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한다, 고로 존재한다
2차 홀로서기 웨이브 본문
1. 질문(GPT의 제안)에 대한 생각을 나열한다.
2. 해야할 것들을 리스트업한다.
생각 나열
1) 자립을 바라보는 이유
# 자립을 어떤 단어로 이해하고 있을까?
'자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 안에서 '도망'과 '탐험'이 뒤섞인 감정을 느낀다. 겉으로는 가능성을 실험하는 탐험이라고 말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지금 하는 일이 더 이상 의미 없어서 피하고 싶은 도망같기도 하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일이 언제나 의미로 가득 찰 수는 없다. 의미가 옅어진 일을 그만두는 선택에 도망이라는 낙인을 찍는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억누르는 일이다. 9년의 시간을 단 한 단어로 부정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종종 타인의 이직에는 '용기 있다'는 말을 붙이면서, 내 결심에는 '도망'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이 불균형이 어쩌면 가장 먼저 벗어나야 할 굴레일지 모른다.
'해방'은 과거의 억눌림을 전제로 하는 것 같고, '회복'은 미래의 수동성을 내포하는 것 같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억눌림의 반동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능성을 향한 도전의 움직임에 더 가깝다. 설령 걸어보지 않은 길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직 생활이 더 나에게 맞는다는 결론에 다다른다고 해도, 그것 또한 귀한 발견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맞고 틀림이 아니라 나를 탐구하려는 태도가 아닐까.
그러므로 나에게 자립이란 세상으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라 나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다. 삶의 실험이고 동시에 내 존재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 될 것 같다. 완성된 형태의 홀로서기가 아니라 아직 미완의 나를 알면서도 한 걸음 내딛는 살아있는 결심.
#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무엇으로 향하고 싶은가
조직에서는 나름 많은 것들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인정이 진짜 내 실력인지, 아니면 조직이라는 틀 속에서의 효용인지 헷갈린다. 정년이든 구조조정이든 언젠가는 이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그때 세상 앞에 홀로 섰을 때, 혹시 나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별볼일 없는 존재로 남는 건 아닐까. 이 생각은 괜히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어쩌면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어쩌면 조직을 떠나서도 충분히 나로서 살아갈 힘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자라면 다시 배우면서 성장해야 할 것이고, 후자라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정말 내 크기를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자립이란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내면의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향한 도전이 아니라 내 두려움을 마주하는 연습. 그 가능성을 실험해보려는 일. 잘 살면 좋겠지만 사실 굉장히 잘 살고 싶다기 보다는, 적어도 살아는 갈 수 있음을 확인하고 싶기도 하다.
# 조직 속에서 잃어버린 일부
조직 안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분명 성장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사회성과 끈기를 길렀고,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고 해내려는 태도도 배웠다.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관계의 기술을,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일의 감각을 쌓아왔다. 분명히 얻은 자산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안에서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것도 있다.
자신감을 얻은 부분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차원에서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경력이 쌓일수록 알아야 할 것은 많아지고, 모르는 것도 끝없이 늘어난다. 정보는 넘쳐나고, 그 속에서 점점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기대받는 역할은 단순한 개인 기여를 넘어 팀원들의 성장과 역량을 이끌어내는 일로 확장된다. 책임의 무게는 커지지만, 그만큼 내 안의 불안도 커져가는 것 같다.
한편, 분명 주도적으로 일하고 있음에도 커다란 틀 안에서는 여전히 조직의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획한 서비스는 리뉴얼되거나 사라지고, 내 노력의 흔적들이 보이지 않게 변한다. 경험과 역량은 남았지만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흐릿하다. 회사의 정보와 프로젝트 과정은 대외비로 묶여 있기 때문에 어떤 고민을 거치며 프로덕트를 설계했는지 자유롭게 드러낼 수 없다. 물론 개인적인 기록으로 남길 수는 있겠지만, 결국 사회적인 인간이며 실력을 설득해야하는 입장에서는 눈에 보여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나의 고민과 시도, 그 실패와 성공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조직 안에서는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떠나고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온다. 다시 처음부터 증명해야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 반복이 지치고 피곤한 것 같다. 라포가 쌓인 분들이 사라진다면 내 공헌도 함께 사라질 것만 같다. 누군가의 인정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같다. 증명하지 않는 삶도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신뢰는 중요하다. 그리고 신뢰를 쌓는 것은 오래 걸리고.
또 다른 감정은 조직이 커질수록 책임감이 느슨해 진다는 것. 소위 일을 하는지 마는지 모르는, 시간을 때우는 것 같은 사람들도 보인다. 예전에는 일이 많으면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해서 좋았다. 하지만 요즘은 기여하는 만큼 처우를 받지 못하는 생각도 앞선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남과 비교하게 되고, 손익을 따지게 되고. 다소 하향 평준화되는 분위기도 답답하고. 여러모로 일의 의미보다 효율과 대가를 따지는 조건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불편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게, 포부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 반대로 조직이 나에게 여전히 주고 있는 심리적 안전망
조직이 나에게 주는 것은 단순한 급여나 경력 이상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믿고 인정해주는 상위 리더와 동료들이 있다. 평가가 디폴트인 조직의 긴장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주는 큰 버팀목이다. 물론 그 신뢰가 때로는 항상 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부담도 내가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도 든다.
업무 외적으로의 교류는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동료들과 소소하게 나누는 일상들이 충만한 시간을 부여한다. 원데이클래스 동호회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독서 모임에서는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쿠키를 구워서 나눠주고, 여행 선물을 주고 받는 일들. 이런 사소한 관계들이 충만한 내 삶의 균형을 만들어주었다. 일단 하던 나에게 사람과 관계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 속에서 세상을 배우는 또 다른 방법을 발견한 것 같다.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대학이 학점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관심이 없었던 운동을 시작하게 해주고, 헬스나 러닝을 함께 하는 것도 좋고, 투자와 연애, 가족 이야기도 소소하게 나누며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은 단순한 동료애를 넘어서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남은 것 같다.
일을 통해 얻은 것도 많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된 기술과 지식들도 많다. 백엔드, 프론트, AI, MCP, 프롬프트 설계, 데이터 분석, 트렌드의 흐름, 사고방식, 채용, 팀 관리 프로세스까지. 잃는 것에서는 일을 대충하는 사례를 적었지만, 반대로 일에 몰입하는 분들도 많다. 굉장한 오너십을 가지고 전문성을 발휘하면서 프로덕트도 고도화하고, 주변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열정을 전파하는 분들. 수많은 최복동분들. 이런 경험들은 결국 나를 성장시킨 자양분이다.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힘든 순간에 먼저 나의 공헌과 성과를 찾아서 설득해주는 리더가 있다는 사실도 큰 위로다.
조직이 때로는 제약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동시에 나를 지켜주고 성장시켜주는 울타리같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 속에서 배운 것들도 많고. 그 안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직이라는 울타리는 단순히 떠나야 할 장소가 아니라 좋은 디딤돌일 것이다. 해방, 도망, 회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생각하면 더욱더 감사한 일이 많다. 그래서 아쉬움도 너무 크고.
# 회사 밖의 나를 상상할 때 두려움보다 먼저 떠오르는 감정
솔직히 말하면 회사 밖의 나를 상상하면 두려움이 먼저 떠오른다. 익숙한 구조와 시스템이 사라지고, 나를 보호하던 이름표가 떨어져 나갔을 때, 과연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런 긴장에 항상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 두려움 뒤에도 작은 설레임과 기대도 있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배움의 한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워질텐데.
