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보다가 책을 내려면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생 때 나에게 좋아한다고 했던 오빠가 갑자기 떠올랐다. 사실 이성 이야기는 지금까지 잘 하지 않았다. 그동안은 이성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정말 그럴까. 아니면 이성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으로 비쳐지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사람을 잘 좋아하지 않는다. 종종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마음을 티 내 본 적도 없었다. 어차피 내가 좋아했던 모습이 그 사람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좋아한다고 하는 말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나의 어떤 면을 보고 좋아하는지 몰라서다. 이건 반대로 상대방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저 허상인 것 같다는 내 경험에 근거한다.
친절한 모습, 성실한 모습, 가정적인 모습 등 사람마다 이상형이 있다. 말 그대로 ‘이상’형이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친절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친절하지 않을 수도 있고, 성실해 보였던 사람이 성실하지 않을 수가 있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연기를 하며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나는 타인이 되어본 적은 없지만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연기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삶에 있어서 약간의 연기는 당연히 필요하다. 생각한 대로 다 내뱉고 행동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 자기가 상상한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저 사람은 마땅히 이럴 것이라는 착각. 그리고 이 착각이 깨지면 헤어지고.
대학생 때 나에게 고백했던 오빠는 내가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리 성실하지도 열심히 살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누워서 퍼질러자기 일쑤였고, 학교 공부도 미리미리 하지 않고 벼락치기도 많이 했다. 그리고 방도 더럽고 그다지 위생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이런 내 본 모습을 안다면 분명 실망할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아했던 모습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발견하면 어차피 금방 헤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와 잘 지내고 싶다는 것은 이런저런 행동에서 느껴졌었다. 내가 듣는 수업을 따라 듣고, 쓸데없는 문자를 보내고, 가끔 만나서 집에 갈 때면 옆에 붙어서 앉고, 취하면 집에 데려다주고. 그러나 좋아한다는 마음에 대한 불신과 내 치부를 들키기 싫다는 생각으로 밀어내 버렸다. 어릴 때는 사람이 너무 불편해서 사적인 만남은 최대한 피하고 다닌 것도 한몫했다. 나는 겁쟁이였다. 상처받기도 싫고 상처 주기도 싫어서 아예 그런 상황조차 만들지 않도록 피해버리는.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피하기만 해서 문제를 직시하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금은 알고 있다. 친한 사람과 싸웠을 때 먼저 사과를 하는 것도 큰 용기라는 것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하는 것을 행동으로 하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그 오빠도 그다지 활발한 성격은 아니어서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편지를 쓰고,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먼저 나선 것도 꽤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고 많이 늦게 깨닫게 되었다. 뭐, 물론 누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용기를 냈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내 입장에서 불편하게 느꼈던 그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는 정말 큰 고민과 용기를 들인 시간이라고 타인의 관점에서 이해를 해보게 되었다는 것을 적어보고 싶었다. 다음에도 이런 경험이 있다면 너무 피하기만 하지 말자고.
아직도 여전히 좋아한다는 감정의 본질을 알지는 못한다. 이 또한 완벽주의 강박의 일종일까? 사람을 사귀면 평생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만남에서도 조금 마음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을까. 남들은 쉽게 사귀고 헤어지고 잘만 하던데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쉬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이런 진지함도 내 성향임을 인정하자. 여하튼 그 오빠도 잘 지내고 앞으로도 잘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추억을 남겨준 것에 나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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