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스트레스, 일이 바로 떠올랐다. 일을 하면 역량도 쌓고 돈을 벌 수 있다. 확실히 의미가 있다. 그리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하여 공부를 하거나 더 높은 책임감이 부여되는 업무를 맡으면 스트레스가 따라온다. 능력을 키우고 싶지만 사수가 없을 경우 어떻게 공부해야할 지, 커리어패스는 어떻게 쌓아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책임감도 그렇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나를 채찍질한다. 더 잘 해야 해. 실수하면 안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궁극적인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일을 중요시하게 된 더 본질적인 사고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아마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같다. 일에 몰두하는 것은 의미 있게 사는 방법 중 하나였을 뿐이고.
#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일까. 한 달 전이었다면 이 질문에 대답을 못했을 것이다. 가치와 의미가 좋은 것은 알겠지만 너무나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정의할 수도 없는 것을 바라며 살았을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이 맞물렸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살면서 주기적으로 겪는 삶의 무의미함 때문인 것 같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해도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평생 이런 식으로 살아야하는지 답답하기만 했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돈을 쓰고 잠깐 즐기고. 사는 것이 재미없었다.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간이 흘러서 살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게 인생이라면 인생이란 정말 지루한 것이었다. 노인 분들을 보면 저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오래 살아갈 수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서 고통 없이 죽는 약이 나온다면 나는 자연사하는 것이 아니라 약을 먹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더 재미있고 의미있게 살고 싶었는데 방법을 모르겠어서.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뭘 해도 무감각한 것인지.
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아 세상을 떠난 한 작가님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댓글에는 작가님을 추모하는 내용이 많았다. 작가님의 웹툰을 보고 행복했고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어서 감사하다고 편히 쉬라는 내용이었다.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내가 나중에 죽었을 때 내 죽음을 진정으로 추모해줄 사람이 있을까? 나로 인하여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사실 부모님을 제외하면 없을 것 같았다. 암담했고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죽으면 사고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자기만족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좋은 영향을 주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지금은 나에게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대답할 수 있다. '시간을 내가 계획한 대로 보내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나는 계속 성장하면서 의미있는 삶에 대한 정의도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하지만 정의를 내렸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는 막막하다. 그리고 분명 실행하면서도 막막함과 걱정, 불안들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건설적 스트레스
그러나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전후의 스트레스의 종류가 다르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나의 인식도 달라졌다. 목적이 없었을 때의 스트레스는 정말 답이 없는 막막함이었다면 목적을 만들고 난 후의 스트레스는 건설적 스트레스인 것 같다. 나는 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글을 쓰며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이러한 회고 과정을 통하여 목표를 더 뚜렷하게 만들거나 이전과는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과 실행 과정을 기록한다면 나처럼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컨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우울감에 휩싸였을 때 우울증에 걸린 분들의 컨텐츠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또한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있으면 안되는 것,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았다. 걱정과 불안으로 스트레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나는 왜 걱정과 불안이 많은 성격으로 태어났는지 자기비하를 하곤 했다. 왜 이렇게 피곤한 성격으로 태어나서 피곤하게 살게 되었는지 내 성향을 원망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렇게 한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더 싫어졌을 뿐이다. 중력 문제를 탓하고 있던 것이다.
이제는 이해한다. 스트레스는 살면서 당연하게 수반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목적이 크면 클수록 더 자주, 더 깊게 겪게 될 것이라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조심해야한다고. 스트레스는 걱정과 불안, 예상하지 못한 일에서 발생한다. 그건 어제와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매일 똑같이 사는 삶에 만족한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내일의 하루, 앞으로의 하루들은 오늘과 모두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 성장하는 삶을 살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주는 삶을 살 것이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삶과 조금씩 성장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삶이 있다면 후자의 삶을 선택하겠다.
# 롱런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기는 하다. 강박과 극단적인 성향으로 나를 잘 몰아세우기 때문에. 건설적인 스트레스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당연히 수반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컨텐츠로 풀어보면 될 것 같은데, 건설적이지 않은 스트레스는 최대한 줄여보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실행이 가장 중요하다.
😥 줄일 수 있는 스트레스
- 1분 1초를 의미있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
- 한 것보다 하지 못한 것에 집중하여 채찍질 하는 것.
- 장점은 낮추고 단점을 어떻게든 보완하려고 하는 것.
