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야나/[종료] 자기 발견 챌린지

Day 8. 내 안에 공존하는 모순된 성향 또는 욕망

by 점점이녕 2022. 1. 18.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분명 다르다. 그것은 내가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도록 행동한 결과다. 성실하고 착하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느껴지게 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성실하지도 착하지도 능력있지도 않은 사람이다. 그런 이상적인 모습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정작 나는 더 힘들어졌다. 연기를 꽤나 잘 한 덕분에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더 커졌다. 나의 본모습을 들키면 사람들은 분명 실망할 것 같았다. 게으르고 때로는 무식하고 이기적이고.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이 왜 두려울까. 그만큼 내가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착한아이 콤플렉스, 성장 강박, 인정 욕구. 이런 것들은 나를 자기 비하에 빠뜨렸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

 

요새는 칭찬을 받아도 순수하게 기쁘지 않다. 많은 업무를 잘 처리해 주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문서 정리를 가장 잘 하시는 분이다, 등등 확실히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지만 부담스러웠다. 잘한다는 말이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이야기로 들렸고 잘하지 못하면 실망할 거라는 말로 들렸다. 문서 정리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듣자 문서를 업데이트 할 때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없는지, 논리적으로 잘 정리가 되었는지 더 심하게 검열하게 되었다. 혹시나 빠진 부분이 있어서 나중에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정리 되었는지 몇번이고 검토를 했다. 사실 IT 기업의 애자일한 문화에 문서 정리에 힘 쓰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정리되지 않으면 내가 불안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후 놓친 부분이 나오면 한숨을 쉬며 앞으로는 더 꼼꼼히 살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런 실수가 나의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채찍질을 하며 살았다.

 

언제 한번은 회사에서 독서 스터디가 있었다. 스터디 전날까지 책을 읽기는 했지만 도저히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여 리뷰를 조금씩 정리하고 있었다. 스터디 시간이 다가왔지만 그래도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정리된 것은 없고 점점 불안감에 휩싸였다.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었고 식은땀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라지고 싶었다. 갑자기 몸이 아파서 쉬어야겠다고 말하고 반차를 낼까,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물론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고작 독서 스터디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긴장할 일인가 싶지만 이정도로 나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아마 준비성도 떨어지고 생각없는 사람으로 보여질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다. 부족한 상태의 산출물이 곧 내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완벽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 것도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 완벽하게 더 빠르게 하기 위하여 퇴근을 하고서도 계속 일을 했다. 내가 원하는 기준이 아니라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시들어갔다. 많은 것들을 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속은 계속 쓰렸고 걱정은 여전히 한더미였다. 아니, 책임감이 더 높은 업무를 맡게 되면서 걱정은 더 늘어만 갔다. 보람은 없고 걱정만 쌓여갔다. 앞으로의 인생이 걱정 됐다. 이렇게 나를 옥죄며 살고 싶지 않은데.

 

 

세상에 가면을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까? 종종 외향적인 사람들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은 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아니니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있는 그대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착한 아이 콤플렉스, 성장 강박, 인정 욕구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좋지 않은 모습을 일부로 보여주고 성장하지 않고 인정받을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내가 나대로 사는 일일까?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나답게 사는 일일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나답게 살고 싶지만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려고 나를 옭아맸다면 이제는 타인을 신경쓰지 말고 나답게 살아야겠다며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예전에 수업 시간에 '조하리의 창'이라는 이론을 배운 적이 있다. 여기서는 자기의 모습을 4가지로 설명한다. 기준은 나와 타인이다.

 

1. 드러난 자기 : 나도 알고 남도 안다.

2. 숨겨진 자기 : 나는 알고 남은 모른다.

3. 가려진 자기 : 나는 모르고 남은 안다.

4. 미지의 자기 :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른다.

