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질문
어제인가, 그제인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 작가신청은 하지 않아서 발행은 못하고 글만 저장할 수 있다. 일단은 자기발견 글쓰기 프로젝트에서 정리한 것들을 다시 보충하며 글을 써나가 보기로 했다. 오늘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에 대해서 적어보기로 했다. 일단 한달 전에 답한 내용을 보면 그대로 따라 쓸 것 같아서 지금의 대답을 해보자고 타자기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런데 막막했다. 분명이 이전에 한번씩 고민을 해본 것들이라서 더 이야깃거리가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더 아무 생각이 안나다니.. 몇 문장을 적어보다가 너무 아닌 것 같아서 대충 저장을 하고 다시 티스토리에 일기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하..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알기 위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 진행할 예정이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공간이다보니 잘 써야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가면을 쓰지 말고 부족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돌아보자고 다짐을 했지만 또 막상 행동을 하면 이전의 다짐이 무색하게 안 좋은 습관이 나오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계속해서 다짐하는 수밖에.
# 내가 바라는 나
그나저나 '나는 누구인가?' 정말 표면적으로는 내 이름 석자다. 아지만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많다. 과연 나는 이름 석자로 세상에 알려지고 싶은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딸, 친구, 동료, 직장인, 리더와 같이 이런 관계로서의 나도 아니다. 꿈은 동사가 되어야한다고 헀던 것처럼 나라는 존재도 동사가 되어야한다. 사실 이전에 나에 대해서 고민을 하면서 정체성을 대략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살짝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더 의미있는 삶을 위하여 계속 시도하는 사람'. '시간을 스스로 계획한 대로 보내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타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삶'이라는 정체성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떻게 보면 거의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
중요하게 여기는 키워드는 '성장', '과정', '타인', '주도성'인 것 같다.
- 주도성 : 시간을 내가 계획한 대로 보내고 싶다.
- 과정 : 목표는 있지만 끝을 원하지는 않는다. 과정이 중요하다.
- 성장 : 과정과 뗴어서 생각할 수 없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삶을 사는 것. 성장의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나'다.
- 타인 : 나도 성장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 상부상조하는 시스템.
# 과거의 나
일단, 여기까는 내가 바라는 나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는 어땠을까? 무언가 시도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불만족스러운 환경과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냥 똑같이 살아가고 있을테니까. 무엇이 아쉬워서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을까?
- 내향적인 나
- 무기력한 나
- 다짐만하고 실행하지 않는 나
-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는 나
- 다른 사람이 부러운 나
-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는 나
- 의미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나
-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지는' 나
- 무엇하나 이룬 것이 생각나지 않는 나
- 타인에 긍정적인 영향은 커녕 스스로도 잘 살고 있는지 의문만 드는 나
- 자신감이 없는 나
이렇게 생각하니 부족한 것 투성이인 것 같지만... 맞다. 부족한 것 투성이다. 정말 가장 큰 문제는 나도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 그래도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정말 최악이었다. 그저 사회에서 좋다고 하는 시스템을 따르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해서 법을 잘 치키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기준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들었던 것 같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도 계속 무기력하고 이런 하루를 평생 반복한다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주말에 잠을 많이 자거나 쉬면 왠지 죄책감이 들었다. 열심히 살아야 잘 사는 것이니까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해야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정작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머리로는 더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지만 몸은 그러질 않았다. 쉬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쉴라면 제대로 쉬고 학습하려면 제대로 해야하는데 뭣도 아닌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아마 사회의 기준을 내 기준이라고 애써 속이면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열심히 해야한다고 이해는 하지만 왜 열심히 해야하는지 납득은 못하는. 좀 아이러니하다.
우울하고 무기력에 빠지는 이유를 조금 더 찾아보고 싶다. 느낌으로는 알겠지만 조금 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글로 풀어보고 싶다. 예상으로는 거의 비슷할 것 같다. 자기만의 삶의 목적, 의미가 없다는 것. 살아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 하지만 이거는 너무 단순하니까...
# 일과 취미 등
추상적으로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앞서 설명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간접적으로 나를 드러내는 것들도 많다. 내가 하는 일과 시간을 내서 하고 있는 취미 같은 것들. 현재 일을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하고 있다. 만으로는 4년이 되었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 물론 답이 없는 이슈를 진행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는 하지만 세상에 없는 서비스를 만들어낸다거나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며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서 만족하는 편이다. 생각하는 것들을 정리하고 가시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지금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나중에 홀로서기를 했을 때도 좋은 역량으로 남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프로세스나 스킬이나.
