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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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 예스24
한 시대의 명저에서 현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자아의 상실과 불안, 도피의 메커니즘을 밝힌 에리히 프롬의 대표작을 만나다인류가 자유에 내재해 있는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권위주의에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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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단순히 '자유'라는 단어가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넘어서, 그 자유가 개인에게 어떤 부담을 주는지, 그 부담이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 책이다. 프롬은 중세 사회의 붕괴 이후 개인이 느끼는 고독, 무력감, 불안이 어떻게 전체주의와 파시즘 같으 권위주의적 구조로 도피하게 만드는지를 심리적, 사회적으로 해부한다.
수백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인간은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물질적 부를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 하지만 내가 분석하여 보여주려는 것은 근대인이 아직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불안한 인간은 온갖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호의호식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근대인은 자유라는 이름 아래 외적인 권위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동시에 이전 사회가 주던 안정과 소속감을 잃어버리고 혼자가 되었다 이 '자유'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결국 그 고립은 다시금 의존과 복종을 갈구하게 된다. 이렇게 개인은 자유로부터 도피하며, 자신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구조 속으로 들어가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인간의 두뇌는 20세기아 살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심장은 아직도 석기시대에 살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독립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인간은 혼자이고, 인간 자신을 빼고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권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뎌내려면 그들에게는 신화와 우상이 필요하다. 인간은 파괴성과 증오, 시샘과 복수심 같은 무분별한 열정을 억누르고 힘과 돈, 독립 국가와 민족을 숭배한다. 인간은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부처, 구약의 예언자들, 소크라테스, 예수,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말로만 경의를 표하면서, 그 가르침을 미신과 우상 숭배의 정글로 바꾸어버렸다.
지적, 기술적 조숙과 감정적 퇴보 사이의 괴리로 말미암아 자신을 파괴할 위기에 놓인 인류는 그 위기에서 어떻게 자신을 구할 수 있을까?
자유의 두 얼굴, 독립성과 고립
프롬은 자유를 소극적인 자유(외적 업악에서 벗어남)과 적극적인 자유(자발적 자기 실현)으로 나눈다. 많은 사람들은 소극적인 자유를 얻었지만,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사회나 집단에 속함으로써 안도감을 찾거나, 강력한 권력에 복종하거나, 심지어 파괴적인 방식으로 세상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려 한다.
나는 과연 얼마나 자유롭게 살고 있을까.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안정과 소속감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자유롭지 못함을 한탄하고 있는 것은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자유로운 삶인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회사라는 시스템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자유로운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행할지 고민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롬이 말하는 자유의 두 얼굴을 접함으로써 묘한 두려움과 동시에 해방감이 밀려온 것 같다. 그 해방감이란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고 있음의 해방감은 아니라 지금의 답답한에 대한 이해의 해방감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답답함과 문제는 알지만 방법을 모르는 답답함은 분명 차이가 있다. 책을 해결책을 내려주지 않을 것이다. 삶에 답은 없기 때문에. 하지만 문제를 제기해 줄 수는 있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어느 누구도 대신 선택하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고독과 불안, 그리고 도피의 기제
프롬은 사람들이 고독과 불안을 견디지 못할 때 피학적(마조히즘적) 성향이나 가학적(사디즘적) 충동, 혹은 파괴성을 통해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을 보며 문득 우리는 얼마나 자주 타인의 시선과 평가, 혹은 사회가 규정한 성공이라는 틀에 자신을 맞추며 고통을 숨기고 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외부 집단에 속하거나 강력한 리더십에 의존하며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결국 자아는 상실하는 길이 아닐까.
피학증은 이런 목표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다. 피학척 충동의 여러 형태는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즉, ‘개체적 자아를 제거하고 자기 자신을 잃는 것’,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유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가정을 목표로 달려오는 모습 역시 사회가 만들어준 허상 속에 편입된 결과일 수 있다. 마치 주어진 규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전제 속에서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고 믿는 일들마저도 사실은 사회가 주입한 방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길과 반대로 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은 아니다. 규칙에 반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세상에 태어나고 국가과 문화, 사람들을 접하면서 사회화를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과연 내가 주체가 되어서 결정한 것들인지 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깊은 고민을 통하여 결정한 길(그것이 사회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더라도)이라면 분명 후회와 만족의 밀도는 다를 것이다.
적극적인 자유와 자발성
이 책의 주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근대인은 개인에게 안전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개인을 속박하던 전(前) 개인주의 사회의 굴레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개인적 자아의 실현, 즉 개인의 지적, 감정적, 감각적 잠재력의 표현이라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개인을 불안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고립을 참기 어려운 것이다. 개인이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피해 다시 의존과 복종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인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자유를 완전히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이 책을 예후보다는 진단-해결보다는 분석-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의 행동 방침에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전체주의적 경향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전체주의 세력을 극복하려는 모든 행위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프롬은 해결책으로 '적극적인 자유'를 제안한다. 단순히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자아는 실현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다. 사랑과 일은 이런 자발성을 실현하는 핵심 축이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면ㄴ서도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행위이며,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창조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방법이다.
자유와 책임, 안정고 불안,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회사라는 시스템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누리면서도, 동시에 나만이 목소리를 잃지 않고 적극적인 자유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외부의 기준과 평가 대신, 나만의 가치와 목표에 따라 갈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프롬은 이를 위해 끊임없는 자기 탐구와 자발적인 사랑, 창조적 활동을 강조한다. 결국 자유는 단순히 억압의 부재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세상과 건강하게 연결되는 적극적인 행위라는 점을 되새기게 된다. 시간을 내어 문제 의식이 느껴지는 책을 읽고, 해석을 하고, 나만의 생가을 적어보는 것 자체로 일종의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 아닐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어서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100% 이해란 존재하지 않은 것 같고, 단 한 문장이라도 나를 되돌아보는 문장을 발견했다면 좋은 독서이고, 좋은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내 자유를 타인에게, 시스템에게 맡기지 말자. 한 번 태어났아면 적극적으로 자유를 펼치면서 살아보자. 물론 주변의 인식을 완
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럴 때마다 불필요한 의식에 잡아 먹힌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우리가 창조적 활동을 통해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맺어야만 그것은 사람이건 무생물이건 비로소 우리 것이 된다. 우리의 자발적 활동에서 생겨나는 그 자질들만이 자아에 힘을 주고, 그리하여 자아의 본래 모습의 토대를 이룬다.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그 결과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보여줄 수밖에 없거나 하는 것은 열등감이나 무력감의 근원이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자기 자신이 아닌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고,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만큼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자유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고독과 불안을 직시하게 하고, 그 감정에 도피하지 않도록 직면하도록 이끄는 책이다. 지금까지 불안을 회피하려고 했고, 불필요한 감정을 왜 느끼는지 스스로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비하를 했던 것 같은데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기보다 직면하려고 한다. 자유와 불안은 뗄레야 뗼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의존하고 자유를 맡기면 불안은 없겠지만, 한 번 자유를 맛 본 이상 그것도 불가능할 것 같다. 앞으로는 '자유롭게' 살겠다는 다짐보다는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다짐을 해보자. 자유에 나만의 해석을 붙이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 행동이 진정 나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내 삶을 창조해 나가는 데 집중해보자. 때로는 도피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마다 동굴에서 나오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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