 

나는 나만 알고 남이 모르는 '숨겨진 자기'가 진정한 나라고 생각했고, 타인이 알고 있는 '드러난 자기'는 내가 연기한 모습, '가려진 자기'는 내가 모르기 때문에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누구나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한다. 자기의 생각없이 다른 사람의 기준에만 맞춰 사는 것도 문제지만 또 타인을 무시하고 내 생각대로만 사는 것도 문제였다. 타인이냐 나냐. 너무 이분법적으로 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미지의 자기'를 생각해보자면 과거의 나는 정말 내향적이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바라보았다. 그때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회의를 하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도 하고 종종 리드를 하기도 한다. 물론 목소리는 떨리지만. 여하튼 과거의 나와 타인이 생각하지 못한 내가 나타난 것이다.

 

나로 산다는 것. 내가 누군지, 어떤 나로 살 것인지 과연 한 문장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나야. 나에게는 정말 많은 모습이 있는데 그 중 하나만 선택해서 살려고하니 답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나에게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좋지 않을까. '나에게는 모순이 있으면 안돼!'가 아니라 '나는 원래 모순적인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나고, 인정 욕구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나고, 이제 타인 보다 내 생각을 더 하며 살고 싶은 것도 나다. 오로지 타인을 신경썼던 과거의 내가 잘못 살아온 것도 아니다. 나의 삶을 살지 못했다며 과거의 나를 거부하지도 말자. 그리고 지극히 소심했던 과거의 내가 상상하지 못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미래의 내가 언젠가 툭 튀어나올 수 있다. 또 모순적인 존재가 튀어나왔다며 거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또 발견했다고 환영하며 같이 살아가면 어떨까. 돌아보니 모든 것이 나였다. 갑자기 조성모의 가시나무새가 생각난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물론 내 밖에도 많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유미 안에는 다양한 세포들이 있다. 세포들마다 성격도 천차만별이며 서로 싸우기도 한다.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각자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유미의 편이라는 것. 나에게 있는 다양한 내가 나를 만들었고 아직도 모르는 나를 만나며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일부의 나를 잘못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편견에 쌓인 나였던 것 같다. 내가 종종 잘못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했는데 조금 위안이 된다. 

 

그리고 종종 다른 사람들의 모순적인 언행을 발견하게 되면 저 사람은 왜이렇게 통일성이 없는지 납득하지 못한 적이 있다. 나도 그랬으면서 참 이기적이게도! 당연히 그 사람에게도 수없이 많은 자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앞뒤가 달랐던 자기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후회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다 똑같이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해하며 살아가면 어떨까. 사실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더 이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 분명 좋은 부분도 있는데 나쁜 부분만 크게 보는 것은 더이상 멈추자.

 

 

더보기

1차 끄적거림

- 질문만 보고
가장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은 질문인 것 같다. 이해를 도와주는 부질문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생각정리를 하고 자려고 한다. 내가 보는 내 모습과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은 분명히 다르다. 그건 내가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도록 행동한 결과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착하지도, 그닥 성실하지도 않은 인간이다. 내가 그렇게 보이도록 행동했지만 정작 그 간극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한다. 내 본모습을 보여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게으르고, 나쁘고, 더러운 내 모습을 들킨다면 사람들이 매우 실망할 것 같다. 실망하는 것은 왜 두려운 것일까? 그만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매우 신경쓰고 있기 때문이겠지? 