취미..는 사실 즐거워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 '하루에 정해진 루틴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예전에는 취미로 많이들 이야기하는 그림그리기, 독서, 피아노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지만 그떄도 딱히 좋아서 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안하고 있는 것을 보니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들인 것 같기도 하고. 루틴에도 많은 항목들이 있지만 과정인 '루틴' 자체를 취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무언가를 했다-보다는 하고 있다-가 더 마음에 들어서. 취미는 꾸준하게 해야 취미가 아닐까? 즐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루를 마무리 하며 보람을 느끼고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으니 취미라고 해야겠다. (정말 꾸준히 하다보면 나중에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추가적으로 취미로 만들고 싶은 것은 '나만의 글쓰기'다. 앞에 '나만의'가 붙은 이유는 내가 드러나는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그냥 글쓰기는 외국 서적을 번역해도 글쓰기가 되는 것 같다. 글쓰기에도 목적이 있어야한다. 앞에 서술하거나 꾸며줄 수 있는 것. 나는 나의 색깔이 뭍어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지금 나에 대해 고민을 하는 이런 글쓰기도 포함된다. 써야하니까 쓰는 것 말고 나의 관점과 사고력을 증진시켜줄 수 있는 글쓰기를 취미로 만들고 싶다. 아니, 만들어야겠다. 재미도 느끼면 좋겠다!!
# 자기확신, 자기의심
역시 나에 대한 질문은 어렵다. 세상에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흔들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자기만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그 분들도 분명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철학을 확립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왠지 그 철학도 시간이 갈수록 계속 변경될 것같도 종종 흔들릴 것 같다. 즉 평생은 자기확신에 찬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말. 물론 자기 확신이 뚜렷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보지는 못해서 확신은 못하지만 하루, 아니 적어도 몇초 정도로 자기 의심이 든 적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보니 앞에서 나를 동사로 설명할 때 기존에 정한 정체성이 아니라 '더 의미있는 삶을 위하여 계속 시도하는 사람'라고 정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데카르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여 확실히 않은 것들을 다 제거해나갔다. 그렇게 단 한가지 의심할 수 없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그렇게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했다. 나도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떄로는 나에게만 도움이 될 수도, 때로는 타인에게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만약에 '스스로 성장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잡았다면 나에게만 도움이 되는 일은 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게되는 것 같다. 내가 성장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각각 내가 의미 있게 사는 방법 중 일부인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더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고 무언가 계속 시도한다는 것. 이것인 것 같다. 이 목적이라면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는 무언가 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결과다. 오히려 실패도 없는 삶은 나대로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음... 바꾸고 싶은 것은 비교 대상이 불분명한 것. '더 의미있는' 이라고 했을 때 애매하다. 타인이 되면 안되고 내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제 보다 의미있는'으로 고치면 좋을 것 같다. 또 시도만 하면 안되고 회고를 통하여 잘한 것은 유지하고 잘못된 것은 그만둬야한다. 이러한 돌아보기 과정은 분명 성장을 낳는다. 따라서 '어제보다 의미있는 삶을 위하여 계속 시도하고 성장하는 사람'을 '나'로 정해야겠다.
# 번외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to-do list를 잘만 정하고 업무를 완수 했었는데 정작 나에 대한 질문은 머릿속이 텅 빈 것 같다. 그만큼 자기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을 적게 가졌다는 거겠지. 어디에선가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자기 일에는 짜투리 시간을 사용한다고 했다. 거의 하루종일 일을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내 자신, 가족, 친구와 같은 관계에는 일을 하고 남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물론 돈을 벌고 살아야하는 것이 인생이지만 조금은 반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이전에는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하루 종일 고민하면서 보냈다면 앞으로는 나는 누구인지, 더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 자료 조사
https://brunch.co.kr/@friseunsang/63
- 각성의 칼은 지금까지의 자신을 살해하고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위해 필요치 않은 것들을 쳐낸다.
- 자기와의 대면을 피하거나 자기에게 천착하지 않으면 자신은 어느새 사라지고 들뜬 마음으로 미래를 향한 청사진만 그리게 된다. -> 💬 어떻게 될지에 대한 것도 좋지만 일단 현실의 자기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회고라는 것은 과거 파악이 기본이니까.
- 자기화되지 않은 압도적 사유를 별다른 치열함 없이 내재하여 언제든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특이점을 일으킨 타자의 사유를 끌고 와 자신은 그 밑에 숨어버리고 뼈를 깎는 성찰 없이 손쉽게 각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 💬 거저먹기를 바라면 거저 살게된다.
- 결국 각성을 향한 열망이 고통스러운 자기와의 대면을 추동하는 힘이다. 어설픈 각성은 삶의 어설픈 변화를 야기할 뿐이다.
- 자신과의 대면을 뭉뚱그린 채 손쉬운 각성을 치르는 경우가 있는 반면, 특이점을 일으킨 강력한 사유에 압도되어 각성은 없어지고 무기력한 자기반성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철저한 각성을 거치며 자신을 쇄신하기 위해선 자기 긍정이라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자기긍정이 아닌 깊은 성찰에서 비롯되어 자신의 한계가 명확히 인식된 자기 긍정이다.
- 앞서 열거한 과정들을 치열하게 겪어내지 않는다면, '나는 누구인가?'는 한편의 일기로 남아 자신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진실되고 간절하게 자신을 대면하고 싶다면 치열하게 성찰하고, 과감히 벗어던지고, 있는 척하지 않으며, 주눅 들지 않으며, 당당하며, 긍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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