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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나/365 나에게 접속

1일1주저리. 미모이드

by 점점이녕 2024. 7. 22.

솔라리스 중간 정도 읽고 생각 정리

 

기억, 감정, 트라우마의 물질화


솔라리스의 바다에서는 인간 내면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물질화한 방문객이 찾아온다. 켈빈은 이미 죽은 하레이를 만나고 당황과 공포로 하레이를 우주선으로 유인하여 우주로 보내버렸다. 아마 회피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하레이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켈빈의 옆에서 깨어났다. 솔라리스 행성헤서는 두려움과 고통에 직면해야 했다. 아직 그 이후로는 어떤 행동을 했는지 다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는 한편, 나의 내면에 숨겨진 두려움도 물질화되어 나타난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방문할까 궁금해졌다.


아직 살면서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큰 고통을 당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 찾아온다는 것이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사람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성숙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 평이하게 살아와서 정신과 감정이 미성숙한 것은 아닐까 걱정됐다. 싸우거나 큰 소리 내는 것을 싫어해서 그런 환경과 사람을 지금 껏 피해왔다. 하지만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 정신적 성숙을 이루는 것은 원치 않는 상황과 감정에 직면하면서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분명히 거쳐야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억지로 고통을 느끼고 싶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경험조차도 피하며 살아서 감정의 기복을 크게 느끼지 못해서 조금 아쉽기는 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에 뒤떨어져 보인다거나 부족하게 여겨지는 것에 걱정이 많은 것 같다. 준비가 잘 되지 않거나 미흡하게 느껴지면 불안해진다. 내가 너무 무능력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사람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뭐든지 잘 해야 할 것 같았다.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고등학생까지는 아니다. 그때는 공부도 잘 못했고 의지도 없었으니. 어쩌면 대학생부터 시작하여 회사원이 되면서 강화된 것 같다. 물론 우울기를 거쳐서 나아지기는 했지만. 어쩌면 불안과 걱정이 방문객으로 온다면 타인의 눈치만 보면서 자기 삶을 잃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내가 찾아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나를 보면, 조금은 나아진 미래의 나, 현재의 나는 어떤 말을 해주고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켈빈은 너무 놀라 눈에 보이지 않도록 치워버렸지만, 나는 내가 찾아온다면 그렇게 매몰차진 못할 것 같다.


아마 삶의 선배로서 나아질 수 있다고 응원하고 이끌어주지 않을까. 스펜서 존시의 멘토에서는 자기는 자기 자신의 스승이라고 했다. 성장을 외부 환경과 타인에게서 찾았을 때는 필연적으로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환경은 내 의지대로 구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내 마음과 생각은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다. 물론 관성의 법칙처럼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지만 꾸준하게 노력해서 디폴트를 좋은 방식으로 설계하면 될 것 같다. 안 좋은 방향으로 휘둘릴 때, 디폴트인 자기 자신을 믿는 방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존재의 상실

만약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었다면, 그 고통을 마주하고 잘 보내줄 수 있을까. 솔라리스에는 미모이드라는 대상이 나온다. 미모이드는 인간의 기억, 감정, 트라우마를 모방한다. 미모이드라는 단어를 보고 어감이 비슷해서일까,  고통을 현상화한대고 해서였을까, 사모예드 티코가 생각났다. 한 유튜버가 티코라는 강아지를 잃고 티코의 유전자를 복제한 일이 있었다. 새로 태어난 아기 강아지에게 티코가 돌아왔다고 반기는 장면을 보고 무서움을 느꼈던 것 같다. 분명 다른 생명이지만 같은 이름을 붙이고,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중한 반려견을 떠나보내야 했던 고통을 이해하지만, 성숙하게 이별을 해야할 때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떠나보내기 싫다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그리운 이름을 붙이는 것이 다소 이기적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부모님이다. 만약 부모님이 갑작스레 떠나게 됐다면 정말 성숙하게 이별을 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당연이 너무 슬프고 가능하다면 다시 살아서 나와 같은 시간에 존재하길 바랄 것 같았다. 어쩌면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상실의 고통 속에 살다가 솔라리스 행성에서 부모님을 만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같이 있고 싶음이 당연하지만 분명 이별을 했던 기억을 애써 무시하고 진정한 부모님이라고 생각하고 살 수 있을까. 과연 진정한 존재가 중요한 걸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이 중요한 걸까. 믿음이 중요하다면 실존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듯하다. 기억을 조작해서 다른 존재를 부모님이라고 여기며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살 것인가. 아니다. 나에게 부모님은 유일한 존재고 만약 그런 시간이 오게 된다면 슬프지만 기억 속에서라도 진짜 부모님을 간직하는 삶을 택하고 싶다. 멋있게 이별하고 부모님이 존재했던 삶을 회피하지 않고 잘 간직하면서, 내 삶도 멋지게 살고 싶다. 만약 내가 부모가 된다면 내 자식도 그랬으면 좋겠다. 슬픔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보고 잘 이겨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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