세상에 가면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동일한 사람이 있을까? 일단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아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조하리의 창에서는 나의 모습을 4가지로 구분한다. 나와 타인을 기준으로 나와 타인이 모두 아는 '드러난 나', 나는 알지만 타인은 모르는 '숨겨진 나', 나는 모르고 타인은 아는 '가려진 나', 나와 타인이 모르는 '미지의 나'. 며칠 전 질문에 나는 나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나를 잘 모른다고 적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합리적인 생각과 행동을 해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니면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별개인 것일까? 나는 내향적이라고 했지만 업무적으로는 꽤 당당하게 의견을 내기도 한다. 잘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일을 잘 해내기도 한다. 물론 반대도 있다. 잘 할 거라 생각했지만 쉽게 포기한 적도 많다. 사람들은 내가 친절하다고 말하지만 친절한 척을 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게으르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갈등이라고 한다면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상을 낮추거나, 현실을 높이거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거나 이 3가지 중에 하나일 것 같다. 일단 이상을 낮추기는 싫다. 사람은 삶을 살면서 목표가 있어야한다. 목표는 분명 지금보다 나은 나를 목표로 해야한다. 두 번째 선택은 '현실 높이기'다. 이것은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나의 이상은 내 스스로 기획한 방향성으로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나는 자기발견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파악하여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을 하려한다. 또한 매일 독서, 외국어를 공부하며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세 번째 방법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이해하기'다. 이건 사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발전은 없다.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이 상태에서 나아지는 것은 없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은 현실을 높이는 것이다. 

모순?
친절하고 싶지만 솔직하고 싶다는 것.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어렵지만 진정한 인간관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타인의 시선은 신경쓰고 싶지 않지만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부자가 되고 싶은 것.
나는 보통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다들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성적이고 싶지만 감정적인 사람.
외강내유, 외유내강

돈을 좋아하면 속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질적인 것은 나쁜 것이며 본질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 얼마전에 UXUI 스터디를 하면서 다크 UX와 비즈니스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기업에서는 고객을 위하여 행동하자고 하지만 성과의 기준은 매출이다. 매출을 높이기 위하여 고객의 불편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다크 UX에 대한 요구사항이 들어오면 진정한 UXUI를 할 수 없는 기업이라며 속으로 불만에 쌓였다. 돈만 중요한 회사에서 어떻게 진정한 고객 경험을 위한 일을 하겠냐고. 디자인의 윤리라고는 모르는 기업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메타인지를 배운 김에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는 윤리적인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즈니스를 위해서 종종 고객 경험을 해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선택 시 월급은 주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2번을 선택했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하니까. 그리고 내가 위선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돈이 중요하면서 회사의 업무에서만 윤리를 따졌다. 인터넷을 보면 별거 아닌 행동에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은 잘못된 것 하나 저지른 적 없는 것 마냥. 그 사람들을 욕했지만 나 역시 그 사람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수용
그래. 나는 돈을 좋아한다. 그리고 성장도 좋아한다. 돈을 가치있게 벌고 싶지만 누가 그냥 돈을 준다고 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로또가 당첨되면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일반적인 사람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한다. 노력의 과정이든 결과든.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고 싶다. 겸손한 것이 미덕이라 생각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쁜 사람인 것 같았지만 자기 수용을 해보기로 하자. 착한 사람이어야해, 윤리적인 사람이어야해, 평등한 사람이어야해. 이런 것들이 나를 옥죄고 있지는 않았나? 착한아이 콤플렉스일까. 나는 이기적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서만 살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것도 나다. 이타적으로만 살 수는 없겠지만 이기적 이타성으로는 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1차는 내가 중요하다. 나의 성장이 먼저 되어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도울 수 있겠느냐'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난 성인까지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인정하자. 성인은 못되도 뛰어난 범인은 되어보고 싶다. (될 것이다.)


2차 끄적
같이 자기발견 글쓰기를 진행하고 있는 동료분이 추천한 리사 손님의 영상을 보고 2차 끄적임

완벽주의의 폐해. 에전부터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나는 잘해내야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속으로는 항상 불안했다. 스스로 그렇게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주변에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혼자 비교를 하며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를 생각했다. 잘한다는 소리가 앞으로 더 잘하라는 소리로 들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에게 큰 실망을 할 것이고 내가 쓸모 없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성과리뷰에 잘한다는 소리가 좋게 들리지 않았다. 부담감이 얹어졌으니.