두려움과 기대는 언제나 나란히 존재한다. 두 감정을 모두 껴안고 싶기도 하다. 불안은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기대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2) 일의 정체성 - 어떤 일을 나의 일이라 부를 수 있을까?
# 몰입했던 일, 증명한 일
언제 가장 몰입했을까. 떠올려보면 내가 주체가 되어서 서비스를 구축했을 때였다. 제로투원의 각 프로젝트를 점차 구체화해 나가며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체감하는 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몰아 붙였던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지 라이브를 해서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내고 싶었고, 잘 굴러가게 하고 싶었다. 막연함과 답답함과 싸워야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가치가 있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업무라기 보다는, 내가 가진 실력으로 세상에 하나의 경험을 제공하는 창조의 감각이 좋았다. 물론 어느 정도의 인정 욕구는 있었지만. 서비스가 배포되고 실제로 잘 이용되고 있다는 리뷰를 받을 때는 단순한 성취감을 넘어서 나도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들이 흔들렸다. 담당자가 바뀌고, 기능이 개선되고, 새로운 요소들이 덧붙여지자 내가 만든 것이라고 말하기가 점점 애매해졌다. 서비스가 발전하는 것은 당연히 기쁜 일이지만, 그 안에서 내 흔적이 옅어지는 것이 씁쓸했다. 형태는 남아 있었지만 주인이 바뀐 것 같기도 했고, 주인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책임감도 희미해지는 느낌. 그래서 내 이름이 들어간 기술 특허가 특히나 반가웠던 것 같다. 돈이 되지도 않고 오히려 비용과 시간이 들었지만, 내 노력과 생각이 새겨진 결과같아서.
성과도 중요하지만 일을 통해서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누가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 일이라면 굳이 내가 할 이유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의 역량을 파악하고 하나의 방향성으로 잘 이끌면서 나아가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리더십이지만, 그 와중에도 실무를 놓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런 기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건전한 일의 태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그렇게 남기고 싶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허함을 어떻게든 잡으려는 방어기제 같기도해서. 하지만 난 성인군자는 아니기 때문에 무소유로 살기로는 글러먹은 것 같기도 하다.
일이 잘 풀리면 좋지만, 돌이켜보면 성장한 순간은 막혔을 때였다. 순조로움 속에서 평안은 있지만, 막힘 속에서는 생각이 자란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과 해결책을 찾았던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회원가입 정책을 세우고, 이용 플로우를 그리면서 서비스의 처음과 끝을 가시화시켜야했다. 레퍼런스도, 가이드도 없는 환경에서 길을 만들어야했던 프로젝트에서는 빠르게 학습하고 실험과 실패, 개선을 반복했다. 그렇게 확장해나갔던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몰입의 농도가 짙었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고, 문제를 분석하고, 구조도 설계하고, 결국 기능을 만들어 낸 일. 실제로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더욱 보람을 느꼈던.
물론 완전한 혼자는 아니었다. 성장의 결이 맞는 동료가 있어서 업무 시간도 신경쓰지 않고 궁금한 것들은 서로 질문했다. 말하지 않아도 좋은 것들은 먼저 제안해서 고도화하고. 각자의 전문성은 있지만 일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너지를 내는. 앞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뭔가 그게 어려울 것 같아서 혼자를 외쳤나 싶기도 하다.
# 일에서 얻는 만족은 성과인가, 이해받음인가, 표현의 자유인가
셋 다 중요하다. 어느 하나로만 설명되지는 않는 것 같다. 성과는 눈에 보이는 증거다.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출이 전년 대비 200% 성장했다. 1년간 등록하던 양을 몇 주안에 등록할 수 있는 프로세스로 양적 확장이라는 결과도 나오기도 했고.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고객들이 실제로 더 편리하게, 유용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정성적인 평가가 좋았던 프로젝트 성과로 볼 수 있다. 기술적으로 새롭고, 누가 봐도 혁신적인 서비스라는 평가. 서비스와 고객들의 이용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고, 또 하나의 창의적인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영향력이 중요함을 느꼈다. 성과가 숫자로 드러난다면 이해받음은 또 다른 만족으로 다가온다. 내가 아니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것 같다는 말, 무슨 일을 맡겨도 어떻게든 해낼 것 같다는 말. 단순한 칭찬을 넘어서 그 고민과 시행착오를 알아봐줄 때 고충이 충만으로 바뀌는 것 같다. 사실 정량적인 성과보다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그 이해받음이 오히려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진짜 연료인 것 같다. 더 잘하고 싶어지는.
표현의 자유도 당연히 중요하다. 시키는 일만 하고 싶지는 않다. 방향성 자체는 조직의 상위 목표에 맞게 표시가 되더라도 그 안에서는 더 나은 방법은 스스로 탐구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실험하고 싶다. 이 과정도 결국 이해받음과 맞닿아 있다. 시키는 일만 잘 하기를 원하는 환경에서는 일을 벌리는 것이 좋지 않을 것이고, 막연한 방향성 안에서 서비스를 가시화 시키기를 원하는 환경에서는 탐구가 중요할 것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후자의 방향성으로 서로 일치해와서 잘 경험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에게 일의 만족이란 성과로 세상에 증명하고, 이해받음으로 사람에게 닿고, 자유로 내 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인 것 같다. 세가지의 균형.
# 일을 정의할 때, 누가 평가자로 떠오르는가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군의 사회적 이미지를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하고. 다만 이 역시도 명확한 업무의 롤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어느 조직에서는 문제 정의와 해결, 사고력을 중시하는 기획자로 여겨지고, 또 다른 조직에서는 비주얼을 중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여겨질 수도 있다. 같은 직군의 이름 안에서도 환경과 사람마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 그래서 스스로 정체성을 쌓아가는 것도, 조직에 전파하는 것도, 채용을 하는 것도 어렵기만 하다. 같은 언어, 다른 생각.
'디자이너'라고 한다면 예쁜 것을 만드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나는 설계 측면에서의 디자인을 중시하고 그런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채용하고 싶다. 껍데기는 그럴싸하지만, 정작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플로우가 불편하고 아무런 가치도 느낄 수 없는 그런 서비스는 피하고 싶다. 그래서 포트폴리오를 볼 때도 어디서 봤던 그럴듯한 UI만 나열되어 있는, 왜 그렇게 기획했는지 이유가 없는 것은 그냥 넘겨버린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고객 경험을 설계하는 과정으로써의 사고와 실행력이다. 그러는 한편,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는 이유가 어쩌면 사회적 기준 속에서 이래야 한다-라는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은 아닐까. IT 서비스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좁은 정의에 가두고 있어서.
돌이켜보면 독서 모임에서 이름 시를 넣은 선물을 만들거나, 질문 카드를 디자인했을 때 함께한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꼈다. 그것도 결국은 고객 경험이었다. 내가 만든 무언가로 누군가의 시간이 더 의미있어지고, 더 유익해지는 것. 눈에 보이는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디자인했다는 점에서 일의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아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어떤 감정과 경험이 만들어지느냐가 아닐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직업적 정의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좋은 의미를 남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물건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형태를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가닿고, 누군가의 삶을, 아니 삶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니까... 살아가는 과정에서의 잠깐의 경험이라도 긍정적으로 남기는 일이 아닐까.
