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한다, 고로 존재한다
첫 트레바리, 말은 운명의 조각칼이다 본문
처음으로 트레바기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모임이었지만, 만만치 않은 참여비 때문에 선뜻 발을 들이지는 못했다. 최근 리더십 개념으로 회사 교육비를 지원받아서 비로소 신청해볼 수 있었다. 4개월간의 독서와 독후감 작성을 기본으로 하는 모임인 만큼, 어느 정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회사 생활과 지나치게 충돌해서는 안 된다는 현실적인 조건도 있었기에. 탐색을 하다보니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 찜을 남발했다. 그러다 빠르게 히작하고 싶다는 마음과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키워드를 교차해보니 이민호님의 '말은 운명의 조각칼이다'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럽게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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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이 달라지면 삶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어요. | 독서모임 | 말은 운명의 조각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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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목표를 나열하자면 감각 키우기, 현재에 집중하기, 리더십, 스몰토크, 말하기, 글쓰기 등 여러 가지지만, 함축하면 결국 '언어'로 귀결되는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이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했듯, 더 많이 경험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결국 언어와 어휘를 확장해야 할 것 같았다. 어디선가 글을 잘 쓰면 말을 잘 하게 된다고 본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글쓰기와 말하기가 다른 역량으로 느껴진다. 글은 어느 정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말로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은 너무 오래된 문제기 때문에. 아무래도 글을 천천히 고민을 하면서 문장하나하나 작성하고 지우며 완성해나갈 수 있지만,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 순간 흐름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순발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항상 어려운 소통법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채용 면접을 연달아 진행하고, 팀원 피드백도 정기적으로 전달해야 하며, 타 팀과의 소통도 점점 늘어가는 요즘이기에 말하기의 중요성이 더욱더 대두되었던 것 같다.
모임 소개에는 <스틱>과 <왜의 쓸모>가 언급되어 있었다. 배울 수 있는 지점들이 딱 나를 위한 것 같았다.
- ‘말은 왜 사람을 움직이는가’
- ‘왜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고, 어떤 말은 사람을 망가뜨리는가’
- ‘나는 지금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왜 어떤 메시지는 머리에 ‘착’ 달라붙고, 어떤 말은 금세 잊힐까요?
『스틱』은 복잡한 생각을 단단하게 붙잡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전달력’의 핵심은 화려한 말이 아니라 붙잡히는 구조에 있음을 보여주죠.
...
아쉽게도 위 책들은 지난 모임에서 다룬 것이라 이번에는 다른 책으로 진행한다고 했지만, 모임장님은 같은 분이시고 분명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을 테니 모임의 결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연금술사> 독후감
4월 모임의 책은 <연금술사>다. 알고 있었던 책이지만 읽어보지는 않았다. 독후감을 제출해야 모임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작성해서 보냈다. 적고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어떤 내용을 넣을지, 어떤 흐름으로 진행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이건 글을 쓸 때마다 항상 하는 고민.
워낙 많이 알려진 책이라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산티아고의 이야기에 크게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은 지속되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는 나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것. 낙관적이고 행복한 말이지만, 세상이 나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다. 마크툽.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는 방식의 내용들도 흐린 눈을 하게 만든 이유 같다. 운명론에 끌리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주체성과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서. 타로나 점을 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내 의도가 아닌 것들로 나를 단정해버리는 것이 불편하기에.
비현실적인 요소들도 책 속에 빠져들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다. 사막과 대화하고, 바람이 되고, 태양에게 말을 거는 장면. 우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초월적인 현상들이 반복되자 등장인물로 이입하기가 어려웠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더라도 인간의 삶이 빗대어 해석할 수 있으면 이해했겠지만, 너무 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라 공감의 범위를 넘어가 버린 것 같다. 파티마와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첫눈에 반했다는 것. 그리고 이 사랑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 결국 외적인 것에 끌린 것 아닐까. 오히려 초반에 등장한 상인의 딸과의 관계가 더 납득이 되었다. 대화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매력을 느꼈던 것. 생각해보면 인간의 고뇌와 구체적인 관계, 심리에서 의미를 찾는 내 취향을 확인하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등장인물과의 대화와 언어 속에서 내 자아의 신화를 공고하게 해주는 것들도 있었다. 낙타몰이꾼은 오직 현재만 살아가는 사람이다. “걸어야 할 땐 걷는 것, 그게 다지. 난 지금 과거를 사는 것도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니까.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내가 요즘 추구하고 있는 태도라서 와닿았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 잠식당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경험과 감각을 많이 느끼면서 살아가자는 것. 오아시스를 발견하고도 지금은 잘 시간이라며 누운 낙타몰이꾼의 태도처럼 지금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쉬어야 할 때는 쉬자는 다짐을 다시 떠올려본다.