불안했던 경험
- 회사에서 독서 스터디가 있었다. 전날까지 책을 읽긴 읽었지만 도저히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느낀점을 정리하지 못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문서 정리를 조금씩 하고 있었다. 스터디 시간은 다가오지만 그래도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 불안감에 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심장이 뛰고 사라지고 싶었다. 고작 독서 스터디였는데 갑자기 아프다며 반차를 낼까 불안에 떨면서 걱정을 했었던 것 같다. 뭐 결국 들어가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이야기했지만.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랬다. 부족한 나를 보여주기 싫어서 일부로 사람을 피했다. 사귀는 것도 그랬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자기의 이상을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착각. 실망하기도 싫었고 실망을 주기도 싫어서 계속 인간관계를 피해왔던 것 같다.

- 커뮤니케이션의 두려움. 일을 하면서도 부족한 상태의 산출물을 보여주는 것이 싫었다. 항상 정리를 잘한다, 체계적이다라는 소리를 들어서 정리되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무서웠다. 시간은 가고 정리는 되지 않고. 그렇게 퇴근을 하면서도 일을 했던 것 같다. 더 완벽한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기준이 아니라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시들어갔다. 많은 것들을 했고 좋은 평가는 받았지만 속은 계속 쓰렸고 걱정은 한더미였다. 앞으로의 인생이 걱정만 됐다. 이렇게 나를 옥죄고 살고 싶지 않았다.

- 잘하거나 안하거나.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리랜서를 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준비가 된 상태에서 퇴사를 해야한다고 했지만 회사와 개인적인 삶이 구분되지 않는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퇴근을 해서도 계속 회사 생각이 났기 때문에. 그렇게 면담을 했고 팀장님에게 조금 내려놓으라는 소리를 들었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좋은데 나는 잘하거나 안하거나 둘 중에 하나인 것 같다고 했다. 그냥 중간 정도만 해도 된다고. 그리고 한달간 4시 이후에는 일을 하지 말고 금요일도 그냥 공부를 하라고 했다. 뭔가 루팡이 된 것 같아서 힘들었지만 조금 내려놓기 연습을 하니까 괜찮아 지기도 했었다. 

- 지금 글쓰기도. 사람들은 생각도 많고 논리 정연하게 글로 잘 풀어내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다. 뭔가 계속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고 글고 포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더 잘 쓰고 싶으니까. 포장을 하려니 뭘 써야할지 계속 생각하고 찾아보고. 그냥 느낀 것을 쓰면 될 텐데. 느낀 그대로를 쓰면 저 사람은 느낀 것도 없구나, 생각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평가를 받을까봐서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정말 메타인지가 부족한가 보다. 리사 손님이 메타인지는 부족한 나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우주의 먼지...

- 완벽하게 준비하느라 걱정과 두려움이 많다는 말. 공감한다. 역시 부족한 글쓰기를 해야겠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니까. 부족해서 경험할 것도 느낄 것도 많은 것 같다. 

- 힘든건 말을 하면 안돼. 말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 사람이면 짜증을 낼 수도 있지만 짜증을 낸 내 모습이 너무 미성숙한 사람 같아서 회의감이 들고 후회한다. 그렇게 자기비하를 시작한다. 나는 왜이렇게 감정적인지, 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는지. 무릇 사람이라면 짜증을 내는 것도 당연하지만 너무 성인군자를 바랬던 것일까. 예전에 부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고 심한 말을 듣거나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아니 아예 그런 생각도 들지 않는. 착학 아이 콤플렉스, 성장 강박증, 인정욕구. 나는 나를 너무 괴롭힌다. 

- 조하리의 창을 생각하며. 내가 아는 나 만이 나라고 생각했다. 이 또한 강박인 것을. 남이 보는 나는 내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간극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모르는 내가 종종 튀어나올 떄가 있다. 내향적인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다양한 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꼭 어떻게 보여야겠다가 아니라 아, 이런 모습의 나도 있었구나- 그냥 쿨하게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미지의 내가 종종 튀어나올 때 또 다시 반겨주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