물론 이 기준에 따르면 세상에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한히 많다. 확실한 것은 영혼 없는 대량생산품을 만드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이건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피하고 싶은 것. 그렇다면 그게 아닌 것을 많이 찾고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교감이 아닐까. 나는 의미를 담아도 그것을 접하는 졵가 느끼지 않으면 대량생산품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의미라는 것은 상대에게 닿아야 진정한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겠다. 환경을 가리지 말고 조직에서도 충분히 시도해볼 것.
# 자립 이후에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적어보자면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변화하는 트렌드와 기술 속도를 따라가는 일이 조금 버거워진 것 같다. 예전에는 새로운 툴을 익히고 실험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여기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그 열정보다는 독서를 하고, 취미 생활도 즐기며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일에 더 마음이 간다. 물론 이것도 일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음.. '시간 사용'이라고 적어둘까. 직업적 성취가 여전히 나를 성장시키고는 있지만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과 그 안의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IT 프로덕트와 기술은 그것을 표현하는 여러 길 중에 하나이지 목적 그 자체는 아닌 것 같다. 종종 프로세스를 만들 때 일을 위한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이유도 형식은 있되, 사람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 것도 결국 AI의 출현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 동안 배운 것들이 약간은 무의미해지는 느낌. 기술과 트렌드에 대한 지식을 AI를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노력해도 안되는 것은 분명히 있고 AI가 바로 그런 영역인 것 같다. 이전에는 구현 여부가 궁금했을 때 개발자를 찾아가서 물어보고 소통했는데, 지금은 그냥 GPT에게 물어보고 실제로 코드를 만들고 작동도 직접 만들어본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도 주니어들이 시니어들에게 묻기보다는 AI를 통해서 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기획적인 부분에서는 스스로도 뭘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가 크리티컬하여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미래도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비즈니스 현실은 차갑다. 매출이 우선이고, 그 과정에서 소수의 불편은 무시될 수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한다. 다수에게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굳이 소수에게 집중할 필요는 없으니까. 시간과 자원에는 한계가 있고 모든 사람들을 다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래도 불편이 명확히 보이는데도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함은 있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 점차 서비스 신뢰도가 낮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조직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책임감이 분산되며 저하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일이 아니라서 흐린 눈을 하는 것. 말을 해도 어차피 중요하지 않아서 처리되지 않을 일. 양과 질이 함께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게 함께가는 이상을 바라는 것일지.
그래서일까 점점 내 이름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을 하고 싶어진 것 같다. 자립 이후에도 사람의 경험을 만드는 일은 계속하겠지만 그 방식은 달라지지 않을까. 더 작고, 더 깊고, 더 온전히 내가 몰입할 수 있는 범위로.
#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잘하는 일이고, 내가 살아 있는 일인가
실무적으로는 내가 잘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리와 리더십이라는 단어에는 여전히 이질감이 있다.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고가야 하는 리더의 역할은 맞지 않는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성장의 방향을 타인에게 맡긴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끌어야 하는 구조는 내 에너지를 부정적으로 고갈시키는 것 같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리더가 필요 없다. 이미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리더이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바라는 건 그런 사람들과의 동행이다. 곁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할 때, 리더십은 이끌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작용으로 바뀌지 않을까. 끌고가는 사람, 끌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면서 함께 걷는 것. 똑같은 행동을 보더라도 누군가는 자신을 성장시켜주지 않은 '부족함'을 보고, 누군가는 기여하는 '노력'을 본다. 후자와 함께 일하고 싶다.
어느 정도는 조직 생활을 하면서 자립을 준비할 예정이고, 회피가 아니라 발판으로 삼자고 했으니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더라도 어떻게든 원하는 가치를 새기면서 시도해봐야 한다. 어려움에서 성장했다고 계속 말을 했으므로, 지금의 어려움도 또다른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으니까 나만의 리더십을 시도해보고 적어도 후련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에서의 태도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3) 자유와 소속의 균형 - 혼자이지만 함께 살아가기
# 지금 느끼는 소속의 형태
소속은 분명히 느낀다. 하나의 기능 조직 안에 15명의 팀원과 함께 일하고, 주기적으로 리뷰를 하며, 종종 식사 자리를 갖는다. 리더십 연습을 하면서 팀원들과의 관계를 조금 더 쌓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고. 기능 조직에 문제가 느껴지면 그룹 리더와 상의하며 방향을 조율한다. 목적 조직에서는 다양한 직군들과 하나의 프로덕트를 고도화하고 운영해나간다. 목표도 수치로 측정하고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업무 외적으로도 소소감이 있다. 독서와 원데이클래스 동호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림도 같이 그리고 종종 전시회도 함께 보러간다. 주말에는 월 1회정도 새로운 클래스를 경험한다. 몰랐던 취향의 세계도 알게되고 관심과 조예에 대해서 알게되는 것이 신기하다. 단순한 '회사 사람'이라도 생각했을 적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사람 냄새다.
# 소속이란 무엇인가
단순한 사람의 집합은 아니다. 교류가 있고, 의미가 맞물릴 때 비로소 온전한 소속감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사람이 중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주기적인 만남과 함께 나누는 흐름과 리듬이다. 부정적인 사람과의 만남은 나를 소진시키지만, 방향성이 맞는 사람들과의 반복적인 교류를 나를 확장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 같다.
결이 맞는 사람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는 교류의 장은 안정감을 준다. 그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돈독히 하거나 새롭게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런 관계는 한 번의 만남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다.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해서 전혀 다른 빛을 보여준다. 그게 좋은 방식이든 좋지 않은 방식이든. 스며들수록 좋은 사람도 있다. 첫인상만으로는 절대 알아볼 수 없는. 그래서 관계는 속도가 아니라 리듬으로 쌓는 것 같다. 다소 오래 걸리더라도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걸어가는 일. 그게 진정한 소속이 아닐까.
이게 지금 조직을 빠르게 떠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라포가 쌓인 분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워서. 지금을 사실 일보다는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투정부릴 수 있는 신뢰 있는 사람들. 약한 소리를 해도 정말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친근감의 표시라는 것을 알아주는 분들.
# 언제 자유롭다고 느끼고, 언제 고립되었다고 느끼는가
기본적으로 자유롭다고 느낀다. 지금의 조직도, 직군도,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기회를 잡고 몰두할지 결정한 것도 나였다. 때로는 원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도 있었고, 의견 조율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버티기로 선택한 것은 나였다. 싫다면 떠날 자유도 있었으니까. 결국 지금은 스스로 선택한 결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유의 한가운데에는 사회적 기준과 두려움이라는 족쇄도 있는 것 같다. 안정된 직장과 월급, 내집 마련, 성장, 결혼과 같은 것들이 때로는 옭아맨다. 나이에 맞는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압박감,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 그러나 모든 것을 거부하는 삶이 진짜 자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가는 것이 진짜 성숙한 자유인 것 같다. 그 마땅히라는 기준이 다소 애매할 수는 있지만.
고립은 반대로 사람들 속에서도 찾아온다. 함께 있어도 교류가 느껴지지 않을 때.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고립이 떠오른다. 상대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 실수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점점 조여올 때가 있다. 게으를 때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싫은 날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것을 잘 용납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함께 있어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자기 이야기만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집중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묘한 고립감은 느껴진다. 같이 있어도 따로 있는 것 같은 느낌. 조직 생활을 하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서 육체적인 고립은 아직 잘 모르겠다. 경험해보려면 자취를 해봐야하려나.
