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월요병은 아니었다. 오전에 있는 정기 미팅에서 일관적이지 않은 팀장의 모습 때문이었다. 항상 면담을 할 때마다 주도적으로 일을 했으면 좋겠다, 적극적인 의견을 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나는 내가 맡은 일에서는 최대한 알아서 고민하고 의견을 내려고 한다. 그리고 오늘도 그렇게 했다.
내일 중요하게 배포되는 프로젝트가 있었고 저번 주에 QA를 하면서 고객 경험으로 매우 좋지 않은 버그가 있어서 시트에 적었고 오늘 이야기를 했다. 팀장님은 플로우를 설명해도 계속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고 최종적으로는 매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내일이 배포이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슈로 배포를 미룰 수는 없고, 그 중요성을 왜 고려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였다. (일단 빨리 판매를 하고 매출을 올려야하기 때문에 일부 고객의 불편은 감수하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배포를 하면 안된다는 말을 한 적도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고객 경험에 좋지 않은 이슈를 발견해서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대화는 계속 빙빙 돌았고 나도 짜증나는 감정이 올라오면서 조금 티가 났다. QA를 하라고 해서 했더니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지난 주에 야근을 하면서 QA를 했던 내 시간이 아까워졌다.
물론 서로 오해를 하면서 이야기를 한 부분도 있겠지만 나는 사람이 조금 통일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시를 하고 따르는 것을 원하면 그냥 시키면 된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으면 나는 (앞에서는) 따를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에 따라 의견을 제시하니 우선순위 파악도 안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식으로 나왔다. 팀장님의 머리에 없는 경험은 고객 경험이 아니었다. 매우 답답했고 이렇게 항상 매출과 타협하는 식이면 발전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역시 오래 다니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의미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하는 일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최악이었다.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것도 싫었다. 기계가 된 것 같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이란 단순히 돈 벌이 수단이 아니다. 물론 돈은 벌어야겠지만 그 이전에 나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고, 역량을 쌓는 것이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속으로 분을 삭히며 자리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었다. 또 현실 안주하는 나에게 신이 안주하지 말라는 뜻으로 발생시킨 사건이라고 의미부여를 하기도 했다. 빨리 계획을 세워서 그만둔다고 다짐을 하며 이 답답함을 풀 무언가를 찾았다. 이진선님의 브런치를 읽기 시작했다. 정말 우연이었지만 딱 내 상황에 맞는 글을 발견했다.
300명의 직원 중 90%가 개발자였고 디자이너는 단 7명이었다. 개발자 출신의 대표님은 쾌활하고 적극적으며 개발자의 환경을 향상하는 데 관심을 두는 분이었다. 이 조직 안에서 디자이너인 나는 개발자들이 요구하는 적당한 일정 안에, 적당한 퀄리티로, 적당한 산출물을 내며, 그리고 종종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면서, 서서히 서서히 퇴보 해갈 것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불안하지만 안정적인 미래'를 인지한 순간 내 안에 축적된 여러 개의 불만과 불안과 의혹이 한순간에 연결되며 형체를 드러냈다. 오래전 첫 번째 구덩이에서 깨달은 통찰이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나로 살지 못하고 있어."
퇴보하기 싫었다. 그저 돈을 받고 시간을 파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너무 답답해서 잠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이진선님의 글에서는 다크호스도 나왔다.
대다수 다크호스들이 따분함이나 좌절감에 빠지거나, 혹은 재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나 버거운 기분을 느끼면서도 수년간 마지못해 버티다 결국엔 자신이 충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꺠우침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 토드 로즈 <다크호스>
아직은 터닝포인트 정도는 아닐까? 터닝포인트였다면 당장 회사를 박차고 나왔어야하는 것일까? 그러기엔 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지금 뛰쳐나간다면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 환경이 싫어서 도망친 것에 불과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한 뒤에 정말 내 목표를 향해서 달려나가야 했다.
오늘의 이 감정을 잊지 말자. 꾹꾹 쌓아서 터닝포인트로 만들어야한다. 그리고 계속 내가 바라는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봐야한다. 그렇게 쌓인 불만과 내 이상이 만나는 지점이 생기면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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