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시간을 죽이다.
2015년 9월. 24살에 다니던 대학의 교학팀에 취업을 했다. 디지털미디어학과 광고홍보전공. 4년간 배운 전공이 있었지만 졸업을 할 때까지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할지 정하지 못했다. 크리에이티브하지도 않았고 내향적인 성격상 광고에이전시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을 알았기에 전공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뭐, 수업을 들으면서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너무 막막했던 4학년 2학기, 나는 도서관에서 근로를 하고 있었고 학기가 끝나갈 무렵 도서관 관장님이 학교에서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2년간 계약직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돈이라도 벌면서 고민을 해보자고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도서관 관장님이 친하신 팀장님에게 나를 소개시켜주었고 교학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는 일은 공문을 작성하거나 회계를 처리하고 전 학과 졸업사정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모든 업무는 철저히 매뉴얼에 따라서 정확히 처리하면 됐다. 시급을 받던 아르바이트와는 달리 연봉 계약을 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사회생활이라는 기대감과 걱정이 나를 조금 긴장되게 만들었다. 더 책임감이 느껴졌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에 인수인계 과정을 모두 녹음하고 직접 세세한 매뉴얼을 추가적으로 정리하며 일을 처리해갔다. 지금으로써는 퇴사 사유지만 팀장님에게 커피를 타주는 일도 중요한 일처럼 여겨졌다. 블랙 커피에 각설탕 1개. 그것 역시 매뉴얼로 정리했고 아침마다 팀장님에게 커피를 타드렸다. 처음 1-2개월은 좋았다. 급여내역서도 받는 진저한 사회인이 된 것 같아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조금 들떠서 부모님에게 어떤 선물을 해드릴까 즐거운 고민도 했었다. 그러나 이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팀장님은 기회주의자였다.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반말을 하며 때로는 결재 서류를 그냥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리더라도 더 높은 직급인 학장님에게는 달려가서 인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교수님들은 학생지도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하기로 했고, 학생에게 사용했다는 근거가 부족해서 회계처리가 되지 않으면 왜 처리가 되지 않느냐며 싸우기도 했다. 공문을 쓸 때면 띄어쓰기를 몇 번 해야하는지, 마침표는 어디에는 찍고 어디에는 찍지 않는지가 중요했다. 맞춤법이 하나가 틀리면 담당자와 팀장, 학장의 결재 라인으로 진행되는 공문을 다시 작성하여 이전 결재라인을 다시 지나면서 정보가 느리게 전달되었다. 중요한 문제가 터졌을 때 팀장님은 우리 팀이 관련되지 않았다는 정보를 찾아서 리스트업 하라고 했다. 문제가 생긴 학생이 찾아오면 열심히 다른 팀으로, 그 팀은 또 다른 팀으로 학생을 안내했다. 교직원들은 표정이 없었고 전화를 하면 감정이 없거나 짜증만 있었다. 나는 이런 하루를 반복하고 있었다.
일이 없을 때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곤 했다. 그때 <캐비닛>이라는 책을 읽으며 문득 내가 옷걸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하루 종일 책상에 그냥 앉아 있었다. 정말로 화분처럼 그냥 앉아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여기는 어디일까? 이런 철학적인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봤고... 회사는 도대체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혹시 달력이나 옷걸이 같은 것을 뽑으려 했는데 잘못해서 내가 뽑히게 된 것은 아닌지...
“여긴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게 주 업무야. 생각하기에 따라선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것도 꽤나 고된 노동이지.”
실제로 그랬다. 여기는 그냥 자리를 꾸준히 지키는 게 주 업무다. 과장도 그 일을 하고 있고, 계장도 그 일을 하고 있고, 대리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즉! 모두 자리를 지키는 일을 한다. 그리고 자리를 지키면 월급이 나온다.
솔직히 조금 맥 빠지는 기분이었다.
견뎠다. 밤나무와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사이좋게 한 그루씩 피어 있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육 개월 내내 창밖을 바라보며 그 시간들을 견뎠다. 아니다. 견딘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시간들이 그냥 지나갔을 뿐이다. 어떤 날은 길 건너편 붕어빵장수 부부가 하루 종일 붕어빵을 몇 개나 파는 지 세어 본 적도 있었다.
“하루 종일 칠백 쉰 두 봉지! 우와, 부자 되겠군.”