크리스탈 가게 주인도 인상깊었다. 평생 메카 순례을 꿈꿨지만 끝내 떠나지 않은 사람. 쉽게 포기하는 겁쟁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난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있기로 한 거지.” 꿈 자체를 연료로 삼는 태도. 이루는 것보다 품고 있는 것이 더 필요한 사람도 분명 있다. 과거에 이대로 살면 안될 것 같다는 불안에 다양한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나가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다. 목표를 이루고 성취감을 느꼈지만 잠깐의 만족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공허함이 찾아왔다. 그렇게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또 반복. 그 이후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지만, 이루어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느낄 수 있는 비전을 갖기로 했다. “무언가를 찾아가는 매순간이 신과 조우하는 순간인 거야. 내 보물을 찾아가는 동안의 모든 날들은 빛나는 시간이었어.” 어쩌면 이 문장이 과정의 비전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 아닐까. 크리스탈 가게 주인처럼 꿈을 품는 태도와 낙타몰이꾼의 현재를 사는 태도.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신화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만의 길을 가라.” 책의 메시지인 것 같기도 하고 흔히 들을 수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저 말은 한편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 같아서 불편함이 있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 자기 삶을 살지 않는 것이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것이 자아 실현인 것처럼 소비되는 방식이 마음에 걸린다. 세상의 구조와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는 아닐 것 같은데. 책 초반에 팝콘 장수를 낮춰보는 장면이 아쉬웠던 것도 여기에 있다. 그 장수가 팝콘 튀기를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순례를 떠나지 않았다고 수동적으로 사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 세상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자리에서 살아가야 한다. 모두가 사막을 횡단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요즘 느끼는 것은 내면에 파고들수록 자아가 비대해지는 것 같다. 특출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고, 평범하게 살면 안될 것 같고. 그런 자아의 비대를 방지하고 싶다. 책임 있는 자유 안에서, 평범한 하루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맞는 방식이다.
책 자체의 메시지에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그 거리감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며 거창한 목표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싶고, 자아의 신화를 찾는 것보다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를 알아가고 내 신화를 직접 써내려가는 것.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고 다양한 감각을 지속하고 싶다는 것. 이런 것들이 내가 살아가고 싶은 태도라는 것을 다시 공고히 해본다. 행복이란 사막의 모래 알갱이 하나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고 했으니 그런 소소함에 의미를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크툽을 운명론으로 읽지 않도 다르게 해석해본다면, 일어나는 일에 저항하지 말고 그 안에서 의미를 읽으라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산티아고는 전 재산을 잃고,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서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내가 바람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뭐라도 해보는 태도 자체는 갖출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납이라면 금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붕어빵 틀이 되어서 붕어빵을 만들거나 와플 기계가 되어서 와플을 만드는 것처럼 때에 따라 녹았다가 새로운 쓸모로 변모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모임에서
첫 모임이라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의문을 품고 있던 찰나, 한 명씩 돌아가며 스피치를 진행한다는 문자가 와서 긴장이 됐다. 스피치를 잘하고 싶어서 신청했지만 막상 한다고 하니까 긴장되는 이 모순. 어디까지 준비해서 말해야 할까 고민을 잠깐 했다. 말하기 울렁증이 다시 도졌다. 그래도 고통은 빨리 맞닥뜨릴수록 낫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으며, 못할수록 시도해봐야 하고,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깊게 준비하지는 않았다 ^^ 즉흥적으로 망쳐보는 것도 그 자체도 경험은 아닐까, 너무 강박을 가지지 않기로 했던 마음을 되살리며.
