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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1주저리. 나의 매트릭스

점점이녕 2025. 10. 9. 22:15

 

추석 연휴를 빌려서 매트릭스를 몰아보았다. 4까지 나온 줄은 몰랐다. 2탄인 리로리드와 3탄인 레볼루션 이야기까지 접했다. 4탄은 망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흥미가 생길 때까지 패스. 긴 호흡의 콘텐츠를 못 보는 병에 걸렸는지 영화 보는 것도 어려워했지만, 지금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황과 빨간약, 파란약에 대한 고민이 맞물려서 중간에 휴식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몰입해서 본 것 같다.

 

# 설명하지 않아도

쓰려져도 계속 일어나서 달려드는 네오에게 스미스는 이야기한다. 왜 쓸데 없는 것에 목숨을 거느냐고, 사랑과 평화는 무의미한 인간들이 존재의 합리를 위하여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하다고. 그냥 막연하게 네오가 사랑과 평화가 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네오는 '그것이 내 선택이다'라는 말로 일축하며 다시 스미스에게 달려든다. 설명조차 필요없는 선택과 행동이 멋있게 느껴졌다.

 

나는 항상 이유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서. 누가 들어도 합리적으로 들릴만한 근거를 찾기 위하여 고민했지만 답은 없었다. 그렇게 많은 선택과 판단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어가지 않았을까. 물론 현재도 수많은 선택들의 결과이며 그 선택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시기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도 하고 나름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많은 선택의 길에 섰을 때 조금은 마음이 가는대로 걸어가보자도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것들을 얻지 못하더라도 망한 인생은 아닐 것이라고.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못해도 소소하게 즐기면서 사는 삶도 충만할 것이라고.

 

 

# 무례한 판단

마지막에 네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랑하는 트리니티를 잃고 시온을 구한 것에 만족을 했을까. 사실 이 부분에서도 아이러니함은 있었다. 한 쪽 문을 열면 건물에서 떨어지고 있는 트리니티를 구할 수 있고, 다른 쪽 문을 열면 시온이라는 공동체를 구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네오는 망설임 없이 트리니티를 구하러 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트리니티는 죽었고, 네오는 트리니티의 뜻을 이어받고 시온을 구한다. 센티넬과의 싸움에서 돔은 무너지고 많은 시온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래도 여전이 남은 시온 생명이 있으니 구했다고 일단은 적어본다.

 

그러다가 양쪽 문에서 고민할 때 시온을 선택했다면 더 많은 시온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네오의 선택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센티넬과의 싸움도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고 함부로 판단한 생각인 것 같다. 네오는 그 선택으로 조금 더 트리니티와의 사랑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었고 시온을 구해야겠다는 마음이 충만해졌을 수도 있다. 시온도 적과의 싸움으로 조금 더 공동체의 결집과 자신들의 사명을 공고히 했을 수도 있고. 그리고 배양되고 있던 인간들도 자유를 갖게 될 것이다.

 

아마 죽어도 네오의 고민과 결정, 사랑에 대한 마음, 인류애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의 선택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일지 그저 느낄 뿐. 보통의 삶에서도 특정 시기의 결과만 보고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끊임없는 고민과 함께한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한데, 그 고민의 깊이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례한 판단을 하게 될 수 있는지 유의하자.

 

 

# 안정과 불안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역시 평화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한편 굳이 왜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 영화를 보고 있을까 고민도 됐다. 평화와 안정이 좋으면 자연이 자라나는 다큐를 보면 되는 것이 아닐까. 콘텐츠에서는 평화가 지속되면서 희망이 보이는 와중에 중간중간 빌런들이 나타나서 희망을 앗아가버린다. 분명 아름다운 결말이 그려졌는데 까만 크레파스로 휘갈긴 느낌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속적으로 행복과 불안을 오가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닐까. 너무 좋다가도 갑작스럽게 불안이 느껴지고 공허함이 드는 것, 그러다 다시 사소한 행복이 느껴지고 괜찮아지는 것. 그렇게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 불편한 감정이 싫어도 생각하게 만드는 콘텐츠를 보는 이 행위 자체도 그런 프로그래밍의 일환이 아닌가 싶었다. 