하지만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고립감은 누구나 있고, 그건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혼자 태어나서 결국 혼자가는 것은 정해져있으니까. 그 과정에서 잠시 함께일 수는 있겠지만, 타인에게 의탁해서 될 문제는 아니다. 결국 스스로 잘 지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지금 나와 소통중이니 고립감 조금 줄어들었다.
# 함께 있음은 어떤 형태로 필요할까?
비슷한 성장 속도와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할 때 에너지를 얻는다. 스스로 발전시키려는 의지, 자기만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접할 때 삶의 리듬이 살아나는 것 같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서도 떄로는 멈춰서 쉴 줄 아는 사람들. 그런 관계가 이상적인 '함께 있음'이 아닐까.
물리적인 만남도 중요하다. 온라인 속 교류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온기도 있다. 직접 마주 앉아 시선을 나누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생기는 집중의 결은 화면 너머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목표 달성이 뚜렷한 만남에서는 함께 있음이 잘 느껴지지는 않고, 사람을 하나의 존재로서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배려와 친절이 깔려 있는 교류, 작은 관심의 표현.
#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함께 일하는 방식
요즘 스멀스멀 마음에 들지 않는 문화들이 느껴지긴 한다. 탑다운과 폭포수. 완벽하게 정리된 기획안을 요구하고, 정의되지 않은 것은 개발하지 않겠다는 피드백, 버그 픽스를 버그냐 기획 문제냐 따지며 책임을 나누는 경우들. 일부긴 하지만 사례가 들려올 때마다 좋지 않은 문화가 생기고 있다는 걱정이 든다. 협업이 아니라 경계를 나누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은 느낌. 듣기만 해도 답답한데 직접적인 상황에 처한 동료들은 어떤 감정일까,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고민이다.
이상적인 협업이란 당연히 이런 방식과는 반대다. 함께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각자의 전문성과 강점을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관계. 그 속에서 1+1=3이라는 시너지가 생기는 것. 반대로 소통이 단절될 때는 1+1=0 혹은 -1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획을 하며 실패와 성공을 다루고 나아가는 태도다.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구조. 실패는 탓할 일이 아니라 더 나은 시도를 위한 밑거름이 되어야 하는 것. 물론 노력한 실패인지는 중요하겠지만.
이상적인 팀은 서로를 끌어주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누군가 지쳐 있을 때 동기부여를 해주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사람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서로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팀. 그런 구조 안에서야 비로소 함께 일한다는 말이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지 않을까.
적으면서 반성을 하게 된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행동으로 잘 보여주었을까.
# 혼자 일하면서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물리적인 교류의 부재는 아쉽긴 하다. 사람을 직접 마주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연결을 느낄 수 있으려나. 온라인으로 소통할 수는 있곘지만 그 안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텍스트와 화면 너머로는 상대의 표정과 말투, 분위기, 비언어적인 것들을 온전히 전달받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인상이 그려지지 않으면 공감도 어렵지 않을까.
완전한 혼자로는 어려울 것 같고, 느슨한 연결이라고 추구해보면 좋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혼자 일하더라도 프로젝트 단위로 협업을 한다거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교류의 장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것 등. 아직 구체적으로는 잘 떠오르지 않는데 굳이 스스로를 고립시킬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자율성과 연결의 균형이 유지되는 구조를 잘 시도해봐야 할 일인 것 같다. 사람으로 인하여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자유롭게 일하면서도 세상에 기여한다고 느낄 수 있는 일의 형태이지 않을까.
4) 용기와 불안 - 결심과 망설임의 온도
# 나는 지금 어떤 불안을 느끼고 있는가?
→ 실질적 불안(돈, 실패, 커리어) / 정체성 불안(내가 사라질까 봐) / 관계적 불안(끊어질까 봐)
한 가지의 감정과 생각은 아니고 여러 층위의 불안이 섞여있다. 돈과 실패, 커리어의 불안은 현실적인 무게로 다가온다. 지금의 안정된 수입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까,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계속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의 직무가 내 평생의 정체성이 아닐 거라는 것도 안다. 그건 하나의 껍질일 뿐이고 핵심은 그 안쪽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 같다. 아직 명확하게 언어화하지 못한 무언가.
한때는 증명하려고 애썼다. 아티클도 쓰고, 디자인 시스템도 구축하고, 내가 했다는 무언가를 남기려고 했던 것 같다. 몇몇 글은 큐레이션되고 좋은 리뷰를 받았다. 그러나 막상 서비스 기반의 기획은 대외비의 벽 앞에서 멈췄다. 데이터 역량은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직군으로 계속 일하지 못할 것 같다는 위화감은 계속 되고 있다. 그래서 이 경력의 껍질을 다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도 든다. 이력서나 포트폴리오는 꾸준하게 업데이트를 해야한다고 하던데, 이직할 생각은 없으므로. 한 조직의 문제가 아니어서.
정체성의 불안은 조금 더 깊고 묘하다. 나로 올곧게 서고 싶다는 생각은 하는데 어떠한 정체성으로 나아가야 할지 아직은 막연하다. 오히려 회사라서 더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것 같은 걱정도 있다. 이상하게 화려하게 성공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에 왜 또 걸리는지 모르겠다. 아무나 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냥 소소하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며 살아가면 될 것 같긴 한데.
어쩌면 정체성대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방황하면서 성장하는 것. 그런데 정작 그 믿음이 흩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흔들리고, 의심하고, 계속 증명하려고 들고. 불안은 결국 나를 향한 믿음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 같다. 실패하면 안된다는 부담도. 어떻게 실패를 안 할 수가 있을까. 또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 같으니 싹을 잘라야겠다. 사람은 원래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우연히 태어났고, 각자의 범위 안에서 적당히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 부귀영화 누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치있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
또 하나의 불안은 관계에서도 나온다. 동료들과의 협업 속에서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이 환경을 떠나면 그 연결이 끊길까봐 두렵다. 조직이라는 틀이 사라지면, 관계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유지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접점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더욱 큰 노력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살면서 수많은 인연은 스치겠지만 밀접하게 이어질 수 있는 관계는 드물다. 좋은 것을 함께 보고 나누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 조금은 걱정인 것 같다. 내가 이런 생각도 하게 되다니 신기.
# 불안이 나를 멈추게 하는가, 아니면 움직이게 하는가?
멈추게도, 움직이게도 한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불안 덕분이다. 불안하니까 생각한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난 누구이고, 무엇이 두렵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지. 불안은 사실 나를 무너뜨리기보다는, 나를 이해하게 만든다.
다만 자립에 대한 두려움은 즉각적인 실행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조직에서 준비하고 가능성을 실험하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조직이 싫은 것은 아니니까. 조직 안에서의 안정과 개인의 실험 사이를 오가면서 조금씩 테스트를 하면서 방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도망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가벼운 전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뭐 때로는 회피도 한다. 고민이 너무 깊어지면 마땅히 해야할 일로 도피한다거나 잠이나 의무적인 루틴으로 도망치는 것 같기도 하다. 불확실한 생각과 혼란보다는 명확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가고 싶다. 완벽한 독립이 아니더라도 병행이라는 형태로 자립을 시작하는 것.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방향에 집중하자.
