가능한 내적인 성장과 점점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많은 사건사고와 감정들을 올곧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갖추고 싶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얻어진 지혜를 바탕으로 덕을 실천하는 살미 좋은 삶이라고. 회사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능력이 낮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인지 편향의 사례다. 이 효과에서 중요한 측면은 아래 두 가지가 있다.
- 무능한 사람은 자신의 무능을 인지하지 못한다.
- 능력 있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 할 수 있다.
아마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것은 무능한 사람들이 자신의 무능을 이해하기를 바랬으며, 무능을 인정해야 모르는 것을 배워야겠다는 태도가 갖추어질 수 있다고 보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과 귀, 그 모든 것이 닫혀서 아무것도 들어갈 여지가 없으니까. 그러한 점에서 시간이 갈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끼고 점점 겸손해지는 내 머리가 나름 좋은 삶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가끔은 아무리 학습해도 너무나 멍청한 것 같아서 답답하기는 하지만 어느 순간 덜 멍청해진다고 여겨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긴 한다. 그런데 어쩌면 평생을 멍청이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 부족을 항상 느끼면 마음은 종종 아프지만 그냥 소소한 것에서 만족과 성취를 느끼며 계속 배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멍청이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인지하고 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덕’이라는 단어가 좋다는 것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몰랐지만 이번 기회에 알게 됐다.
- 지혜 :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끊임없이 배우는 것
- 용기 : 위험이나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
- 절제 : 욕망과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
- 정의 : 개인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행동하는 능력.
지혜와 용기, 절제는 개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이며, 정의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할 능력이다. 먼 과거에는 종교나 사회에서 규정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는데 중요한 삶에 있어서의 덕 중에 3가지가 개인이 갖추어야 할 능력이라니. 소크라테스가 신성 모독과 젊은이들의 타락의 죄목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좋은 삶을 전파하는 존재를 죽이기 위한 사회도 있었다. 즉, 사회에서 규정한 것이 항상 옳다는 것이 아니다. 꼭 소크라테스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의 역사를 본다면 개인은 자신의 의미를 모르고 잘못된 것도 맞다고 믿으며 휘둘려왔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 나에게 좋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삶을 위하여 일생을 사색하고 행동했던 사람들에게 배우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반면교사도 좋다. 자신과 세상, 삶에 대한 고민 없이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이 어떠했는지. 잘잘못을 따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의미 있게, 좋게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시간과 함께 축적되어온 지혜를 배우고 싶을 따름이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가정에서 사회화를 거치며 아주 부족한 인간에서 그냥 부족한 인간 정도는 되었다. 지금은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가 내 스스로 이끄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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