그리고 왠지 모르게 늦가을의 비쩍 마른 옥수수 대처럼 내 속은 텅 비어갔다. 세상은 전쟁이라는데 내 인생이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해도 되는 것일까.
그맘때쯤 가끔 불안이 엄습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않나? 달려온 세월이 있는데, 남들보다 더 빨리 달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남들이 뛸 때 대충 같이 뛰고 같이 고통 받았는데. 무엇보다 나는 심심했다. 술자리에 가면 친구들은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하고 빈정댔다. 맞는 말이다. 나는 상상임신을 한 것처럼 자꾸 헛배가 불러왔고, 나태와 굴욕과 아무 생각 없는 날들과 무엇이든 귀찮아지는 병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나의 뱃속을 채웠다.
이건 아닌데. 정말 열심히 살고 싶었는데.
<캐비닛>
일은 없었고 불합리적인 것만 조금 참으면 누워서 돈을 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평생 산다고 생각했을 때 내 삶을 돌아보면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것 같았다. 2년이 지나면 또 지금 자리를 채울 누군가가 올 것이고, 나는 무능력한 상태에서 쉽게 대체된 후에, 대체되길 기다리는 누군가의 자리에 다시 들어가서 대체되길 기다리는 삶을 또 반복하게 될 것이었다. 삶을, 시간을 이렇게 버리기 싫었다. 철밥통이 되기도 싫었다. 엄청나게 거창한 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졸업을 할 때까지 무엇을 해야할지 정하지 못했지만 이 철밥통 직장에서 일하면서 창의성이 있는 일과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국비지원을 받아 디자인 학원을 등록했고 퇴근 후 학원을 병행하면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 이때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블로그에 기록한 글이 있어서 그 때의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기록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소통이다. 성장욕구가 강했던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기록이 이래서 중요하나보다.
#2_시간을 팔다.
디자이너로서의 두 번째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자체 편집 프로그램을 제작한 IT 회사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몇 개월 만에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디자인 비전공자여서 저평가를 받고 들어갔지만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도 받고 경험도 쌓는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포스터, 명함, 리플렛, 전단지 등 홍보물을 기획하고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이전과 다르게 창의적이고 정말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작업물이 나오면 엄마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다. 내가 만든 디자인이라고.
아쉽게도 이 만족스러움도 오래가지 못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갯수로 성과 평가를 받았다. 타이포, 컬러, 레이아웃 등 디자인적인 감각과 철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빨리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디자인 공장처럼 템플릿을 뽑아내면서 또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는데 또 기계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더 의미있는 일에 목이 말라있었던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웹사이트에 디자이너들이 작업한 디자인을 모두 게시한다. 10년 이상의 나름 오래된 회사였기 때문에 그동안 디자이너의 작업물이 쌓여서 몇 만개 이상이 있었다. 사이트를 이용하던 중 템플릿이 많지만 검색과 탐색 기능이 너무 불편하여 고객이 원하는 컨텐츠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복수 키워드를 입력하면 복수개를 1개로 체크하여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카테고리는 상품마다 제각각이며 뎁스도 길어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이런 페인포인트에 근거하여 현재 문제점과 개선점을 정리하여 문서를 작성했다. 팀장님이 해당 기획 문서를 보셨고 한번 진행해보라고 하셔서 서비스 개선 업무를 처음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편집 디자이너로 입사한지 약 6개월이 지난 후였다. 그렇게 나는 UXUI 디자이너가 되었다.
UXUI 디자인 업무는 편집 디자인보다 더 의미있었다. 편집 디자인이 수많은 상품 중 한 개를 디자인한다면 UXUI는 해당 상품을 이용하는 그 과정 자체를 설계했기 때문에 더 고객과 맞닿아 있었다. 기획이라는 것은 답이 없었고 회사에는 사수도 없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더 성장하고 높은 고과를 받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했다. 아마 이 때의 나는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회사가 인정을 한다는 것이고, 인정을 하면 연봉을 높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포괄임금제여서 추가 수당이 없었지만 거의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퇴근을 해서도 새벽에 일을 하며 주말에도 일을 했었다. 내가 의미있게 사는 일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과 동일했다. 확실히 열심히 했고 혼자 많은 것을 빨리 처리 했기 때문에 평가를 좋게 받았다. 때때로 슬럼프가 오기는 했지만 연봉도 점차 상승하고 있어서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 문득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회사에서 진행한 이슈의 작업 상태에 따라 내 기분이 바뀌었다. 잘 풀리지 않는 이슈가 있으면 잠도 자지 못하고 계속 생각을 했고, 사용성이 떨어져서 VOC가 많이 들어오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내가 많은 것들을 해낼 때 마다 회사에서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했다. 내가 좋아서 배운 것은 아니었다. 선택에 나는 없었고 회사의 요구사항만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 삶이 나의 삶이 아니라 회사를 위한 삶인 것 같았다.
