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한다, 고로 존재한다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5) 본문

세계 확장하기/독서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5)

점점이녕 2025. 9. 15. 20:53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176410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5) | 백온유 - 교보문고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5) | 오늘 한국문학이 마침내 도달한 가장 높은 끓는점 우리의 체온을 뜨겁게 달구는 일곱 편의 열망들한국문학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하고자 2010년 제정된 젊은

product.kyobobook.co.kr

 

 

독서 모임이 지정 독서라서 읽게 되었다. 단편 소설에 크게 관심은 없었는데, 어떤 이야기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는 했다. 책을 읽고 나서는 별 생각은 없었다. 소설은 역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많았고, 스토리는 이해가 되도 여기서 무엇을 얻어가야 하는지 잘 해석되지 않는 것들도 있었고. 작가 노트와 해설서도 있었지만 그것 자체도 어려웠던 것 같다. 뜻 모를 단어와 문장들. 화려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약간 ‘그사세’의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감수성이 부족한 탓일까. 그래도 모임을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최애의 아이

 

가장 임팩트 있었던 소설이다. 아이돌 유리를 사랑해서 유리의 정자로 임신을 하게된 우미.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사랑스러운 유리의 아이를 낳게 되는데, 텔레비전에서 그 유전자가 유리가 아닌 이상한 정치인의 유전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럭저럭 잘 지내는가 싶던 우미는 정치인을 대면하고 그 앞에서 아이를 던져 죽인다.

 

아이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고 부산물이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우상의 복제본. 하지만 복제가 아닌 오류였고, 그래서 제거되었다. 픽션이었지만 픽션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현실과 그렇게 다를 것도 없었기 때문에. 우미는 이상과 다른 현실을 맞닥뜨린다. 예쁜 우리의 아이가 아닌 못생긴 정치인의 아이. 많은 부모들, 아니 모든 부모는 건강한 아이를 원한다. 그리고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장애 검사를 한다. 만약 내 아이가 95%의 확률로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을 때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그 결정은 아이를 위한 것일까 나를 위한 것일까. 던져져서 죽은 것과 절단되어 낙태된 것은 과연 다른 죽음일까.

 

아이는 사랑의 산물일까, 아니면 철저히 이기적인 부모들의 산물일까. 적어도 한가지는 확실하다. 아이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 않았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

 

대화를 나누면서 사유리의 결정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된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사유리의 삶에 우리의 이해는 필요 없다. 다소 불편했던 것은 계속 결핍을 중심적으로 논의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없게 태어나게 하는 것, 태생적인 결핍. 어릴 때는 모른다고 하더라고 크면 행복할까. 사실 부모의 자격이 없는 부모들도 분명히 있고, 없으니만 못한 존재도 분명 많다. 무언가가 없는 것이 항상 좋지 않은 것은 아님에도 그들이 가진 것보다 가지지 않은 것에 집중하며 비상식이라던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불편했다. 그러는 한편 그들의 선택이니 존중해주자는 것도 어떻게 보면 무책임할 수 있었다. 내 일이 아니니까.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으니까. 개인적으로 사유리를 멋있다고 생각하긴 한다. 물질과 정신적으로 아이에게 헌신할 수 있다면 홀로 아이를 갖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혼란 속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보다는 강단이 있고 단단한 사람이라고.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그러한 사람들이 좋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그러나 가지고 싶은 것. 물론 이런 내 생각이 그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뭐가 옳고 그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 적어도 쉽게 판단하고 쉽게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시 세상은 부조리하다. 하지만 그래서 아름답기도. 내 생각보다 어떤 존재는 어려울 수 있고, 내 생각보다 어떤 존재는 행복할 수도 있다.

 

나의 최애는 나로하자.

 

 

 

# 반의반의 반

 

1등으로 선정된 작품. 할머니를 돌보던 딸과 손녀는 할머니가 숨겨두었던 5,000만원이 도둑질 당한 것을 알게 된다. 그 반만 있었으면 감옥에 가지 않았을 수 있다고, 그 반의 반만 있었으면 대학 등록금도 내고 유학도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딸과 손녀. 할머니에게 그 돈은 남편의 사망 보험금이었고 실버타운에 들어가 그나마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유일하게 부탁했던 식물을 죽인 딸과 손녀보다, 자신에게 헌신했던 돌봄사에게 더 애정을 주었던 할머니. 손녀에게 의심을 받는 돌봄사. 그럴리 없다는 할머니. 할머니의 인지능력 문제.

