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평범한 사람, 특색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과정 중 어디에선가 세뇌가 시작되고 우리는 숨을 곳을 찾기 시작한다. 누구도 자신을 찾을 수 없도록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린치핀 中>
남들과는 다른 내가 되고 싶다. 특별한 내가 되고 싶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튀고 싶지는 않다. 눈에 튄다는 것은 일반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아서. 그래서 학창 시절에서 발표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누가 나를 이렇게 재미 없고 특색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일까. 환경과 사회의 시스템이 말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고 정년까지 일을 하는 삶을 이상적이라고 규정해서 내가 이렇게 된 것일까? 물론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남탓을 하지는 말자. 내가 지금 이런 환경과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나 때문이다. 동일한 환경에서 자라도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기는 하지만.
우리 부모님도 모범 시민이었다. 내 기억 속에는 항상 일하는 모습이었고 오래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지금도 물론 일을 하고 계신다. 예전에는 자영업을 하였지만 일이 어려워진 후에는 아빠는 격일로 경비를 하시고 엄마는 새벽에 미화업무를 하신다. 아마 제대로 잠을 못 주무실 것 같다. 부모님이 이렇게 열심히 살기 때문에 퇴사를 생각하며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책을 읽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다짐이 배부른 소리인가 싶기도 하다. 당연히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돈이 드니까. 하지만 부모님을 정말 존경하지만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열심히 일을 해도 부자가 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죽을 때까지 의미 없는 일을 해야 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이것은 경비나 미화 업무가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의미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란 콘텐츠를 창출하고 타인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주체적인 삶에 대한 깨달음을 빨리 깨우치고 자기 철학을 단단히 하며 사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이 사람들은 어떤 영향을 받았기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이연님, 엠제이 드마코, 로버트 기요사키와 같은 사람이다.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아빠 가난한아빠>에서 실제 부친인 가난한 아빠와 친구 아버지인 부자 아빠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이 책을 보고 나도 어릴 때 돈의 시스템을 알려 줄 사람이 있었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이런 의심을 하고 내 인생을 살기 위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에 감사해야겠다. (더 진지하고 열심히 하면 좋고!)
어릴 때는 포부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겁이 많아지고 걱정이 많아졌다. 자기 의심도 심해졌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나이를 먹고 경험치도 올라가는데 오히려 도전 정신은 떨어진다. 사회 인식의 문제일까 개인의 문제일까. 사회에서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규정한 그 나이대의 인식 속에서만 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더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우리 회사에는 나이가 있는 개발자분들이 몇 있지만 j님은 어린 사람들과 굉장히 터울 없이 지내지고 다른 분들은 왠지 모를 벽이 느껴진다. 이것은 j님이 나이를 들먹이지 않고 인간대 인간으로 사람을 대해줘서 그런 것이다. 이처럼 태도는 인식을 바꿀 수도 있다.
예전에 인상 깊게 보았던 아이의 노래가 생각난다.
아이의 노래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시냇물은 하천이 되고 하천은 강이 되고
강도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였다는 것을 모르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억지 표저을 짓지 않았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난 여기에 있고 저기에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꿈은 아닐까?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조각은 아닐까?
악마는 존재하는지,
악마인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인지,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일 뿐인데 그것이 나일 수 있을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
시금치와 콩, 양배추를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것을 잘 먹는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낯선 침대에서 잠을 깼다
그리고 지금은 항상 그렇다
옛날에는 인간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옛날에는 천국이 확실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상상만 한다
허무 따위는 생각 안 했지만
지금은 허무에 눌려 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열중하는 것은 일에 쫓길 뿐이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사과와 빵만 먹고도 충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딸기만 손에 꼭 쥐었다
지금도 그렇다
덜 익은 호두를 먹으면 떨떠름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산에 오를 땐 더 높은 산을 동경했고
도시에 갈 때는 더 큰 도시를 동경했는데
지금도 역시 그렇다
버찌를 따러 높은 나무에 오르면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도 그렇다
어릴 땐 낯을 가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항상 첫눈을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막대기를 창 삼아서 나무에 던지곤 했는데
창은 아직도 꽃혀 있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였던 아이에서 자기를 잃어버리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이였을 때 느꼈던 것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어른이 되면서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어린 아이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던 것이다.
조금 위안을 받았다. 어른이 되면서 삶에 대한 질문을 잃어간다고 했는데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사는지, 나는 어떤 일을 할 떄 보람을 느끼고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나와 삶에 대한 것들이 너무 궁금해졌다. 철학을 가지고 싶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것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아이의 모습을 잃지 않은 것 같아서 좋았다. 더 열심히 나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나만의 답을 내려가야겠다. 창은 아직 꽃혀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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