# 불안을 느낄 때, 몸이나 행동에서 어떤 신호가 먼저 나타나는가
가슴이 두근거리고, 생각을 멈추고 싶어지고, 우울이 스며들듯 찾아온다. 그러다가 잠으로 회피하고, 말이 줄고, 표정도 굳는 것 같다. 내면의 소음이 커질수록 겉은 조용해진다. 사색이 늘고, 행동은 조심스러워지고, 감정 표현이 더뎌진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도 같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생각한다. 내면에서 싸운다. 이래야해, 저래야해. 한쪽은 회피하려 하고, 다른 한쪽은 시도하려고 한다. 완전한 승리는 없다. 계속 반복!
확실한 것은 가만히만 있지는 않는다는 것. 잠식되는 시기도 있지만, 그 시기조차 다른 방향으로 이끈 것 같다. 그 결과 지금의 나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 오늘의 불안도, 앞으로의 고민도, 언젠가 돌아보면 또 다른 나를 만들놓았을 것 같다. 오늘의 불안이라고 적었지만 이 주제로 글을 적자고 다짐했을 때는 불안했는데 막상 적고 있는 지금은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확실하다. 그리고 오히려 다시 평안해지고 현실 안주하려는 이 마음에 불안을 다시 잡아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웨이브가 잔잔해 진 것 같아서 일부로라도 너울을 키워야겠다.
지금 순간의 기록이 발자국이 되도록.
# 불안 속에서도 행동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때의 동력은 무엇이었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더 나아지고 싶다는 의지. 그리고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무엇보다 나 혼자만 이런 감정을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로였다. 나보다 먼저 같은 감정을 견뎌낸 크리에이터들의 영상도 많이 접했고, 그들의 진솔한 기록이 위안과 용기가 되었다. 고통을 포장하지도 않았고,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들의 시도를 보고 내 안에서 나도 해볼 수 있다는 불씨도 발견하고. 물론 엄청한 행동은 아니고 소시민과 같은 작은 행동이었지만 뭐라도 한 것이 어딘가. 단순히 바라본 것이 아니라 느끼고, 행동했다.
# 불안을 다루는 나만의 방식(언어, 습관, 루틴)은 있는가
단순하다. 생각하고, 쓴다. 왜 불안한지, 어떤 모습의 내가 되고 싶은지. 매번 명확했던 것은 아니지만 분명하게 도움은 되었다.
5) 관계와 영향 — 나의 사람, 나의 언어
# 지금 내 일과 삶에 영향을 준 사람
한둘이 아니어서 콕 찝어 말하기가 어렵다. 너무 많은 사람과 순간들 속에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어떤 것들은 긍정적인 영감을 주었고, 또다른 것들은 반면교사가 되었다. 매뉴얼대로 움직이기보다는 스스로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일하자는 다짐을 하게 해준 조직 경험, ‘흐리멍텅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일깨운 표정들, 벽에 걸린 옷걸이가 되지 말자는 문장을 남긴 책. 국가 지원금, 다양한 학원, 사회적 기업, 성장의 계기를 만들어준 리더, 사회성을 길러준 동료들, 불안과 강박을 마주하는 용기를 준 크리에이터들까지 많은 것들이 녹아든 것 같다.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만든 것도 결국 사람이다. 책이든 영상이든 그것들은 매개였다고 생각하고, 본질은 사람이었다. 결국 누군가의 생각과 지혜, 조예에서 탄생한 것들이므로. 누군가의 한 문장, 행동, 표정들이 불씨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우연히 태어났을 뿐이고, 삶의 의미는 없으며,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할 뿐이다." 지금 용기를 주는 문장이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무기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유롭다. 지금의 나를 바꿀 수 있고 내일을 새롭게 그릴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니까.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달라질 수 있고, 반대로 지금의 안정이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 과정을 스스로 의미와 감각으로 채워가는 일. 언젠가 지금의 고민을 다시 마주하더라도 그 방향은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어쩌면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더 깊고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자립 방식은 어떤 모습이었나?
세상에는 존경할 만한 인생이 너무 많지만 그들의 삶 전체를 그대로 살고 싶지는 않다. 한 사람의 완전함보다는 그 안의 한 단편, 태도에 더 끌린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일부라도 보이면 존경할 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야 존경을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이상을 추구하는 것 같다.
인상깊었던 자립들은 화려하거나 거창하진 않았다. 엄청난 성취를 이룬 것보다는 부족한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흔들리더라도,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사람. 자연스럽게 이진선님이 떠오른다.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삶을 탐구해오면, 그렇게 깨달은 주요한 자기 발견 질문을 프로세스로 만들어서 전파해주신 분이다. 생각은 단단하고, 목소리에는 고통이 있었지만 언어에는 확신이 있었던. 그때 운영하시던 한달어스는 지금은 지속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살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기의 나에게는 큰 울림을 주었던 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할 부분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잘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부모님만 하더라도 묵묵하게 할 일을 하며 그들로 인하여 탄생한 생명을 책임지며 살고 계신다. 그냥 길을 걸어가면서 접하는 많은 분들도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고. 유명한 인물들 중에서도 존경할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 세계는 너무 먼 것 같긴 하다. 나는 인류를 바꾸겠다는 거대한 야망은 없고 그저 평범한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며 조금은 나아지는 살짝 가벼운 생활을 하고 싶다. 너무 많은 것들을 책임지고 싶지도 않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세상을 넓히고,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 영웅들도 너무 멋있지만 소소한 것에 눈이 가는 이유다.
막 신아로미님이 삭발을 하고 인도에서 요가원을 다니는 영상을 보았다. '그깟 머리카락이 뭐라고'. 머리가 아주 멋있다. 갑자기 삭발을 한 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나에게 좋은 동료란
일과 성장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어려움이 닥쳐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일을 떠넘기지 않고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 일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교류도 중요하게 여기고, 긍정적인 마음과 웃음을 전파하는 동료. 도반. 우선순위를 고려해 해야 할 일을 해내되, 그 안에서 자기만의 사고력과 논리로 새로운 가치를 덧붙일 줄 아는 사람이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하며 의미를 확장시킬 줄도 안다. 그 모든 과정에서 호기심과 관심, 애정이 느껴지는 사람. 함께 일하는 동안 그 과정에서 앞으로도 계속 같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들게 하는 동료.
#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은가
당연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긍정적'이라는 단어는 모호하다. 누군가의 삶 전체를 바꿀 만큼의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일상 속에서 소소하지만 '좋았다'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은 되고 싶다. 함께 일할 때 신뢰가 가고,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짧은 만남이라도 피로 대신 편안함이나 밝음을 남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어떤 결과물이라도 남는다면 그 긍정이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적다보니 교류보다는 내 일에만 집중했던 과오가 떠오른다. 평가나 리뷰 과정에서도 사람보다는 산춘물에 집중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태도는 여전히 남아있다. 일할 때와 개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느끼긴 한다. 비즈니스라는 목적이 개입되면 사람이 뒷전으로 밀려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일한다는 것은 결국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이기에 관계의 중요성을 잊으면 안될 것 같다.
