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몰랐다. 인생이 즐겁지도 않았고 평생 일하고 눈치 보면서 성장 강박에 쌓여서 사는 삶이 피곤하고 귀찮기만 했다. 늘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여서 내일이 기대되지 않았다.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부모님이 나를 챙겨주시는 것과 사소한 경험들이 종종 좋았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삶의 의미는 없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면 텅 빈 공간이 나를 맞이해줄 것이고, 무조건적으로 나를 챙겨주신 엄마 아빠가 없다면 굳이 나도 돈을 벌고 삶을 영위할 이유가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얼마 안 가 자살을 할 것 같다고 생각도 했다.
부모님이 없는 삶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지금까지 계속 부모님과 함께 살아와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엄마도, 아빠도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살아간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궁금한 적이 많다. 그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어떤 삶의 목적을 다시 만들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지. 부모님이 없다는 생각만 하면 눈물만 나오는데 어떻게 장례를 치르고 며칠 만에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인지.
기독교에서는 자살이 악이며 죄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내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죽을 용기로 살아가라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죽는 것이 행복일 수가 있다. 삶이 고통스럽다면 누가 감히 지옥 속에서 계속 살아가라고 할 수 있을까. 네가 죽는 것이 슬프니까 나를 위해서 너는 고통 속에서 살라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죽음에 관한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자살은 그저 개인의 선택이며 존중해야 한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결정했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게 사회가 도와줬으면 한다.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편안하게 고통스러운 삶, 또는 무의미한 삶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 세상에는 타인의 삶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게 행복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면 안 된다, 너는 잘못 살고 있다 등. 뭐 그리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지. 그렇게 사는 것이 좋다면 본인만 그렇게 살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든 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건 좋은 인생이다. 열심히 공부만 하는 삶, 열심히 놀기만 하는 삶도 그들이 만족한다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다.
아직도 삶의 의미는 확실하게 규정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발전하는 것이 물론 좋기는 하지만 능력을 갖춰서 성공하고 돈을 잘 벌고 싶은 이유는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고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해드리기 위함이다. 그것 말고는 잘 모르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와 부모님을 제외하고 타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과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자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항상 자연사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떻게 죽게 될까.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삶의 의미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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