그때 조금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타인의 인정을 위해서 달려온 것 같아서. 그렇게 퇴사와 관련된 컨텐츠를 많이 보게되었고 우연히 이연님의 퇴사 영상에서 '나는 회사에 내 시간을 팔고 있었다.'라는 문장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이연님은 회사를 다니는 것이 내 시간을 헐값에 파는 불공정한 거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왜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삶을 당연하게 생각했지? 내 시간은 고작 1-2만원 밖에 하지 않는건가? 돌이켜보니 내 시간을 너무 회사에 헌납한 것 같았다. 차라리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조금이라도 사용했더라면 이렇게 미래를 생각했을 때 덜 답답했을까? 후회도 됐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은데 삶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앞으로는 회사가 아니라 회사를 벗어나더라도 내가 나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내 시간을 회사에 쏟아 붓지 말고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사용해보자고. 내 능력을 키우자고.
##_나의 시간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시간을 나를 위해 쓰자고, 나의 능력을 키우자고 다짐을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할지 답이 바로 나온 것은 아니다. 한참 고민에 빠져있다가 기록을 해보기로 했다. 생각을 계속 적다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었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니까. 이전까지는 경험이 쌓이면 글을 쓰고 컨텐츠를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시작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버린 시간들이 몇 년은 되었기때문에. 그래서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경험을 쌓자고. 완벽한 글쓰기가 아니라 부족한 글쓰기를 해보자고. 이전에 네이버 블로그가 있었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은 마음에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블로그 이름을 '방황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정했다. 답은 모르겠으니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방황을 해보자고. 방황이 목표라면 실패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위안이 됐다. 경험의 글쓰기에 관한 고민은 첫 포스팅에 담겨있는 것 같다.
2021년 9월 7일 얼마되지 않았다. 1일 1포스팅을 시작한 날짜다. 목적은 정말 뭐라도 적어보기였다. 초기에는 일기도 쓰고, 디자인 작업물도 올리고, 외국어 공부한 것도 기록하고 중구 난방이었다. 너무 기준이 없는 것 같아서 체계적으로 루틴을 시작해보기로 하고 나에게로 이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금 나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회사가 아니라 나만의 것을 가지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이 루틴 프로젝트는 곧 나를 위해 일하는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일이라는 것은 꼭 회사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일과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내가 일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얻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나를 위하여 일하기로 했다.
루틴을 진행하면서 너무 귀찮은 날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진행한 날도 많다. 물론 그런 날은 저녁 일기를 쓰면서 반성을 하거나 다음날 아침 일기를 쓰면서 반성을 한다. (반성이 지속되기도 한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1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다는 것이고, 열심히 한 날도 분명 있으며 조금씩 내가 발전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지금 적고 있는 자기발견 글쓰기도 예전에 알고 있었지만 이 루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같이 더 의미있는 질문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며 또 성장하고 있는 나를 느낀다.
