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항상 느끼는 것은 왜 이렇게 느낀점이 없을까-다. 읽을 때는 나름 인상 깊었던 문장들에 밑줄도 치고 메모도 달아두지만 막상 책 한 권에 대해서 리뷰를 작성하려다 보면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정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생각과 깨달음은 있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서 글로 잡히지 않는 상태일 수도 있고,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지혜라서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일단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리고 생각을 구조화 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등장인물은 크게 야콥 야코비, 아벨 바우만이다. 야콥의 전처, 어머니, 돌아가신 아버지, 동생, 동생의 비서, 바우만의 아내와 아들 등도 나오지만 핵심 인물은 야콥과 아벨이다. 야콥은 실패한 심리학자다. 이혼도 했고 자산도 없어 전처와 동생에게 신세를 지며 살아간다. 고객도 없다. 그러다가 전처의 새남편에게 거나하게 얻어맞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자신을 신이라고 말하는 아벨 바우만을 만난다. 아벨은 야콥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다. 내 코가(진짜 코도 문제였지만 진짜 코는 아님) 석 자였지만 야콥은 이 정신병자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흥미를 느끼며 단 한 명의 고객으로서 상담을 해주기로 한다.
아벨은 서커스 단원, 조종사 등 다양한 직종을 망라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칭을 한 이유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선한 의도로 사람들을 도왔지만 인간 세상은 더 이상 그의 능력으로 케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신에 대한 믿음도 점차 사라지며 능력을 잃고 있었으며, 죽음이 두렵다고 고민을 이야기한다. 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사는 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낳는 듯 하다. 신의 자식 또한 아버지를 사도로 여긴다. 신은 무능력하고 불완전했다.
「그래. 내 상황이 그래. 나는 세계사를 인간과 함께 건너오면서 모든 걸 더 나은 쪽으로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어? 헛수고였어.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어! 결국 나는 완전히 실패했어. 세계를 둘러봐! 어디에서건 굶주림과 전쟁, 자연 재앙, 탄압, 불의, 환경 파괴가 판을 치고 있잖아, 또 뭐가 있지?」
「야콥, 인간들 없이는 내가 뭐겠어? 인간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냐.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을 때만 움직일 수 있어. 아무도 선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나는 힘을 쓸 수가 없다고. 그게 바로 내 문제 야.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무기력증은 믿음을 잃어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날 수록 점점 커지고 있어. 이해하겠어? 나의 탈진은 곧 세상의 탈진이고, 나의 의욕 상실은 곧 세상의 의욕 상실이야!」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게 분명해. 인간들이 다시 나를 믿을 수 있도록 그 실수가 뭔지 찾아낼 수 있게 도와줘」 그가 절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전에 자네가 나를 먼저 믿어 줬으면 좋겠어. 내 심리 치료사조차 나를 미 치광이로 여기는 마당에 내가 어떻게 인류에게 나를 믿으라고 할 수 있겠어?」
실수도 많고 무능력한 신을 상담해주는 야콥은 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만큼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야콥은 누가 봐도 실패한 심리 상담가다. 고객도, 돈도, 집도 없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생과는 항상 비교를 당하며, 동생이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꼬수워하는 옹졸한 마음도 가졌다. 부족한 두 명의 남자는 상담을 위하여 서로 동행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벨은 비현실적인 사건사고들을 접하지만, 아벨의 능력을 믿지는 않았다. 여전히 아벨은 정신병자이며, 이 신기한 현상들은 주변 사람들과 모의작당하여 꾸며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벨을 통하여 자신의 없는 삶을 체험하기도 하면서 그가 신이라는 것을 결국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아벨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벨로 인하며 자신이 구원받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불완전한 신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더 이상 세상에 신이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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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아직 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 천재적인 서커스 곡예사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록 힘은 없지만 선량 한신이 있다는 건 신이 아예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지금은 신을 만났다고 믿는다. 실수도 많고 나약하고 무기력한 신이지만. 그 신은 어쩌면 다른 시간대, 아니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 하나의 <생각>일지 모른다. 나 자신을 위해 찾아낸 생각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산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제는 신이 없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다.
방금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아벨 바우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광대든 신이든 원칙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벨이 내게 보여 준 것이 진짜 기적이든 눈속임 마술이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벨의 체험이 나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신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은 신에게 요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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