늦은 저녁, 11시 20분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참여자는 많았고 다양한 분들이었다. 모임장님이 짝을 지어주신 덕분에 그나마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중간에 짝과 손바닥을 마주치는 액션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과의 스킨십이 살짝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 가벼운 접촉 하나가 그래도 친근감을 만들어준 것 같다. 다들 체온이 높았다. 따뜻...ㅎ 평소에 초면인 사람의 손을 이렇게 마주쳐볼 일이 어디 있겠나, 오늘도 새로운 경험을 +1 했다고 느꼈다.
다른 분들의 스피치를 듣고 가볍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긴장이 조금씩 풀리나 싶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어 첫 마디를 떼는 순간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역니나 나는 나였다.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 마음을 억누르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들을 내뱉었는데, 머리에서 문장이 끊겨서 결굴 생각했던 내용의 반의 반도 채 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늘 그렇듯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걸까 돌이켜보면, 사람들 앞에 서면 한 문장 한 문장이 평가받을 것 같고, 논리에 허점이 없어야 할 것 같고, 너무 길어지거나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지루해질 것 같다는 복합적인 생각들이 동시에 밀려오기 때문인 것 같다.
모임장님이 한 분 한 분의 스피치를 들으며 구체적이고 다양한 말하기 방법을 짚어주셨다. 이론으로는 이해해도 막상 막을 하다보면 내가 지키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지 또 고민에 빠지고 낙담을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아차! 하고 떠오르지 않을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꺼내야 하는가였다. 나름대로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아스팔트에서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즉, 껍데기만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 내 머리에서 꺼냈으니 내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실은 내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 루틴에 매몰되어서 힘들었다 -> 루틴을 하루에 20개씩 하면서 잠도 자지 않다서 힘들었다 -> 루틴을 20개씩 하다보니 새벽 3-4시가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경각심이 들었다. ....
루틴 20개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말하면 좋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여튼 옆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평소에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을 너무 구구절절하게 내뱉을까봐 조심하다보니 그렇게 학습이 된 것 같다는 공감을 나누었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로 파고들면 듣는 사람이 지루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말하기 방식을 그렇게 굳혀온 것 아닐까. 물론 상황에 따라 대화 방식과 깊이를 조저하는 것은 맞다. 업무 회의에서 개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그래도 상황의 온도를 읽고, 그에 맞는 깊이를 가늠하여 꺼내볼 수 있는 스토리를 갖추고 싶다. 그리고 내 이야기만 하지 않고 상대방을 궁금해 하고, 잘 질문하는 것도.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는데, 한편으로는 현실 안주처럼 비춰질까 걱정도 됐다. 그러나 자기만의 속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어서 위로가 됐다. 처음 만난 분들 앞에서 이만큼 내 이야기를 꺼낸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닐까. 들어주고 관심을 갖고자 하는 분들이었고, 따뜻한 시선과 언어를 지니고 계신 것 같아서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물론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내내 긴장하고 있기도 했지만. 그리고 다음에도 여전히 긴장하겠지만.
스스로가 부족하기 때문에 학생의 부족함도 발견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고 하셨던 선생님, 과거의 인연을 고백한다며 관심을 끌고 좋은 스피치를 선보이셨던 언어병리사님, 업무의 발산과 수렴 과정에서 우림과 툼밈을 떠올렸다는 직장인 분, 산티아고처럼 실행과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결국 자기만의 길을 나선다는 사업가 분, 자신 있게 캐릭터 목소리를 선보이셨던 성우 지망생 분, 지난 모임에서 배운 뇌의 관점으로 책을 새롭게 해석해주셨던 분 등등.
모임 마지막에 후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을 때는 크게 감흥이 없지만, 글을 쓰고 대활르 나누면서 그 밀도가 높아진 것 같다고. 독서 후 별점을 3점으로 매겼지만, 모임을 마치고 5점으로 바꾸었다. 앞으로 <연금술사>를 떠올리면 산티아고보다 이 시간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말도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고 계속 긴장했지만, 부족함을 느꼈던 그 시간 자체도 새로운 도전이었도 경험이었다. 이번의 모래 알갱이 하나 추가!
책을 읽으면서도 모임에 다녀온 후에도 생각했지만 지난 해에 휴식을 취한답시고 루틴을 멈춘 이후로 거의 반년이 되었다. 가볍게 감각 루틴을 다시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의 글은 그 마음에 대한 시도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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