 

인간 탄생의 이유를 알 수 있겠냐만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 상 앞으로도 감정의 등락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인 것 같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길 수 방향으로 고민해보자. 불안을 어떻게 즐겨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피하려고 스트레스 받지는 말고 긍정적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시도해보자. 예술이 됐든 뭐가 됐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답이 없는 고민을 예술적으로 승화했기 때문에 매트릭스와 같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산출물이 있지만 그 고민의 깊이에 따라서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분명 다르다. 나도 나만의 알맹이를 잘 찾을 수 있도록 고민과 그때그때의 선택을 소홀히 하지 말자.

 

 

# 그럼에도 빨간약

빨간약과 파란약. 매트릭스를 보지 않아도 수많은 책에서 인용된 선택지다. 행복한 가상과 불행도 있는 현실 사이의 선택의 기로. 불행한 현실로 적으려고 했다가 전쟁도 있고 환경이 열악하다고 하여 불행은 아니기 때문에 불행도 있는 현실이라고 바꾸어 적어보았다. 분명 그러한 상황에서도 많은 존재들이 사랑을 하고 서로를 위했으니까. 여하튼 '통속의 뇌',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등과 같은 표현으로 많은 고민에 빠지게 하는 이 약은, 단순한 쾌락과 인간의 복잡한 사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는 묻는다면 대부분 행복이라고 답을 할 것이다. 그만큼 살아가는 데 행복은 중요한 요소다.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고. 당연히 앞에 행복과 불행이 놓인다면 행복을 선택하지 않을까. 일부로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싶다. 그리고 만약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게 돼지이든, 통 속의 뇌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스스로 돼지라는 것과 뇌만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매트릭스에서도 가상의 매트릭스를 물리치려는 동료들을 배신하고 죽이는 빌런들이 나온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는 물음에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답을 한다. 과연 빌런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고통과 불안에서 발버둥치고 행복해지려고 하는 모습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물론 동료들을 죽음에 처하게 한 행동은 명백한 잘못이었지만.

 

뇌만 따로 떼네어 쾌락만 느끼도록 자극되어 살아가는 것. 대학생 시절 이 주제에 대하여 강의를 들었던 기억도 난다. 치기어린 그 시절에는 '고통도 느껴야 진정한 인간이지, 뇌만 달랑 있는 것이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쾌락만 쫓으며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는 선택이 한심하게 느껴졌던 시기다. 지금도 여전히 빨간약을 바라보고 있긴 한데 그 고민과 이유는 조금 달라졌다. 조금 더 선택 앞에서 망설일 것 같고, 그럼에도 빨간약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게 인간으로서 필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택했다기 보다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할까.

 

이것도 답이 있는 고민은 아니다. 일상과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와 행복을 찾아보는 것도 결국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오롯이 불안과 고통, 슬픔을 뜻있게 직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보통은 회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야. 부정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계속 잠겨있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그래도 나아질 것이고, 나아졌다고 해서 그게 평생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영원한 것은 없으니 일희일비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행복도 언젠가 흐려질 수 있고, 그렇다면 고통과 불행도 흐려질 수 있다는 것. 그 복잡하고 다채로운 것들을 잘 다루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나의 다름대로 감각해야 한다는 것.

 

 

https://youtu.be/MprOuBxildo?si=xF9C_5DXDnEmTOpc

 

'나는 언제까지고 너를 위한 종장을 쓰겠다고' 우연히 이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있는데 제목이 와닿는다. 나의 종장을 나는 어떻게 쓰게될까. 너무 미래와 결론으로 생각하지 말고 어쩌면 하루하루 종장을 쓰듯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늘의 종장은 '좋은 휴식'이다.

 

생각해보니 모두는 각자의 매트릭스 속에서 살고 있는 듯 하다. 가치관과 신념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 그 가상의 공간. 환경은 같아서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옳고 그름은 이제 모르겠다. 그냥 내 매트릭스만 잘 가꿔보면서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