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취직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자.
<디자이너 생각위를 걷다>를 읽다가 위 글을 보고 처음 취직 했을 때를 돌아보기로 했다. 신입 시절의 마인드와 지금의 마인드를 적어보려고 했는데 글을 쓰다보니 경험을 나열하는 글로 변질되었지만 굳이 첨삭하지는 않겠다.
# 디자인에 발을 들여놓다.
근로를 하던 도서관 관장님의 추천으로 졸업을 하자마자 학교의 한 교학팀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2년 계약직이었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했지만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은 4년의 학교 생활과 공부한 내용으로 알고 있었다. 광고학도의 성향도 전혀 아니었다. 광고인들은 활발하고 자기주장이 강해야하고,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다. 무엇하나 나에게 맞는 부분이 없었다. 졸업은 다가왔지만 그렇다할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돈이라도 벌면서 찾아보자고 생각하여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도 잠시였다. 메뉴얼이 정해진 업무와 루틴한 작업들을 지속하면서 내가 기계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냥 내가 당첨이 된 것 같았다. 1년, 2년이 지나고 계약이 종료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교체될 것이 분명했다. 교체가 되지 않더라도 평생 이런 업무를 하면서 노년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니 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쉽게 대체될 수 없고 메뉴얼이 정해지지 않는 창의적인 업무를 하고 싶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일. 그게 디자인이었다.
퇴근을 하고 주 5일 내내 디자인 학원을 갔다.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였다. 일러스트, 포토샵, 인디자인, 아트웍 등등 편집 디자이너 양성과정이었다. 수업의 퀄리티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국비지원이라서 내 돈은 매우 적게 투자를 했었고 루틴한 회사생활에서 벗어나 나름 창의적인 학습을 한다는 생각으로 조금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근무지와 학원은 집에서 약 2시간 가량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7시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면 밤 12시가 되는 일상의 반복이어서 매우 피곤했지만 그래도 성장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학원에서는 과제도 많이 내주었다. 업무가 매뉴얼대로만 잘 처리하면 추가적으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과제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내가 담당한 연구소 교수님이 컨퍼런스를 개최한다고 하여 나에게 관련 리플렛 작업을 맡긴 적이 있었다. 학원에서 배운 디자인 툴로 3단 리플렛을 디자인하였고 근처 인쇄소에서 출력하여 컨퍼런스 초대장으로 호라용한 적이 있다. 교수님은 추후 고맙다며 케이크를 주셨다. 동료 직원들과 잘 나눠먹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디자인 작업을 공짜로 해준 것이지만 그때의 나는 어차피 디자인 연습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 계약 종료
교학팀에 출근한지 1년이 다 되어갔다. 보통 2년 계약 연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나는 더 오래다니고 싶지 않았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하여 중간중간 너무 그만두고 싶은 것도 참았다. 따라서 1년이 되자마자 즐겁게 계약을 종료했다.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해야했다. 학원은 계속 다녔다. 10개월 과정에 포트폴리오 과정을 추가했기 때문에 일정이 더 남아있었다.
# 포트폴리오 만들기
이때는 조금 고비였었다. 기존에 디자인 툴을 배우는 수업에서는 과제를 잘 해갔고 칭찬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도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반은 과제가 없었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회사에 가고 싶은지 하나하나 다 나의 생각이 있어야했다. 막막했다. 그동안 수업은 들었지만 정말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어떤 디자인 회사가 있는지 조사도 해보았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지만 답은 없었다. 그나마 도서관에서 책표지가 예쁘다고 느꼈던 생각이 떠올라서 '북커버 디자인'을 포트폴리오로 만들기로 했다.
초기에 가고싶은 회사와 컨셉을 정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제작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비전공자로서 나름대로 디자인을 잘 따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이 들어간 디자인'은 잘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베끼는 것만 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내가 만든 디자인이 강사님에게 혹평을 받아서 며칠동안 학원에 나가지 못했다. 컨펌을 받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참 우울했었다. 방황한 끝에 내 길을 찾은 것 같았는데 조금 발을 들여보이까 내 길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도대체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학원을 계속 나가지 않자 강사님에게 문자가 왔다. 내용은 지금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위로를 하고 학원에 나오라는 이야기었던 것 같다. 고민하다가 학원에 나갔다. 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그냥 해보기로 했다. 포트폴리오 과정은 2개월이었고 어차피 시간이 별로 남지도 않았다. 여차저차해서 계속 작업을 하고 컨펌을 받고 수정을 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래도 완성된 것을 보니 꽤 만족스러웠다.
