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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

세상은 평등할 수가 없나보다

by 점점이녕 2021. 9. 20.

어제는 하루종일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을 보았다. 스릴러, 미스터리를 좋아해서 꽤 재미있게 보았다.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은 했지만 뭐라도 남기지 않으면 그냥 시간을 버린 것 같아서 글이라도 적어보려고 한다. 컨텐츠에 정답은 없다. 내가 비평가도 아니고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고 사용된 소품이나 배경들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는 굳이 찾아보지는 않으려한다.


# 삶은 불평등하다.

게임에서는 참가자들에게 계속 평등을 이야기한다. 실제 삶은 불평등하고 그 삶에서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적어도 게임에서는 참가자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똑같은 게임으로 겨뤄서 상금을 가져갈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누구나 똑같은 게임을 하고, 조건이 다르더라도 그건은 운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 조차도 평등하다? 하지만 보는 내내 무엇이 평등하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노인과 여자가 건장한 남자와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평등한 것인가? 거동이 불편한 사람과 건강한 사람이 무궁화 꽃을 하면서 달리기를 하는 것이 평등한가? 누구는 세모 모양으로 누구는 별모양으로 뽑기를 하는 것이 평등한가? 심지어 게임 한 번에 목숨이 달려있고 한 번 실패하면 기회 조차 가질 수 없는데 무엇이 평등한 것일까.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평등했다. 

 

같은 조건이라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유투브에서 탈북자들이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댓글에서는 탈북자 전형에 대하여 불평등을 토로하며 온갖 비난을 쏟아내는 인간들을 본 적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본인은 좋은 대학을 못갔지만 탈북자는 자신이 지원할 수 없는 전형으로 능력도 없으면서 좋은 대학을 간 사례로 보였을 것이다. 반대로 뼈를 때리는 댓글도 보았다. 처음부터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정규교육을 받고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때론 먹고 놀면서 편하게 살았으면서 목숨을 걸고 탈북하여 교육을 받을 시간도 없었던 사람들과 정말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이 평등한 것이냐고. 공감했다. 저들에게는 다리가 없는 사람과 다리가 있는 사람이 '달리기'로 경쟁을 하고, 같은 시작선에 서서 같은 출발선을 달리는 것이 평등인가보다. 그리고 자신들은 다리가 있는 사람이어야할 것이다. 그들이 다리가 없는 사람이 되면 불평등이라 외칠 것이고, 다리가 있는 사람이면 평등을 외치겠지. 대단한 평등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평등한 것일까? 다리가 없는 사람과 다리가 있는 사람이 경쟁한다면 분명 다리가 없는 사람이 앞에 서야함은 맞다. 오히려 같은 출발선에 선다면 그게 불평등한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앞에 설지의 간격인 것 같다. 이 적절한 간격을 위해서 법과 사회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기준을 모두가 납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혜택을 누리는 사람마다 조건도 다르며, 그것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은 보지 못하고,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타인이 누리는 것에 더 배아파한다. 아마 어떤 제도가 만들어져도 그들은 비난을 하겠지.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는 어떻게 해도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전 세계 모든 생명들이 서로의 생각과 고통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서의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이상, 세상은 불공평할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이라는 불만 속에만 빠져서 비난만 한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또 불평등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바꾸려는 시도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분명 세상은 이전보다는 나아지고 있으니까. 그건 누군가는 그런 비합리적인 사회를 바꾸려도 노력한 결과이니까. 지금이 심각한 불평등이라면 적어도 덜 심각한 불평등이 되도록 시도는 해야한다. 그런데 이 시도를 피해자들만 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이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액션을 하지 않는 이유는 1) 몰라서, 2) 내가 혜택을 받으니까, 3) 알지만 귀찮아서 이 셋 중 하나가 아닐까?

 

이상적으로는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서로 도와주며 살면 좋겠다. 어릴 때는 왠지 가능할 것 같았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은 절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냥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같이 행동해주지 않아도 되니까, 적어도 타인이 고통스러워서 주장하는 것에 비난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와주지 못할 것이라면 그냥 신경이라도 껐으면 좋겠다. 당사자가 고통스럽다는데 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너희들이 무엇이 고통스럽냐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또 두서없이 적게 되었지만 정리를 하자면 세상이 평등했으면 좋겠지만 절대 평등하지 못할 것 같아서 하는 한탄이었다...

 

 

# 불평등한 눈물

할아버지와 불법 체류자인 알리, 탈북자였던 새벽의 짝궁이 죽었을 때는 눈물을 흘렸다. 이들이 죽지 않기를 바랬지만 결국은 한 쪽은 게임에서 무조건 지는 조건이어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최종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456명이다. 한 번 게임이 취소되고 다시 참가한 사람들이 살짝 줄었지만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1명이 남았다. 그렇다면 430명 정도가 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3명의 죽음에서만 눈물을 흘렸다. 죽음의 무게가 다른가? 죽은 사람들 중에도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많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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