오롤리데이에서는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그들이 만든 서비스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 말이 오래 남는다. 아마 만들 때 행복까지는 느끼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어쩌면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과 잘 운영되어야 한다는 부담으로 몰입했던 것 같아서. 조직 안에서도 이 문장을 실감나게 구현해볼 수 있을까. 모두가 성장하고 싶어하고 더 잘 되고 싶어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개인의 문제인지 시스템과 환경의 문제인지는 계속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내가 이렇게 된 것도. 일하는 과정이 즐겁고 의미 있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을 남은 시기의 목표로 잡아보는 것도 좋겠다.
결국 핵심은 결이 맞는 시스템과 결이 맞는 사람을 함께 세우는 일일 것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적어도 가능성을 가진 사람과 환경은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지레 포기하지 않았나. 그 균형을 잘 파악해야 한다. 사람보는 눈을 기르는 것. 어차피 언젠가는 각자의 길을 걸을테니, 그 전까지는 할 수 있는 좋은 시도들을 해보기는 하자. 그래야 마지막에 이제 될 대로 되라는 말이 포기가 아니라 충분히 많은 것들을 시도한 사람의 후련과 안도가 될 수 있을 것이므로. 찝찝이 아니라 후련하게 새로 도전할 수 있도록!
# 사람을 통해 배우는 편인가, 고독 속에서 깨닫는 편인가
불과 얼마 까지만 해도 고독 속에서 깨닫는 편이라고 믿었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혼자 사는 것이고, 깊은 사색을 통해서만 나를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 사람을 통해 배우는 순간도 너무 많았고, 가치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결국 둘 다 중요하다.
한쪽으로만 기울면 균형이 깨지고 어떠한 문제로든 드러날 수 있는 것 같다. 자기 없이 다른 사람을 좇기만 하면 정체성을 잃을 것이고, 타인을 배제한 채 혼자만의 세계에만 머물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나를 알고 타인을 알 때 비로소 더 넓은 세상과 흐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도 중요하고 함께 있는 시간도 중요하다. 다만 혼자 있을 때 타인만을 떠올리거나, 함께 있으면서 혼자만 생각하는 비효율적인 상태는 피하고 싶다. 그 시간에 마주할 수 있는 사람과 경험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진짜 배움이 아닐까.
여기서도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문장이 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그 순간과 사람에게는 성실하게 임하되, 이후의 관계는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 그것이 가장 건강한 관계의 거리감이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인 것 같다.
6) 삶의 방향 - 자립 이후 그리고 그 너머
# 진짜 원하는 삶의 형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은 필수적이다. 적어도 배움과 도전을 할 때 고민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의 안정된 수입을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병이나 사고같은 예기치 못한 일에도 치료비 걱정 없이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자금도 있어야 한다. 돈 걱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최소한 생존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기반은 갖추고 싶다. 돈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현실적인 문제에도 부딪힌다. 내 집 마련이라는 버킷리스트. 홀로서기를 하면 대출이 어려워질 것 같은 걱정도 있고. 자립이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돈과 자립을 양자택일의 문제처럼 여기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조직이 주는 안정감이 커서 사회 밖에서는 그만큼의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은 걸지도 모르겠다. 돈과 의미를 두 축의 양단으로 놓고 고민하면 답은 없다. 일단 그 선을 지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 위에 의미 있는 일이 있다. '의미 있다'도 너무 모호해서 쉽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평생해도 질리지 않고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의미 있다고 여기는 순간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고, 그 기대가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 같다. 있지도 않은 진리를 찾아 헤매는 길 잃은 방랑자 같다고나 할까. 어떤 순간의 즐거움과 성취를 나중의 불만으로 무효화시키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같다. 송길영 작가님은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10년동안 고양이를 연구해보라고 했다. 그렇다면 고양이 박사가 되어서 돈을 잘 벌 수 있을 거라고. 만약 돈을 벌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돈을 못벌어도 어떤가. 10년 간 행복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나중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을 즐기고 사랑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다. 고로, 나는 조직 체질도 맞다. 조직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해왔으니까. 지금은 자립을 고민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조직 생활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시야를 조금만 달리 본다면 여전히 조직 안에서도 새로운 배움과 확장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자립이라는 선택 역시 인생 전체를 봤을 때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은 여전히 따라오겠지만 그 불안 속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하고 하루를 살아낼지 나도 궁금해진다. 미래의 내가 보았을 때 지금의 이 생각들이 어떻게 다가갈까.
최근에는 공방을 운영하는 상상도 하고 있다. 원데이클래스를 열고, 수업이 없을 때는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판매도 하고. 그러나 이건 본업보다는 부업의 형태로 두고 싶다. 본업은 시간은 직접 교환하지 않아도 가치가 확장될 수 있는, 온라인 기반의 서비스나 패시브인컴을 구축하는 일, 한 번 만들어두면 지속적으로 수익이 발생하되 유지 비용이 크지 않은 형태의 일로 하고 싶다. 그런데 이 고민도 돈 걱정이 없다면 공방처럼 약간은 느슨하고 사람이 느껴지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 같다.
북카페도 비슷하다. 편안한 인테리어와 잔잔한 음악,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손님이 없어도 괜찮다. 그 시간에는 내 작업을 하거나 글을 쓰는 나만의 아지트로 쓰면 될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한 카페라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독서를 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독서 모임도 열고, 글쓰기 모임, 대화 모임을 열어보는 것도 가볍게 생각해보았다. 커피도 팔고 디저트도 팔려면 또 새로운 취미를 배워야할 것 같다. 조금씩 배우면서 새롭게 시도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결국 원하는 것은 정량적인 일과 정성적인 일의 병행이다. 정량적인 일은 잠을 자도 수익이 나는 구조인 패시브인컴의 형태리고, 정성적인 일은 사람을 직접 만나 시간을 쓰면서 교류를 하는 일이다.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그 일들이 사회적 가치와 연결되어 있고, 나와 타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물론 가게를 운영한다면 늦잠을 자거나 주말에 쉬는 여유는 줄어들 것이다. 어떠면 지금보다 육체적으로 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하고 보람이 있다면 충분한 것 같다.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있지만 사실 이미 원하는 삶의 형태로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작게 방황하고, 즐기고, 낙담하고, 불안해하고, 만족하고. 다채롭게 지내는 것이. 캬라멜 팝콘 맛있다. 라떼는 고소하다.
# 일하지 않는다면 어떤 리듬으로 살고 싶을까
삶에서 일은 너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일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내 가치를 연습하고 실현하는 과정이서 성장의 방식이라고. 어쩌면 일을 피할 수 없으니까 스스로 그렇게 믿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로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어떤 삶을 살까. 놀고 먹으면서 보내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살면 무기력해질 것 같다.
여전히 무언가를 창출하고 싶은 것 같다. 단순히 생산적인 일을 넘어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창조적인 행위를 하고 싶기도 하다. 예술처럼 나를 매개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세상에 작은 흔적을 남기는 일도 좋다. 그것이 그림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결국 여전히 사회적인 동물이라 어딘가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이 사회화의 결과인지 내 본심인지는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냥 누워서 콘텐츠만 소비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삶의 리듬의 한켠에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가끔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삶을 접하는 것도 좋겠다. 세상을 배우는 또 다른 방식으로써.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생명을 책임지는 경험도 해보고 싶다. 다만 그 삶이 일과 병행할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강아지를 키우면 매일 산책을 시켜줘야 할텐데, 그 시간을 충분히 낼 수 있을까. 일하는 동안 반려동물이 쓸쓸하게 시간을 버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무거워진다. 조금만 여유가 된다면 1분1초를 함께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 살아가는 리듬을 맞춰보고 싶다.
