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졸한 자기 발견
요즘 너무 바쁘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서 생각해보니 스스로 메타인지가 너무 부족했나 싶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양을 가늠하지 못하고 너무 일을 벌려 놓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아티클 제출일은 일주일을 연기했지만 이틀이 남은 지금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이고, 같은 날에 예정되어 있는 스터디 준비도 하지 못했다. 남은 시간은 오늘 저녁과 내일. 빠르게 전달하면 여유로워 질 것 같았던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추가 정리해야 할 일이 생겼고, 독서 모임도 열심히 참여해야겠다는 욕심으로 매주 신청을 해두어서 책도 읽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적절한 시간을 배분해서 달성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성취와 보람을 느낄테지만 여러마리 토끼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스트레스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로 이어지고 다소 적합하지 않은 감정이 싹튼 것이다.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행동들에 대해 너무 신경이 쓰였고, 기분이 다운되었다. 내가 과연 이런 루즈한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지, 계속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내 탓인지 등등 해결을 할 수 있는 부분인지 아닌지에 관한 답이 없는 생각들로 인하여 다소 쳐진 것 같다. 그래도 남들에게 내로남불을 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방식도 취해보았지만 딱히 효과는 없는 듯 하다. 누군가는 편하게 다니는데 왜 스스로 강박을 느끼는 것인지 무의미한 비교를 하면서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당연히 리더로서 모범을 보여야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렇게 처우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님에도 왜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지 잘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냥 스스로 족쇄를 찬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충하기는 싫다. 나도 왜 이런 감정을 겪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타인과 비교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끊어지질 않는다.
객관적으로 생각하자. 아무도 나에게 아티클을 기고하라거나 스터디를 열심히 하라고나, 독서모임에 참여하라거나, 항상 모범이 되라며 강박을 느끼도록 만들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환경과 행동, 생각들로 인하여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바닥에 놓인 화살을 들어서 가슴에 찌르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중력이 왜 이렇게 무겁냐며 한탄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이 있다며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자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그 자체를 받아들이자고 했으면서 계속 편협한 사고로 돌아가는 것은 아직도 내 정신은 옹졸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 다른 사람들이 주는 긍정적인 분위기에 눈을 감고 내 안에 있는 까만 압박을 바깥으로 투영한 것 같다. 매우 비상식적이고 옹졸하고 편협하고 불쌍한 사고 방식이다.
세상에는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으며, 소중하게 여기거나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 어느 누구도 하나의 삶 만을 답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아마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왜 저렇게 살까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얼마나 노력해야 순수하게 다른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남을 바꿀 수도 없고 바꿔서도 안된다. 물론 어떠한 환경이 있고, 그 환경에 있기를 선택했다면 함께 있는 환경에 적합한 태도와 방식에 대하여 제시는 해 주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도 있으니까. 오히려 잘못된 것을 본체만체 하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사실 길에 걸어다가 스쳐지나가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살든 신경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니까 조금 힘든 것 같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도 신경을 쓰는 것. 항상 그 밸런스가 어렵다. 중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가끔 이렇게 한 쪽으로 너무 쏠리는 경우가 나를 망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우리를 망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감정과 생각들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는 있다.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글자로 쓰고 있기도 하고. 내 기준을 타인에게 적용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공통의 환경에 적합한 적당한 수준의 방식을 계속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무 무관심하지도, 너무 관심을 갖지도 말고 적정한 수준을 지키자. 사람은 나름대로의 바운더리가 있기 때문에 넘지 않도록 조심하자. 만약 너무 결이 다르다고 판단되면 그냥 맞는 환경에 갈 수 있도록 도와는 주자. 어쩌면 그게 내가 될 수도 있겠고.
그래도 기분이 조금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안다. 지금 이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것을 알고 있다. 또 성찰을 하다보면 주변 사람들로 인하여 내가 얼마나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날 것도 안다. 어쩌면 오늘의 생각을 하게 된 것 자체도 더 나은 내가 되는 과정 중 하나일 수 있다. 태어나면서 이해력을 갖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해심이 부족하게 태어난다면 이해를 고민하고 늘릴 시간은 분명히 가져야 하니까. 또 생각해보면 육체나 정신적인 고통이 아니라 이런 별것도 아닌 일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행복한 일일 수 있다. 배도 부르고 따뜻하게 잘 수 있는 장소도 있으니까 사소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우주의 먼지이기 때문에 우주의 먼지의 머리에 있는 미세 먼지 같은 생각에 너무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머리의 먼지 청소하기! 또 다시 생각해보니까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을 생각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다 ^^... 옹졸한 자신을 다시금 발견해볼 수 있을 시간이어서 감사하다...
두 번째 회고
퇴근 하기 전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 집에 가는 길에 두 번째 감정 회고를 했다. 스스로 바쁨을 만들었으면서 다른 사람의 여유를 보고 불만을 가졌던 것 같다. 언제쯤 정신이 성숙해질 수 있을까. 감정 쓰레기통 같은 글을 싫어하지만 오늘은 다른 주제에 잘 집중이 되질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쓰게 되었다. 그래도 미숙함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괜히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말자. 오늘은 정말 창피한 날이다.
계속 생각해보면 이 글이 감정 쓰레기통 같은 글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 글을 적으면서 기분은 괜찮아졌다. 과하게 말하자면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부족한 정신을 알게 되어서 창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흡한 자기를 직면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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