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오늘의 글감 : 고장이 났거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는데도 계속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아직 가지고 있는 이유는요?
반년 전,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방이 더 좁아지면서 대부분의 물건들을 정리해야 했다. 먼지에 덮인 채 구석에 숨어있던 물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택도 뜯지 않은 옷, 이제는 입을 수 없을 것 같은 미니스커트, 민화를 취미로 즐기겠다며 구입했지만 한 번도 쓰지 않은 문방사우, 화실에서 썼던 물감과 기름, 더 이상 메고 다니지 않는 가방, 사용 기한이 한참 지난 화장품, 수명을 다한 스마트폰, 정체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
쓸모를 잃은 물건들을 정리하니 방이 휑해졌다. 그동안 방이 좁다고 생각했는데 더 넓게 생활할 수 있었음을 아쉬워하면서 다음 공간에서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와중에도 버릴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 사용처가 없음에도 여전히 새로운 내 방에 존재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모아온 편지들이었다.
4층 서랍장의 3층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던 투박한 신발 박스 안에는 중학생 때부터 받은 편지들이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에 받은 편지들과 재미로 작성한 롤링페이퍼들, 간단 내용이 작성된 포스트잇들. 아마도 생일 축하 편지는 선물과 함께 받았을 것이 분명한데, 쓸모를 다 한 생일 선물은 내 곁을 떠나서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고, 애초에 쓸모가 존재하지 않는 편지만 남아있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했다. 편지가 나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엄청난 의미가 있어서 신줏단지 모시듯 모아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펜을 들고 글을 써준 그 과정의 산물을 쉽게 버릴 수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온라인 소통이 활발해졌기에 조금 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종이에 적힌 추억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단순한 안부 인사도 있고, 4~5장에 걸친 이야기도 있었다. 내 성격에 대한 내용, 고민과 꿈, 앞으로도 잘 지내자는 형식적일 수도 있는 인사. 쓴 사람은 기억나지 않을 이야기를 보고 즐겼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정성 어린 편지를 쓴 적이 있는지 돌이켜 보이고 하고, 나의 무관심을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 발신자가 적혀있지 않은 편지는 과연 어떤 인연이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떠올리기를 실패하기도 했다.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각자의 삶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
보낸 사람도 잊었을 추억을 혼자 되새기며 훑어보다 한 편지에서 멈칫했다. 두 번 접힌 네모반듯한 하얀 편지지. 종이 바깥은 깨끗해서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고민하다 열어보았다. 생각했던 편지는 아니었다. 동아리 언니의 이야기를 마저 읽어나갔다. 또 다른 종이를 뒤적거리다 비슷한 편지가 손에 잡혔다. 펼쳐보았다. 첫 문장을 읽고 다시금 접어두었다. 대학생 때 동아리 오빠의 고백이었다.
편지를 받게 된 날이 가물가물 떠올랐다. 아마 도서관에서 근로를 하고 있을 때 잠깐 보자고 했던 것 같다. 오빠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불편한 감정이 있었던 나는 피했고, 조심스럽게 내 가방에 편지가 넣어졌다. 집에 돌아와서 읽었는지 학교에서 혼자 있을 때 읽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좋아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20대 초반, 그때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잘 몰랐고 누군가와 사귀는 것이 두려웠다. 성실하고 착한 모습이 좋다고 했지만 나는 나태하고 게으르고, 속으로 욕도 하는 사람이라 그건 내가 아닌 환상을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 실망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제대로 된 답변도 하지 않고 나는 그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했다. 그랬더니 정말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보게 된 편지에는 담담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자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좋아졌고, 일부로 더 만나고 싶어서 같은 수업도 신청했다고 했다. 한 교양 수업 때 난지도 공원으로 외부 탐방을 같이 나간 것이 가장 좋은 추억이라고도 했다. 사귀자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저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때는 내 불편함이라는 감정에만 쌓여 있었지만, 지금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직접 만나서 전달할 수 있었을지 상대방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머리와 마음이 생기게 된 것 같다. 싫다는 것을 드러내는 건 쉽지만 좋아함과 감사, 잘못함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 상대방에게 거절 받을 두려움이 있음에도 내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기적이었던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계속 연락을 시도하고, 여행 가서 산 선물을 주려고 기다리는 모습도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 그렇게 회피하는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까. 어리숙한 과거였다. 그때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지금은 다른 추억을 그려보았을까.