# 일의 성공이 아니라 삶의 만족을 측정하는 나만의 기준
사실 성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를 부러워한 적도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성취가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지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행복만 느끼며 살 것 같았던 사람들도 스스로 잘못 살아온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성공을 쫓기보다 하루하루의 충만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어떤 순간에 만족감을 느끼는지,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내 삶의 중요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생을 완전해야 한다는 성공보다 자잘하고 사소한 것에서 일시적인 만족을 자주 느끼는 것도 과정으로서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어떤 순간이냐면... 자연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같기도 하다. 너무 내면에만 몰두하지 않고 세상에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여유. 생각에 사로잡힌 채 걸을 때는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똑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날은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는 순간도 있다. 그런 날에는 이유 없이 마음도 평화롭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집으로 오는 길에 바닥을 보면 지렁이가 종종 보인다. 어떤 날은 '지렁이군'하고 그냥 무심하게 넘어가기도 하는데, 어제는 나뭇가지인가 지렁이인가 주의깊게 보다가 "오 촉촉해 보이는데? 좀 큰 것 같기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고로 어제는 여유와 만족을 했던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삶의 만족은 타인과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유지하는 상태같다. 내 고민에만 빠져 있을 때는 책을 읽어도 내용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데, 마음이 가벼운 날에는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과 그 속에서 조금씩 배우고 느끼는 과정. 그게 내 만족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원하는 삶의 리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는 또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요즘, 혹은 지금도 꽤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하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관심도 꾸준하게 이어가고, 취미 생활도 즐기고 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배우기도 한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거나 막연한 답답함이 들러붙는 날도 있지만, 그것도 건강한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트레스는 생기지만, 그건 멈춤에서 오는 답답함이고 지금의 스트레스는 변화를 향한 긴장감이니까. 여전히 움직이고 있으니까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된 것일까. 아마도 내가 세운 방향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인 것 같다. 매 시기마다 목표는 달라지지만 최근 들어 가장 중점적으로 두고 있는 건 '감각을 잘 느끼는 삶'이다. 그래서 매일 감각을 깨우거나 찾는 루틴을 하고, 그 순간의 생각도 주절거리며, 필사를 통하여 시야를 확장하는 연습도 하고 있다. 그렇다 살다보니 생각하지 않았다면 놓쳤을 사소한 아름다움과 다정함들도 포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게 나에게 잘 살고 있다는 감각의 근거다. 물론 더 나아질 여지는 많겠지만 내 방향으로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1cm라도 이동 했으면 걸은 건 걸은 거겠지.
# 자립 이후에도 나는 어떤 문장으로 나를 소개하고 싶을까
(“나는 00하는 사람이다.”)
어떤 문장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으려나. 나는 감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성장하는 사람이다, 나는 방황하는 사람이다, 나는 충만한 사람이다.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동시에 너무 예시에 매몰되고 싶지는 않다. 질문 템플릿의 장점은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생각을 한정시킬 위험도 있다는 것.
1차 홀로서기에 썼던 문장은 '나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타인의 성장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였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에 남는 문장이지만, '성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모호하다. 그래서 2차 홀로서기에서는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는 더 구체적으로 탐구해봐야 할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내 삶에서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다. 그렇지만 그 폭이 여전히 한정되어 있어서 그 울타리를 조금 더 넓혀야 할 것 같다. 아니 깊이를 파야할 것 같기도. 아직도 표면적인 교류에 그치는 것 같아서. 나와 타인, 세상의 선순환을 잘 연결하는 방식에 대해 더 탐구할 필요가 있겠다.
지금은 명확한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는데, 어쩌면 그것 자체가 가장 잘 설명해주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이 블로그를 만들때부터 썼던 '방황'이라는 키워드. '나는 여전히 자신을 정의하는 중인 사람이다'. 완성되지 않아서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 곧 삶이니까. 어쩌면 죽을 때까지 정의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는데 이제는 그래도 괜찮은 것 같다. 굳이 정의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면 수많은 정의를 내려봐도 괜찮을 것 같고.
아 길다, 요약
# 흐름
- 왜 자립인가?
- 자립은 도망/탐험이 뒤섞인 감정이지만 본질은 나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실험이다.
- 조직의 인정이 진짜 내 실력인지, 아니면 조직의 효용인지 확인하고 싶다. 무가치하다는 두려움을 마주하기 위한 시도.
- 조직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 얻었다 : 사회성, 문제해결력, 다양한 기술과 협업 경험, 신뢰해주는 리더와 동료, 생활의 리듬
- 잃음 : 내 흔적을 외부에 드러내기 어려움, 조직 확장으로 책임 분산과 문화적 피로, 점점 커지는 역할로 인한 불안과 조심스러움
- 일의 정체성
- 가장 몰입한 것은 제로투원으로 스스로 라이브하고 운영까지 담당했을 때
- 예쁜 UI보다 경험 설계와 사고의 과정을 중시한다. 하고 싶은 본질은 사람에게 남는 경험.
- 불안과 태도
- 불안 : 돈, 실패, 커리어, 정체성(아무것도 아닐까), 관계(끊길까)
- 신체/행동 신호 : 두근거힘, 회피 수면/침묵 <-> 글쓰기와 독서로 반작용
- 전략 : 완전한 독립보다 병행으로 작은 실험부터 하기, 속도보다는 방향 맞추기
- 소속 및 함께
- 소속은 사람과 의미 공유가 맞물릴 때 생긴다.
- 이상적인 협업은 탑다운과 폭포수가 아니라 공동 기획, 공동 오너십. 1+1=2+@라는 시너지를 내는 팀.
- 원하는 삶의 형태
- 안정된 수입을 기반으로 의미 있는 창작 및 서비스를 병행하는 것 (정량 : 패시브인컴, 정성 : 대면 교류)
- 공방과 북카페는 느슨한 연결을 만드는 실험적인 공간으로 생각한다. 부업 개념.
- 세상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살아있는 상태와 감각이 삶의 만족 기준으로 생각 중.
- 자립의 정의
- 고정된 정의보다는 '여전히 자신을 정의하는 중인 사람'이라는 과정으로 마무리.
- 1차 웨이브의 문장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타인의 성장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 -> 2차 웨이브의 문장은 '어떻게'의 구체화가 과제.
# 조직에서 얻고 있는 것
- 안정된 수입과 현실적인 안전망
- 매달 일정한 급여가 들어오고, 의료/보험/복지 제도가 있어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다.
- 이 안정감 덕분에 실질적인 걱정이 줄고, 생각과 시도에 에너지를 쓸 수 있다.
- 학습과 성장의 구조
- 프로젝트 단위로 돌아가는 업무 구조 속에서 꾸준히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 피드백, 협업, 리더십 실험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고가 단단해질 수 있다.
- 동료와의 자극과 교류
-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 혼자였다면 닿기 어려운 시야와 감정을 배우게 된다.
- 리더십과 책임감 훈련의 장
- 팀을 이끌거나 조율하는 경험을 통해 관계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책임감의 무게를 몸으로 익힌다.
- 루틴과 리듬의 안정성
- 일정한 출근 시간과 팀 단위의 주기적인 흐름이 스스로를 지탱해 줄 수 있다.
