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확장하기/활동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 매일이 휴가

by 점점이녕 2025. 7. 5.

 

 

오전에 힐링 요가를 끝내고 고민하다가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전시를 보러 갔다.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시립사진미술관 등 다양한 선택지를 고민했는데, 결국 오늘은 그나마 가까운 잠실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가기로 했다. 귀차니즘의 한계... 가는 길에 아보카도 샐러드(?)도 먹으면서 나름 건강을 챙겼다. 전시회는 MUSIUM 209라는 곳에서 열렸다. 호텔 3층이라고 하는데, 입구가 복잡해서 한참을 헤매고 결국 들어갔던 것 같다. 

그렇게 맛있는 것은 아니었고 배는 채웠다. 아보카도가 들어간 브랜드였는데 기억은 안 난다.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전시회가 끌렸던 것은 '매일이 휴가'라는 주제에서 평범한 일상에서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감각을 쌓기 위하여 다양한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실제로 새로운 환경을 많이 접하기는 하지만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하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새로움' 자체에 강박을 느끼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결국 현재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기에 종종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풍부한 물감을 뿌려볼 수는 있겠지만, 그 기반이 되는 캔버스에서도 나만의 평범하지만 만족스러운 리듬을 유지하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에서 배울 것은 항상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키우고 싶은 것은 외부 환경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는 사람이 되자는 것. 그런 태도를 갖추는 것. 

 

사실 전시회 자체는 제대로 감상한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너무 사진만 찰칵거리며 찍고 돌아다녀서 이 사람들은 전시를 무슨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는 것인지 속으로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그들이 각자의 돈을 내고 입장한 것이기에 어떻게 감상하든 상관을 하면 안되겠지만 시청각적인 측면에서 방해를 받아서 불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돈과 시간을 투자한 경험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느꼈던 것을 기록해 두려고 한다. 이전에 바쁘다는 핑계로 경험을 흘려 보냈던 것 같은데, 앞으로는 한 줄이라고 적어보는 것을 목표로 하자. 적어보자는 생각을 한다면 한 번이라고 생각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들어가자마자 시원한 바다들이 맞이해 준다. 전시는 여름, 겨울, 봄의 계절을 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작가는 바다를 낙원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바다, 두 사람, 연인, 평온, 고요. 자연 속에서 인간은 굉장히 작은 요소로 묘사된다. 돌, 파도, 물, 깊이, 꽃, 야자수, 파라솔, 매트. 작은 사람들을 둘러 싸고 있는 수많은 오브젝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상 특이했던 것은 물감을 겹겹이 쌓아서 입체감 있게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사람과, 파도와, 돌멩이, 꽃들이 튀어나올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튀어 나와 있다.) 

 

 

 

고요한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소란스러운 환경을 뒤로 하고, 고요하게 누워서 떠다니는 것. 작품 해설에는 '온전한 존재'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필요 없이 두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만족스러운 삶이라는 것. 삶에서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는 면모가 작품에 잘 드러난 것 같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서는 살짝 불편한 감정도 생겼던 것 같다. 작품 어디에도 사람들은 홀로 등장하지 않는다. 최소 두 사람이 등장한다. 연인과 사랑, 가족 등 관계는 삶에서 너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니 홀로 존재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있어야만 일상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석될 수 있을까봐. 

 

 

 

꽤 다양한 피사체가 뚜렷하게 존재하지만 마음에 끌렸던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작품들만 촬영을 해 보았다. 사실 많은 작품들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에는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품 해설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그림을 만족스럽게 여러번 그리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도 즐거움을 느끼고, 풍부한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일반적인 사고와는 다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생각과 느낌을 그리고 있다는 자체, 지금 느끼는 색상을 캔버스에 표시하는 것, 나만이 알아챌 수 있는 디테일한 차이, 같은 하루를 반복하면서도 잘 살펴보면 새로운 감각을 발견할 수 있다는 태도. 비슷한 작품 속에서 시지프의 신화가 떠올랐다. 매번 큰 바위를 정상에 굴려 올리지만 정상에 오르는 순간 바위는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 또 다시 바위를 굴러 올려야하는 벌을 받은 시지프. 하지만 그 벌을 피하지 않고 돌을 어떻게 굴릴 것인지, 때로는 어느 부위에 힘을 더 쓰며 근육을 팽배하게 만들고, 발의 보폭을 다르게 하고, 돌을 굴린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지만 어떻게 굴릴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작가의 낙원과 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의 낙원은 무엇일까. 바다, 강. 이 물들은 <여름, 결혼>에서도, <싯다르타>에서도 삶의 진면목으로서 많이 등장한다. 위에서 아래로 흘러서 이전의 물이란 결코 잡을 수 없지만, 물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아직 하나의 대상으로 비유할 수는 없지만 오늘도 나만의 물살을 탄 것 같기는 하다.

 

 

겨울 편. 중간에 넘어진 사람이 깨알같이 귀여웠다. 어느 코스를 타면서 넘어졌는지 그 자취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넘어진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은 엄청난 고수여서 굉장한 자세를 잡고 타는 모습은 아니겠지?

 

 


 

그러는 한편 결국 '휴가'라는 모습의 틀이 있는 것 같았다. 보통 일은 피하고 싶고, 너무 내 시간을 빼앗기면 안되는 것으로 설명되곤 하고, 그 와중에 휴가는 나만의 시간으로써 지켜야 하는 것처럼 일과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사실 삶에서 일은 중요하기도 하고, 거의 대부분 피할 수 없는데, 일하는 일상에서도 휴가를 느낄 수는 없는 것일까.

 

오늘 정리되지 않은 업무가 있어서 주말에 하려고 했는데, 왠지 리프레시를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어쩌면 꾸역꾸역 전시회를 찾아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일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뭔가 재미없는 삶처럼 느껴질까봐. 하지만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배우는 것도 많지만, 동료들에게 인간적으로 배우는 것도 많다. 그리도 회사 생활을 나름 좋아하고,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약간은 거리를 두려고 했다. 아직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답을 정해두지는 말자. 그냥 누군가가 일에서의 행복과 만족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어주었으면하고 잠깐 생각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일이라고 했을 때 이 작품 자체도 즐거운 일이지 않을까.

'세계 확장하기 > 활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위뉴타운 임장  (7) 2025.08.31
팔도밥상페어  (8) 2025.07.05
스퀘어 오브 토스  (0) 2025.03.03
유기견 봉사  (0) 2025.01.24
독서 모임 그리고 행복 만들기  (0) 2024.07.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