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를 드디어 완독했다. 뭔가 혼란후련섭섭한 느낌이다. 무슨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는 의미다. 첫 시작은 주인공이 미모이드라는 존재에 대해서 어떤 대응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죽었던 존재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 행성에서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것을 알고 싶었던 이유는 죽은 강아지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다시 태어났다고 믿는 유튜버의 심리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 끝나도 솔라리스의 바다는 어떤 존재인지, 켈빈이 과연 어떤 마음을 먹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 정신은 여전히 솔라리스의 바다에 있는 듯 하다.
알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서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무언가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스스로도 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지 모르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서 사람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심지어 동물이나 곤충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보기는 했을까. 그저 지성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포용하고 받아들이기 보다 모욕하고 파괴하려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는 것도 납득이 간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학습되었을 수도 있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은 누구나 배우지만(이해한다는 것은 아님) 과거부터 싸움과 전쟁은 끊이질 않았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는 슬퍼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킨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소중했을 존재를 죽이는 것에서는 슬픔이 없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나. 내용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라이언이라는 일병 한 명을 구하기 위해서 다른 대원들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영화는 라이언 일병에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를 위해 희생된 목숨은 라이언 일병의 목숨보다 더 저렴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구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생명이 살아있었을 것이며, 그 대원들도 누군가에게는 라이언 일병처럼 소중했을 존재들이었을 텐데. 많이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라이언 일병이 내 가족이었다면 나는 누군가 구해주기를 바랐겠지.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서 독서를 했지만 결국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나도, 타인도, 세상의 사고 사건들도 사실 다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어쩌면 무언가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인간 중심적인 사고일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은 언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화 되지 않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이해했다고 하는 것들은 정말 이해가 된 것일까, 우리 기준으로 이해되었다고 생각되는 것들일까. 아마 후자이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의 의미를 모르겠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사람 자체가 좋다기 보다는 자신이 자신 이상향을 누군가에게 덧씌워서 환상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환상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 실망하게 되는 것이고. 꼭 사랑 뿐만일까. 어쩌면 책을 읽으면 삶이 더 다채로워 진다고 생각하는 것도 허상일 수 있다. 고작 책 몇 권 더 알고, 과거의 사람과 지식을 더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그러한 점에서 지적허영심에 대한 지적에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무의미론으로 들어가면 이 조차도 결국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냥 이해하기는 포기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자. 이해라는 것도 결국 내 기준에 맞추려는 이기심의 발로인 것 같다.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꾸려고 하는 것. 바뀌지 않으면 파괴하려고 하는 것. 이해를 다른 말로 하면 편협인 것 같다. 자기만의 바운더리를 구성하고 그 안에 속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 치부하는 것. 쉽지는 않겠지만 무언가를 납득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런 존재나 상태가 있다고 인지만 하고 넘어가도록 노력해보면 어떨까. 어차피 그 대상과 존재에게 나의 이해 따위는 필요가 없을테니.
아마 의식하지 않는 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여전히 길을 걸어가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시선이 가긴 한다. 형광색 머리카락, 특이한 옷차림, 걸음걸이 등. 상대방이 불쾌할 수 있으니 시선을 의도적으로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슬쩍 보게 되는 것 같다. 아마 ‘이해가 안 되기’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나의 이해에서는 머리카락은 검은색이어야 했으니. 한편, 회사에서도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불쾌했던 경험도 생각났다. 나이도 어린데 다짜고짜 반말로 소통하는 직원이 있어서 예의가 없다고 느꼈다. 내 기준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존댓말이 디폴트였기 때문에. 굳이 그 사람이 왜 그럴까 이해하지는 말자. 그냥 저런 사람도 있구나, 넘어가자. 이해하지 않음이 진정한 이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덮어놓고 인정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많은 부정을 보고도 못 본 채 하는 무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도 같다. 당연히 비인간적이거나 피해를 주는 행동에는 화를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무법천지가 될 수 있으니까. 사람에 대한 관심이 사람을 배척하기도 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을 포용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 누군가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 사실 시작은 같다. 타인에 대한 관심. 역시 옳고 그름에 답은 없는 것 같다. 그저 방향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긍정으로 작용할 수도, 부정으로 작용할 수도. 항상 반복되는 것 같기만 어차피 경험해야 한다면 긍정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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