- 타인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완전히 멈출 수 없는 구조로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다.
# 조직에서 잃을 수 있는 것
- 일의 속도와 방향을 스스로 정할 자유
- 일의 순서와 방식이 조직의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완전한 자기 다움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 사고와 리듬이 구조에 종속될 수 있다.
- 감각의 여백과 몰입의 시간
- 속도와 효율 중심의 환경 속에서는 느림과 감각을 경험하기 어려울 수 있다. -> 의지의 차이일수도
- 머리로는 성장하지만 몸과 마음은 점점 피로해지고, 일의 본질적인 즐거움이 희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 사람보다 시스템을 우선시 하게 되는 태도
- 업무 중심의 평가와 리뷰를 반복하다 보면, 사람의 감정보다 산출물과 효율에 집중하게 된다.
- 관계가 단단해지기보다는 기능적으로만 남을 가능성 있다. -> 그렇다고 이게 자립의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 내면적 리듬의 왜곡
- 해야 할 일과 잘 보이기 위한 일 사이에서 중심이 흔들린다.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 내 기준보다 외부의 평가에 더 민감해지고, 의미 있는 일보다 즉각적인 결과를 선택할 때가 많아진다.
- 의존에 대한 불안
- 회사라는 구조 안에서 주어지는 리듬와 안정감에 익숙해지면서 의존하게 된다.
- 나중에 이 구조를 벗어나야 할 때 혼자서도 설 수 있을지, 스스로의 힘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늘 남는다.
# 자립 후의 걱정
- 관계의 단절과 사회적 고립
- 회사라는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유지되던 관계는, 조직을 떠나는 순간 노력의 결과물이 되어야 한다.
- 자발적인 연락과 만님 없이는 관계가 쉽게 멀어진다. 그 유지를 위해 계속 에너지를 써야 한다.
- 정체성의 불안
- 자립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면 또 다른 공허함이 밀려올 것 같다.
- 지금의 조직이 가치와 문화 면에서 가장 잘 맞는 곳이라, 결국 그 시절이 가장 이상적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할까 걱정된다. -> 그럼 어떤가. 결과를 알았으니
- 경제적 불안정
- 자립이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은 아니겠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다는 사실이 주는 압박이 있다.
- 갑작스러운 병원비나 생활비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비가 어렵다.
- 대출이나 사회적 신용 같은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불안이 따른다.
- 리듬 상실과 무기력에 대한 두려움
- 출근과 일정이 어느 정도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준다. 자립 이후에는 온전히 스스로 설계하며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 생산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존재감이 약해지는 감각이 생길까봐 걱정된다.
- 현실과 이상의 괴리
- 자립의 이유를 의미 있는 일로만 정의하면 오히려 그 의미가 스스로를 옭아맬 수 있다.
- 평생 의미 있고 지속 가능한 일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고, 잠시의 회의나 흔들림도 실패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목표 기간 : 27년 4월 (1년 6개월)
TO DO
조직 안에서 배움과 자립의 실험을 병행하면서 점진적으로 독립 기반을 다져간다.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겠지만 계속해서 되뇌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실행하게 되는 것 같으므로 비슷한 고민이 될 때마다 주기적으로 보자.
1) 내적 기반 다지기 - 정체성과 리듬 유지
Why :
- 자립은 '돈 버는 기술'보다 '나를 잃지 않는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스스로의 가치관, 리듬, 사고를 안정적으로 세우지 않으면 어떤 실험도 지속되지 않는다.
Value :
- 흔들리지 않는 중심과 사유의 리듬을 회복한다.
- 나다운 자립의 형태를 구체화할 수 있다.
- 생각이 '불안한 욕망'이 아니라 '확신 있는 탐색'으로 바뀐다.
How
- 자립 일기 매일 작성 및 주간 루틴 점검
- 정체성 문장 업데이트 -> "나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는가"
- 자립인 N명을 탐구하며 시작 배경/리스크 대응/성공 기준을 비교한다.
- 창업/사업/1인기업 관련 책 20권을 읽고 사고의 프레임과 언어를 확장한다.
2) 실험 기반 만들기 - 작은 사립의 씨앗
Why :
- 거대한 도약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도 병행하며 가능성을 검증해본다. 완벽히 준비된 뒤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역량과 환경 속에서 작게 실행해보는 것이 진짜 실험이다.
Value :
- 현실 감각을 유지한 채 자립 가능성을 검증한다.
- 아이디어가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를 체험한다.
- 외부에서도 스스로 실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보한다.
How
- AI 학습을 꾸준히 이어가며, 자립 시대의 도구로서 활용 가능성을 탐색한다.
- AI, 노코드 툴로 작은 온라인 서비스나 콘텐츠를 만들어 실제 결제와 운영을 실험한다.
- 디지털 상품을 제작하여 판매한다.
- 초라한 자립 과정과 시행착오를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운영해본다. -> 프로세스 이코노미 실현, 실험의 연속성 확보
- 지인 대상으로 원데이클래스를 시범적으로 운영한다. (소규모 테스트)
3) 외부 연결 확장 - 관계 확장과 배움의 교류
Why :
- 자립은 고립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의 재구성이다. 혼자보다 함께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지속적인 동력이 생긴다.
Value :
- 자립 이후에도 이어질 관계의 안전망을 구축한다.
- 협업과 교류를 통해 배움과 기회를 확장한다.
- 사람을 통해 성장의 거울을 얻는다.
How
- 개인 사업 및 1인 기업 네트워크에 참여해 타인의 자립 여정을 탐구하고, 내 자립 방향에 인사이트를 얻는다.
- 회사 밖 정기 소모임(독서·글쓰기·자립 스터디 등)을 운영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든다.
4) 현실 기반 다지기 - 생활력과 물리적 기반 확장
Why :
- 정신적 독립만으로는 자립이 유지되기 어렵다. 물리적, 경제적 기반을 스스로 구축해야 지속 가능한 생활력이 생긴다.
Value :
- 삶의 자율성과 이동성을 높인다.
- 물리적 공간과 자산을 통해 자립의 현실 기반을 확보한다.
- 생계 걱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How
- 운전을 배워 이동의 자유와 외부 활동 반경을 넓힌다.
- 공방 및 부동산을 리서치하며 임대 구조와 창업의 현실을 파악한다.
- 원데이클래스를 정기적으로 참여해 실제 운영자의 경험을 체득한다.
- 투자와 재테크를 학습해 자립 자금의 안전망을 구축한다.
5) 조직 내 실험 - 시스템 안에서의 리더십 증명
Why :
- 자립은 퇴사 이후의 일이 아니다. 도망치듯 떠나는 것이 아닌, 할 수 있는 만큼 해본 후의 후련함을 가지는 상태를 만든다. 한계를 실험하고 리더십과 실행력을 검증한다.
Value :
- 회피가 아닌 완결의 마음으로 자립을 맞이할 수 있다.
- 자립 후에도 활용 가능한 실무 감각과 신뢰 자산을 남긴다.
-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사람들과 협력하는지를 명확히 체화한다.
How
- AI를 활용해 주요한 성과/역량 리뷰 프로세스를 구축한다.
- AI 기반 문제 정의 및 디벨롭 구조를 설계해 사고력과 실행 체계를 확립한다.
- 팀 아티클/블로그를 운영하며 일하는 방식을 언어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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