# 이력서 쓰기
포트폴리오는 준비가 되었고 이제 이력서를 쓰면 됐다. 이때는 취업성공패키지?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을 했었던 것 같다. 교육을 듣고 회사에 지원하고 담당자를 만나서 이력서를 검토받는 프로그램이었다. 돈도 일부 지원을 해주었던 것 같다. 이력서에 어떻게 하면 진정성을 담을까 고민을 하면서 적었다. 진정성이 담겼는지 안담겼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도 실제 경험에 근거하여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노력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담당자님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리뷰받았는데 괜찮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이제 회사를 알아볼 시기가 되었다. 사람인을 둘러보았다. 회사를 알아보는 것도 일이었다. 어떻게 좋은 회사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몰랐다. 디자이너를 구인하는 회사는 많았지만 딱 여기다-싶은 회사는 없었다. 그냥 마구잡이로 지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괜찮다고 생각한 회사가 있었는데 디자인 작업물을 보니 너무 예뻤고 퀄리티가 높아보였다. 내가 과연 이런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2개의 회사에 지원을 했다. 첫번째 회사는 자가 출판을 도와주는 회사로 북커버 디자이너를 구인하고 있었다. 두번째 회사는 직접 편집툴을 개발한 회사로 명함, 포스터 등 템플릿 디자이너를 구인하고 있었다. 첫번째 회사는 개인들이 쉽게 출판을 하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 마음에 들었고 두번째 회사는 소상공인을 위하여 무료로 디자인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서 사회적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종 생각하지만 나는 이때부터 디자인이 사회에 주는 가치가 중요했던 것 같다.
# 면접과 합격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두 회사는 또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었다. 이전에 일했던 곳과 학원이 집에서 2시간 거리라면 회사1도 2시간, 회사2는 1시간 3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학교에 통학을 할 때도 지하철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통근 시간에도 공부를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해서 거리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첫번째 회사에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고 두번째 회사에서는 면접 제의가 왔다. 사실 내가 쓰려고 했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는데 앞에 사설이 길었다.
천성이 내향적인 사람이라 면접이 너무 걱정되었다. 면접 일자에 맞춰서 구로디지털단지에 도착을 했다. 정말 사람이 많았다. 뭔가 활발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회사 근처 카페에서 두근거리며 앉아있었다. (이디야...) 아직 점심시간이 끝나지 않아 옆 테이블에는 무수히 많은 직장인들이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아마 걱정만 하고 있었을 것 같다. 그렇게 면접 시간이 되어서 건물로 들어섰다.
(면접 끝...)
면접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최종 합격 전화가 왔다. 팀장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그리고 연봉을 말씀해주셨다. 연봉이 생각보다 너무 적었고 팀장님고 비전공자라서 연봉이 적게 책졍되었다고 했다. 회사의 가치를 보고 가고 싶었던 회사인데 또 돈을 생각하니 고민이 되는 것이 나도 조금 속물인가 싶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은 알겠다고 했고 출근 일자가 잡혔다. 전화를 끊고서도 이런 연봉을 받고 다니는 것이 맞는지 계속 고민이 됐다. 출근하기 전에 빨리 전화를 해서 입사 취소를 하는 것이 좋은지 집에 가서도 고민이 많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생각했다. 내가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이런 연봉이 책정되었다면 한번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해서 연봉을 높여보자고. 어차피 신입으로서 많은 경험을 해야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것은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석이조라고. 회사와 개인의 이상적인 관계는 서로 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 역시도 많이 공부하고 배울 것이고 이런 개인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출근을 하게 되었다.
# 벌써 5년?
회사생활을 하면서 실망을 한 적도 많고 초기의 다짐이 무색하게 의미를 잃어버린 적도 많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디자이너로서 나의 철학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일 안에서 열심히 하려고 했지 나의 본질을 규정하지 못했다. 정말 다양한 업무(개발 제외하고 전부)를 했는데 다양한 업무를 한 기준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였다. 그냥 이것저것 하다보면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이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장점일 수도 있다.)
템플릿 디자이너로 입사했지만 어느순간 내 직군은 UXUI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바뀌었다. 이제는 몇몇의 디자이너를 리드해야하는 자리가 되었다. 혼자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철학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는 생각 했지만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었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구체화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않은 것을 보니 시간이 흐른다고 성장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것은 이진선님이 말씀해주신 연차가 경력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이제 리드를 해야하는 입장에서 리더가 주관도 없이 우유부단하다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았다. 내가 지금 팀장님에게 갖고 있는 불만도 디자인적인 사고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싫어했던 행동을 내가 직접 하기는 싫었다. 누군가에게 방향성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방향성이 잘 잡혀있어야했다. 나의 철학과 방향성을 잡는 것은 내 인생에도 도움이 되고, 팀원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그들이 행하는 작업물에 그 철학이 녹아든다면 회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 취직했을 때의 마음인 '상부상조'를 다시 생각하자. 팀워들의 발전을 위해 시간을 쏟는 것은 나의 업무할 시간이 줄어드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스스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일 것이다. 성장하고 나누자. 나중에 누군가가 나와 같이 일하는 것이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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