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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365 나에게 접속

1일1주저리. 불완전한 신의 가치

by 점점이녕 2024. 8. 1.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아직 초반부를 읽고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솔라리스>에서는 불완전한 신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나는 지금 신을 만들어 낸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서 그로 인해 생겨난 신의 불완전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닐세.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불완전함 자체가 자신의 가장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특성인 그런 신을 말하는 거야. 자신의 전지전능에 한계를 가진 신, 스스로의 행위가 불러올 결과를 예견하다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자신이 촉발한 일련의사건들에 겁먹기도 하는 그런 신 말일세. 그러니까 불구와. 같은 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면서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신. 그 신은 시계를 만들어 냈지 만, 그걸로 측정할 시간을 만들지는 못했지. 주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해 체계나 장치를 만들긴 했지만, 그것들이 과도해 져서 목적 자체를 배반해 버린 거야. 무한을 창조했지만, 자신의 능력의 척도여야 할 무한이 결국 자신의 끝없는 패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 버린 거지."

 

신이 만들어 낸 것들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신을 불완전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자체를 본질로 지니고 있는 신이라고. 사실 켈빈이 이야기하는 신의 의미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꼭 그 신은 인간 같다고 생각은 했다. 욕심은 많아서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시간을 잴 수는 있지만 시간을 만들지는 못하고. 너무 큰 이상을 쫓다가 스스로를 망치고. 그냥 인간의 삶을 말하는 것 같았다. 켈빈의 의도는 크게 상관은 없다. 어찌되었든 내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 다음 책을 고르다가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에서는 불행한 신이 나온다는 줄거리를 보고 불완전한 신에 대하여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되었다.

 

야콥은 실패한 심리 치료사다. 어느 날 전처의 예비 남편에게 주먹으로 코를 세게 맞아 병원에 입원한다. 그 과정에서 아벨이라는, 자기를 신이라고 지칭하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야콥은 아벨을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그의 내면을 해석하려고 하지만 같이 지낼수록 특별한 힘이 있는 것을 느낀다. 아직 초반부라 정말 신이라고 여기는지는 잘 모르겠다. 계속해서 누군가와 짜고 놀라운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비현실적인 사건이다보니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조작된 것이라고 믿는 것이 편하겠다. 나도 최면이나 사주, 각종 예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방송과 짜고친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정확히 아벨이 왜 무능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으로 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사라져서 그런 것 같다. 오히려 완벽한 신의 모습이 더 불신을 가져왔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큰 공감이 갔다. 신을 믿지 않는 한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불화가 존재한다. 완벽한 신이라는 존재가 만들어 낸 세상과 인간들이 이렇게 불완전하다는 것은 곧, 완벽한 신은 없다는 말과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오히려 신도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신을 믿으려고 했을 것 같았다.

 

사실 불완전하다면 신은 별 게 아니다.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 의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가족일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때론 대상이 아닌 성취와 경험 같은 것일 수 있다. 절대적인 신을 믿지는 않지만 신이라는 개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음을 안다. 무의미한 일상과 시간에 특별한 가치를 주는 무언가. 힘들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기댈 수 있는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무언가. 그런 존재로 인하여 조금 더 편하고 주변 사람들과, 세상과 어우러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신이 아닐까. 완전함은 굳이 필요 없다. 오히려 절대적인 결백은 작은 티끌만 발견해도 실망하는 법이니까. 그냥 인간 같은 신, 그 정도로도 충분한 것 같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살아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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