 

최애의 아이에 비하여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처음 돈이 등장했을 때 맥거핀일까 생각했는데,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부분에서는 나름 중요한 소재였지만 또 역시나 돈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고 느꼈다. 돈을 누가 훔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착각일 수도 있고, 실제로 누군가 훔쳐갔을 수도 있지만 돈이라는 트리거로 인한 그들의 생각들이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지 않았나.

 

할머니의 돈을 탐내는 딸과 손녀를 보면 파렴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할머니도 젊었을 때 그들에게 매몰찼다. 그럼에도 먼 집에서 할머니의 집까지 오가는 수고를 지속했다. 누구나 가족에게 아쉬운 것이 있지 않을까. 사실 너무나 평범한 가족이었다. 할머니는 과연 실버타운에 들어갔으면 행복했을까. 실버타운의 홍보 영상 속 노인들은 노쇠함에 지지 않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 하지만 거동을 할 수 없다면 여전히 제약은 존재하는 것이고, 그게 실버타운인지 요양원인지, 집인지 그렇게 중요할까. 어떻게 보면 희망을 희망을 남겨둘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의미를 잃은 것보다는 의미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조금 더 나을테니까.

 

책의 마지막에 있던 ‘영실이 요양보호사 수경에게 주던 애정에는 조금 더 많은 맥락이 필요했다’가 와닿았다. 할머니 영실은 자식과 손녀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수경에게 유일하게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분명 손녀 현진은 어릴 적 할머니를 우상했고, 먼저 손도 잡는 등 애정을 갈구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저 잡혔을 뿐이었다. 영실은 과연 자식들에게 수경만큼의 애정을 준 적이 있을까. 닭이냐 달걀이냐. 어쩌면 몸이 약해진 시기에서 누군가의 관심과 보호라는 필요성을 느꼈고, 그것을 충족한 대상이 가족이 아니었을 뿐. 수경은 과연 말과 핼동만큼이나 영실을 애정했을까.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에 충실한 것은 아닐까.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이듦, 노쇠, 가능성, 돈, 혈연, 불신, 기대, 의존, 갈망, 허무함, 자존감, 당당함. 희로애락. 결국은 많이 표현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이 그 순간과 과정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누군가 알아봐주길 기다리는 것, 챙겨주기를 바라는 것, 희망과 바램. 충족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기대보다는 스스로 베풀면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고독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일 수도. 삶이 혼자라는 것을, 육체가 시든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주변에 너무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면서 작게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그나마 괜찮은 삶의 방식인 것 같기도.

 

씁쓸하기도 하고, 익숙해져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외면하지 않기

 

그동안 따뜻하고 밝은 내용의 책만 보다가 어둡고, 불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다른 생각, 불편할 수 있는 대화들. 생각과 감정을 어지럽히는 시간을 굳이 가져야 했을까 후회를 하면서도, 삶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한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다고 하여 반대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눈을 감는다고 하여 앞에 놓인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회피일 뿐이다. 오늘 내가 배부르게 먹었다고 해도 세상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고, 편안하게 잠을 자고 고작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타인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많다. 불편함을 대면해서 다행이다.

 

상상속의 캐릭터들이 너무나 기괴하고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부모님에게 무조건적으로 바란 것은 없을까, 정작 잘해야 할 사람들에게 나쁘게 대한 적은 없을까, 나라는 존재도 모르는 사람을 우상으로 섬긴 적은?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고 넘어간 적은, 내 손가락의 티끌이 더 아팠던 적은? 잘 알지도 못하고 비난했던 적은? 너무나 많고 철저히 이기적이게 살아왔다. 누군가를 욕할 자격도 없을만큼. 그저 극적으로 표현했을 뿐이지 결국 내 삶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야기가 답을 내려 주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다. 굳이 답을 찾으려고 하진 않겠다. 불편한 생각과 감정, 혼란스러움을 마주한 것이 이 시간의 배움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회피하지 않았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생각들이 있고, 이런 세상들이 있다고. 역시나 나는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고. 사람과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느껴보자고.

 

불편한 감정과 혼란을 있는 그대로 견디는 시간을 배움으로 삼아야지.

'세계 확장하기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컨셉 언어 수업  (0) 2025.10.17
아무튼, 디지몬  (2) 2025.09.17
자유로부터의 도피  (6) 2025.07.05
에디토리얼 씽킹  (4) 2025.06.14
행복을 파는 브랜드, 오롤리데이 | 22.5.12 -  (0) 2022.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