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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확장하기/활동

앨리스달튼 브라운 회고전

by 점점이녕 2025. 9. 7.

 

 

회사 동료들과 앨리스달튼 브라운 회고전에 다녀왔다. 이전부터 평이 좋던 전시회라고 기대를 하고 갔다. 너무 기대를 하면 실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엄청난 기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전시회에서 느낀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눈 것과 작품에 관한 설명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대화를 모두 포함한 하루로서 좋은 경험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을 키워드로 적어보자면, 조형의 미, 건물, 사일로, 소, 커튼, 호수, 빛, 물, 자연, 감각, 그림자, 각도, 설계 등.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을 수 없는 단어인 것 같다. 그만큼 다양한 작품과 해석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항상 느끼지만 보통 한 작가는 특별한 화풍으로 인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는데, 막상 그들의 삶이 기록된 장소에 가면 처음부터 예술 철학이 뚜렷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다양한 사조를 차용하여 따라한 그림들, 작품만 보았을 때 맥락을 뚜렷하게 느낄 수 없는 변화 등. 그들도 역시 사람이었던 것이다. 많은 것들을 모방하고 자기만의 색상을 조금씩 덧붙여 가기도 하면서,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고 살아가면서 접하는 사건들과 관계에서의 영감들이 새로운 모티브를 만들게 해준다. 그것이 우연적인 사건이든 의도적인 사건이든 그렇게 지금 이 시기의 작가를 구성하게 되는 것 같다.

 

 

 

확실히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전시회도 더 의미있게 감각할 수 있는 것 같다. 작품만 보았을 때는 사진처럼 느껴져서, 그럴바에 사진을 찍으면 되지 왜 그림을 그릴까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가 같다고 하여 과정이 같을 수는 없다.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며 색상을 선택하고, 조합하고, 구도를 잡고, 방울 하나하나를 그려나갔는지는 사실 절대 모를 일이지만, 그게 의미 없다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음일 맞게 되지만 그런다고 생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그리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탈피한 허물들이 또 다른 존재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깨달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마음이 가는대로 그렸다고 예상한 그림들은 그림자의 위치까지 철저하게 분석되고 구조화되어서 표현되었다. 비율, 위치, 느낌 등 뭐 하나 대충인 것이 없었다. 내가 그림을 막 그렸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되었던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을까. 여전히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지만 아이를 키우고, 사회적인 제약이 있었던 환경에서도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욕망과 행동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영광의 산물일 듯 하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의 연대기였다. 주의를 끌었던 것은 9.11 테러로 인하여 평화와 상실로 물과 호수를 주요 모티브로 삼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전까지는 평화로운 호수와 부드러운 커튼이 그려진 그림이 심적인 위안과 휴식을 주는 그림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저 내용을 보니 빈 여백에서, 그러나 약간의 역동에서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9.11 추모 공원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인공 폭포가 있다고 한다. 어디서 보았는데 365일 마르지 않는 폭포는 잊을 수 없는 희생자들의 눈물을 상징한다고 했다. 단순히 몇 문장으로 소개된 철학을 넘어서 작가에게 물이 주는 의미는 얼마나 넓고 깊을까. 

 

 

 

물과 빛을 빼놓고 앨리스의 작품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그녀에게 물과 빛은 중요한 주제이자 상징입니다. 한결 같은 주제지만 작가가 펼쳐보이는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놀랍도록 늘 새롭고 다채로운 풍경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변화하는 물과 빛이 가진 그 속성 때문에 때로는 작가조차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그려 내기도 합니다. 커튼을 그러한 물과 빛에 신비감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반쯤 감춰진 그 무언가를 상징합니다.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과 그 위로 부서져 내리는 반짝이는 햇빛, 그리고 하늘거리는 커튼이 어우러진 고요한 풍경이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에서 카뮈는 바다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열정적으로 흐르는 물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지금 보는 물은 이전의 물과 다르지만, 물 자체의 본질적인 속성이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인간의 삶 또한 그렇다고. 놀랍도록 늘 새롭고 다채로운 풍경, 그러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 것. 나에게는 그러한 것이 무엇일까 잠깐 생각해보았다. 의미 부여를 좋아하지만 막상 생각을 물으면 확고하게 답을 할 수는 없는데, 지금의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인 것 같다. 햇빛의 강도, 내리쬐는 빛의 향현, 점점이 퍼지는 구름, 시간에 따라 바뀌는 색상. 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매일 새로움을 주는 것. 때로는 즐거움과 행복, 때로는 고독을 주는 것. 순식간에 마음의 날씨를 바꿔버리는 대상은 하늘인 것 같다. 

 

어쩌면 무의식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하루 루틴을 기록할 때 아침과 저녁 일기로 하늘을 촬영하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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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나는 어떤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아닌 존재는 같은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같은 공간, 다른 세상. 나만의 예술 작품은 무엇?

 

 

 

달튼의 작업실. 공간이 주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독립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공간의 분리가 아니라 정신과 가능성 측면에서의 도전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세상과 나의 관계에서의 확장이 아닐까.

 

 

 

감정과 시간의 흐름을 느낄 시간을 갖는 것. 

 

 


 

 

전시회를 보고 동료들은 굿즈를 많이 샀다. 근처 음식점에 가서 가볍게 저녁을 먹고, 2차로 하이볼을 마셨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면서 또 각자의 또 다른 예술적인 삶을 접할 수 있었다. 꼭 캔버스와 물감으로 그려야만 예술 작품은 아니니까. 각자의 고민, 경험, 취미, 생각도 하나의 예술일 테니까. 오늘 아침에도 독서 모임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평소에 접할 수 없는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접했으며, 부족한 나의 모습도 드러내면서 교류를 했다. 너무 자신감이 없는 모습으로 비춰질까 걱정은 됐지만 그런 모습도 내 모습이니까 사랑해주기로 했다. 충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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