이미 흘러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만큼 기억과 감정은 휘발된다. 그래도 편지 읽기를 망설였던 것은 얼마 후에 그 오빠가 포함된 동아리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지금 편지를 본다면 불편한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이 됐다. 여전히 이기적인 이유였다. 상대방은 잊어버린 기억에 혼자 얽매여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기에 지나간 시간은 과거로 두고 과거의 미래가 현재가 된 삶을 속으로 응원하고 싶다. 단순한 안부 인사로 미안함을 표하기에는 그 당시에 진지했던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 마음으로만 안녕을 빌어야겠다. 대신에 많은 이야기를 남겨주었던,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친구에게는 잘 지내냐고 안부 인사를 용기 내서 보내봐야겠다.


GPT 피드백
점수: 8.5/10
강점:
- 감정의 흐름: 주인공의 감정 변화와 내면의 성장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독자가 주인공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게 합니다.
- 상세한 묘사: 구체적인 물건과 그와 관련된 추억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생동감을 줍니다.
- 구조적 흐름: 과거의 물건 정리에서 시작하여 편지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구조가 자연스럽습니다.
개선점:
- 문장의 간결성:
- 일부 문장은 다소 길고 복잡합니다. 간결하게 표현하면 더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 예: "수명을 다한 스마트폰, 정체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 → "수명을 다한 스마트폰과 잡동사니들."
- 반복 표현:
- "쓸모를 다한 생일 선물은 내 곁을 떠나서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고, 애초에 쓸모가 존재하지 않는 편지만 남아있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했다." 부분에서 '쓸모'와 '남아있는'이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이를 줄이면 가독성이 좋아집니다.
- 예: "생일 선물은 사라졌지만, 편지는 남아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 일관된 어조:
- "20대 초반, 그때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잘 몰랐고 누군가와 사귀는 것이 두려웠다." 부분에서 주어의 생략으로 인해 읽기 어렵습니다. 주어를 명시하면 더 자연스럽습니다.
- 예: "20대 초반, 나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잘 몰랐고 누군가와 사귀는 것이 두려웠다."
위 까지는 챌린지에 기록한 버전이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도 마저 기록을 해두려고 한다. 글을 쓰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계속 길어지기 때문에 되도록 한 주제의 생각으로만 추리려고 노력했다. 생각이 길어진 이유는 나는 왜 편지를 계속 보관하고 있었을까를 고민하면서 손으로 잡히는 물건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내 기록 저장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시작한 네이버 블로그, 습관 만들기와 홀로서기 도전을 하면서 함께 시작한 티스토리, 힘들면 도로하고 좋은 것은 기록하고 내 성장의 저장소인 노션, 나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자기효능감을 높여준 브런치.
꽤 오래전부터 네이버 블로그를 판매하라는 문의가 지속적으로 들어왔었다. 학생 때 몇백만 원은 꽤 큰 돈이었지만 그래도 팔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블로그를 하지 않는 시기였음에도 뭔가 추억과 고민의 과정들이 팔리는 것 같아서 꺼려졌다. 그렇게 객관적으로 가치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를 주면 내 기록들을 팔 것인가 생각해봐도 결론은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위안을 받고, 현재의 나를 담아두면서 계속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친구이자, 인생 선배, 멘토, 멘티였기 때문에.
기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태함으로 한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남기지 않았다. 1년 전 오늘의 나는 어땠을지 돌아보려고 했는데 23년에는 3월까지의 기록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25년의 내가 1년전의 나를 궁금해할 때 나는 오늘 이렇게 보냈노라고 보여줄 수 있도록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 가장 좋아하는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문장을 다시 적어보자.
기록은 그냥 놔두면 스쳐 지나가 사라져 버릴 일상의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평범한 일상이 기록을 통해 의미있는 사건으로 탈바꿈한다. 기록은 기억을 가치롭게 한다. 기록하는 사람의 삶에는 버려지는 시간이 적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시간을 살아도 일반 사람들보다 더 많은 날을 사는 듯한 효과를 누린다.
<메모 독서법>, 신정철
오늘의 글쓰기로 얻은 것
- 편지를 훑어보며 과거의 인연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했다.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용기내서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 [6/6 기록]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감동이라고 했다. 우리는 6월 내에 보기로 했다. 행동하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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