- 건강을 등한시 하는 것. 잠을 줄이면서 까지 해야할 것들을 꼭 하려고 함. 오후에 중요한 회의가 있으면 점심도 안먹고 준비함 등.
- 뭐든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선택과 집중을 못하는 이유기도 함.
-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써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것. (ex. 더 잘해야 해)
🔍 축소 방법
- 무엇을 했는지 감사 일기를 더 구체적으로 적어보기. 이룬 것에도 집중하기.
-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인간이라면 쉬어야지!
- 제일 중요한 것은 '나'라는 것을 계속 되뇌기.
- 모든 것을 기록하고 컨텐츠로 만들어보기. 강박 및 스트레스 관리 방법도 좋은 컨텐츠가 될 수 있다.
- 못하는 것도 많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가면 빨리 벗기. 단점 인정하기. 나는 올챙이다.
- 미움받을 용기 실천.
- 비교는 '과거의 나' 하고만 하기. 절대 타인하고 하지 말 것.
-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지 이야기 들어보기.
오늘 다양한 컨텐츠를 보면서 위로를 받는 내용들이 있었다. 스스로 해결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아주 커다란 단점을 갖고 있다. 완벽한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이 결국 얻는 것은 공포감이다. 안전 제일주의로 가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이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항상 어둡고 위험하기만 하다. 시각이 지나치게 안전에만 고정된 사람은 항상 부정적인 세계관을 갖게 마련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위험을 찾아낸다.
하지만 자유롭다고 해서 절대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자유는 그 대가를 요구한다. 용기와 강인함, 실패를 감수할 준비 같은 것들이다. 자유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결코 적지 않다. 때때로 엄습하는 불안감, 회의, 무모한 사람이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 등등... 하지만 당신이 뭔가 감행하려는 용기만 내면, 실패를 기꺼이 맞을 힘을 가지면, 그리고 패배를 다루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지금까지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맛보았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보도섀퍼 <돈>
(추가)
# 열심히 살아야 한다.
계속 생각이 나서 곱씹어보다가 하나가 더 떠올랐다. 바로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강박이다. 확실히 의미가 있었대. 대충하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여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래서 야근 수당이 없어도 야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서도 새벽에 일을 했다. 주말에도 했었고. 그만큼 잘하고 싶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더 잘하고 싶은데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불확실하고 해야할 것은 많은데 어떻게 학습해야할지 몰라서. 사수가 없는 것도 문제였다. 누군가 방향성을 알려주면 좋을텐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언제부터는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도 의심이 되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런 삶이 좋은 삶은 아닌 것 같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맞는가? 좋아한다면 즐겁고 행복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전혀 즐겁고 행복하지 않아서 이 길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하면 즐겁고 행복하냐는 질문을 해봤지만 아무것도 없어서 그것 나름대로 또 우울했다.
열심히 산 결과 확실히 성장했다. 실력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내가 기준이 높아서 매번 잘한다고 해도 아니라고 겸손을 떨었지만 분명 이전보다 나는 나아졌고 처우도 달라졌다. 회사도 비즈니스 생태계로 굴러가는 이상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보상은 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꽤 잘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좋은 것은 회사도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다. 직원 수는 거의 2배가 늘었고 새로운 서비스는 최근 회원수 500만명을 달성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성장할 것이라고 조금 확신한다. 그러나 사용자가 많은 만큼 서비스 기획을 할 때 더 고려해야할 부분이 많은 것과 구멍이 발생했을 때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을 생각하면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역시 성장괏 스트레스는 양의 상관관계인가보다.
생각해보면 결국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강박도 앞서 적어본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야한다'에서 나온 것 같다. 표현만 다를 뿐 똑같은 말 같기도 하고.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열심히 사는 것이 꼭 의미있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이전에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살았다. 물론 회사를 위해서 산다고 하기에는 너무 노예 같으니까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이 회사에 도움되는 것이고, 회사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나에게 도움되는 일이라고 여기긴 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하지만 결국 나의 회사는 아니었고 언젠가는 떠나야할 것이고 내가 기획한 것들도 새로 리뉴얼되면서 없어질 것이었다. 기록을 남기고 싶었지만 회사 서비스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지금 보니 조금 변명 같기도 하고... 비공개로 회고를 할 수도 있었을 것) 그래서 이제 나를 위해 열심히 살고 싶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이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고 나의 컨텐츠로 남을 수 있는 것.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성장했다고 기록할 수 있는 것. 회사의 명함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증명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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