1차 끄적끄적
# 교학팀에서 일을 한 것
의미 없는 일의 시간 아까움을 인지했다. 아무 표정없이 일하는 사람들, 계약직에게 일을 몰아주는 정규직들, 문제가 생기면 우리 팀이 관련 없다는 공문을 찾아내라는 전체적인 분위기, 이팀 저팀으로 이슈를 돌려버리는 환경 등.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매뉴얼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 꼭 옷걸이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떄 읽은 책에서 할 일이 없어서 붕어빵을 세고 있었던 주인공이 떠오른다. 옷걸이가 필요했는데 내가 선택된 것이 아닌가, 했던. 이 일을 계기로 공무원은 절대 맞지 않을 것 같았고 대체 될 수 없는 창의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일에 대한 가치관
# 집을 알아본 것
회사에서 친한 동료가 중기청으로 전세를 마련했다. 집을 방문했고 넓은 공간의 통유리창, 자기만의 공간이 있는 것이 부러워서 나도 중기청을 알아보기도 했다. 1억 정도 대출을 받고 3천 정도 자금을 보태서 전세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1억이 작은 돈은 아니다. 평균 200만원을 받으면 절반정도 생활비를 쓴다고 했을 때 1년에 1200을 저축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약 8.3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물론 연차가 높아지면 연봉이 올라갈 테니까 줄어들겠지만.. 여하튼 여기서는 쉽게 벌 수 없는 돈이라는 것을 적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1억 3천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코딱지 만하거나 반지하 등 매우 살기 불편한 공간이었다. 현타가 왔던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조금씩 아껴가면 내 집도 마련하고 나름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월급쟁이로는 제대로된 집은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20-30년 뒤에 구할 수는 있겠지만 다 늙어서 집을 구하면 무슨 의미이고 또한 그 시간이 지나면 돈을 모으는 것보다 집 값이 더 천정부지로 높아져 또 결국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금융 문맹으로 살아왔던 나를 돌아보는 계기였다.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재테크 책을 읽게 되었다. 회사의 시스템은 노동자의 황금기를 이용하기 위하여 절대 부를 축적할 만큼 제공하지 않으며 그럭저럭 살 정도의 금액만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표를 '나에게로 이직'으로 바꾸었다.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일하자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여 성과를 많이 낸 것처럼 나에게 집중한다면 스스로도 사회에 큰 영향력을 주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 돈과 일에 대한 가치관
# 3D 모델링
마음을 먹고 꾸준히 한다면 꼭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게된 경험이다. 회사에서 내 직무는 아니었지만 3D 기술을 활용하여 서비스를 하자는 아이디어가 생겨났다. 3D를 할 수 있는 인력은 회사에 없었고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인지도 애매모호한 상태였다. 내가 담당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해야하니까 레퍼런스를 찾았고 블렌더라는 무료 3D 프로그램을 독학을 하면서 개발자 한 분과 서비스를 구체화해나갔다. 지금은 서비스 이곳저곳에서 해당 기술이 다방면으로 쓰이고 있으며 고객과 내부 직원들의 반응도 매우 좋다. 또한 매출이 발생하는 특정 플로우 개선과 함께 3D 서비스를 활용하였고 매출 500% 상승이라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얻은 것이 많다. 회사에서의 평가와 처후 등이 높아졌고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3D 렌더링을 통해서 이미지 판매를 시도해보고 있다. 수익은 높지 않고 커피 사먹을 정도로 소소하지만 잘 때도 돈을 버는 패시브인컴을 처음 시도라는 의의가 있다.
이전까지는 내 실력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들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뛰어나게 해내지 못하면 잘 하지 못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분명 좋게 개선이 되었음에도 일부 기능에서 불편하다는 VOC가 들어오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기준이 높은 편이라는 것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때때로 정말 내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며 무기력에 빠졌었다. 평균보다는 낫지만 너무 이것저것 하느라 전문가보다는 뒤떨어진다고. 그냥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것 끄적, 저것 끄적.
포폴 페이지가 생겨서 좋다. 이미지 판매는 현재 크라우드픽, 셔터스톡, 어도비스톡, 유토이미지 위주로 하고 있다.
https://www.crowdpic.net/@Nsomgs34
-> 도전에 대한 자신감, 나를 한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계기.
지금 나의 목표는 '나에게로 이직'이다. 더이상 회사가 아니라 나를 위해 일을 하자고 다짐을 했다. 추후 회사를 벗어나더라도 방황하지 않고 나로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 앞선 3가지 경험들의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매뉴얼이 아니라 창조적인 일을 하자는 것, 휘둘리며 살지 않기 위해서는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는 것. 그리고 마음만 먹고 꾸준히 한다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2가지는 부정적인 경험의 전환점이며 1개는 긍정적인 경험.
# 끄적
가끔 전환점 같은 것들을 생각할 때 나는 너무 큰 고통이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강연들을 보면 엄청난 고통과 슬픔에서 깨달음을 얻고 내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면 나는 너무 평온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고통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냥 예전에 읽었던 소설에서의 문장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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