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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확장하기/독서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 22.1.15 -

by 점점이녕 2022. 1. 15.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 YES24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살고 있습니까?”치열한 세상에서 나답게 사는 비결,‘의미’를 찾아 흔들림 없이 살아가길 권하는 인생학 강의 치열한 세상에서 어떻게 나답게 살 수 있을까? ‘생각

www.yes24.com

독서의 목적

  • 자기발견 글쓰기를 하면서 '나는 나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로 살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만역한 생각만 들 뿐이었다.
  • 위 주제에 관련하여 추천 책이기도 했고 책 제목만 보아도 나답게 사는 방법을 알려줄 것 같아서 독서를 시작한다.
  • 목표는 나답게 살 수 있는 기준을 가지는 것, 시도해보는 것, 막연한 이 감정을 조금은 후련하게 만들 것.

# 22.1.14 (금)

📖 12/340

긍정심리학의 연구자 셀리그만 교수는 자신과 동료들이 우울증, 무기력증, 불안감을 치료할 수 있지만,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도록 돕는 일이 반드시 좋은 삶을 살도록 돕는 일은 아닙을 깨달았다.

  • 💬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중간 상태로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는 것. 과연 무엇이 있을까.
  •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삶이 아닐까? 좋은 삶이 항상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라면 평생 좋은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 유토피아를 찾는 것. 존재 하지 않는 것을 찾느라 불행해지지 말고 내가 가진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더 좋을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깨달음)
  • 애초에 나는 행복하고 즐거움을 쉽게 느끼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삶의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겠다. 사람마다 분명히 다르겠지. 행복하게 사는 것 -> 타인의 경험을 개선시키며 소소한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

 

행복 열풍에는 큰 문제점이 하나 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행복 산업은 계속 성장 중이지만 우리 사회는 과거 어느 떄보다 불행하다. 실제로 사회 과학자들은 슬픈 역설을 밝혔다. 행복을 좇는 일이 실제로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 💬 그냥 갑자기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19세기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말했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나으며, 행복한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행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

  • 💬 터미네이터. 행복한 꿈 속에서 살 것인가, 현실을 자각하고 불행한 현실에서 살 것인가. 꿈이라는 것을 모르고 현실에서 산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꿈일까 현실일까. 꿈처럼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나는 의미있게 살 수 있을까? 지금 당장 100억을 바라면 100억이 생기고, 좋은 집은 바라면 좋은 집이 생기고, 일을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회사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바로 이루어지는 삶이면 나는 만족하며 살 것인가? 뭔가 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과정은 필요 없고 바로 결과로 나오는 삶. 
  • 다이아몬드가 돌멩이처럼 많으면 다이아몬드가 아니라고 했다. 무언가 소중한 이유는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삶도 의미있는 이유는 한정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영속적으로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면서 살 수 있다면 삶이 과연 의미가 있을 수 있을지.
  •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생각.

# 22.1.15 (토)

📖 14/340

 남은 평생을 탱크 속에서 살면서 매 순간 행복하게 살기로 결정했다면 좋은 삶을 사는 것인가? 그 삶은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선택한 것인가?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 행복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 탱크 속 삶은 우리의 모든 욕구를 충족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탱크 속 행복한 삶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왜일까?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이 공허하며 거저 얻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노직은 말한다. 탱크 속에서 행복할 수도 있지만 행복해야 할 진짜 이유가 없다.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는 있지만 삶이 실제로 행복하지는 않다. '탱크 속을 떠다니는' 사람은 '눈애 잘 보이지 않는 하나의 방울'에 불과하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정체성도 계획도 목표도 없다. "우리는 어떤 일을 보고 느끼는 스스로의 감정보다 더 많은 것을 신경 쓰며 살아간다. 삶에는 행복 말고도 중요한 것이 많다." 노직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 💬 조금 의문이 드는 부분은 탱크 속이 가짜고 탱크 밖이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탱크 속에서 느끼는 행복은 가짜고, 탱크 밖에서 느끼는 행복이 진짜인이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탱크 밖에 진짜라고 생각하고 상처, 슬픔, 사랑하는 삶을 잃는 고통을 느끼는 것을 선택했지만 사실은 그것 또한 탱크였다면 과연 좋은 선택을 한 것일까?
  • 탱크 속에서 느끼는 행복이 공허하다고 했지만 그 사람이 가짜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탱크 속을 현실로 느낀다면 상관이 없는 것 아닐까? 공허하다는 것도 탱크 밖에서 바라보는 탱크 속의 감정이지, 탱크 속의 감정은 탱크 속에서는 현실이 아닐지.
  • 소중한 사람이 죽었을 때 나는 왠지 탱크 속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끄적여봤다.
  • 삶이 매순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공감한다. 이제 행복을 목표로 살지도 않을 것이고.

 

📖 16/340

행복을 넘어 무엇이 삶을 살 가치가 있게 만드는지 연구 중이다. 그들은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아냈다. 행복한 삶과 의미있는 삶은 다르다는 것.

 

한 예로 사회과학 연구에서 행복을 평가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개인에게 자부심, 열정, 관심 같은 긍정적 감정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지, 반대로 두려움, 초조함, 수치심 같은 부정적 감정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지 질문한다. 부정적 감정에 비해 긍정적 감정의 비율이 높을수록 더 행복하다고 본다.

  • 💬 내향적인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와 조금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내향적인 사람은 항상 자신을 의심하고 낮추는 편이다. 일반적인 감정의 범위가 있다면 평균 이하의 단계를 중심으로 잡고 왔다갔다할 것이다. 엄청나게 즐겁거나 행복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거의 자주 불안하고 걱정에 쌓여있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행복한 삶을 삶의 목적으로 정해버린다면 당연히 나는 잘못 살고 있고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 이런 사람들은 특히 행복에 목매지 않아야한다. 불가능한 것을 쫓으면 정말 불행할 뿐. 삶의 목적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야한다. 의미있는 삶도 목적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적어도 행복한 삶보다야 훨씬 낫다. 의미라는 것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게 부여할 수 있으니까. 감정과 관계가 없으니까.
  • 잠을 자는 것은 행복하고 컨텐츠를 만드는 것은 귀찮다면 평생 잠을 자면 행복할 수 있으니 잠만 자는 삶을 사는 것이 옳은가? 마약을 하면 행복하니 마약을 하며 현실 회피하는 삶이 좋은가? 감정 상태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이해하겠다. 삶은 순간의 감정보다 의미의 축적이 더 중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 

 

📖 18/340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에우다이모니아'는 잠깐 지나가는 긍정의 감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실제로 행동하는 무언가이다. '에우다이모니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도덕적, 지적으로 뛰어난 내면의 자질을 기르고 잠재력을 살려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했다. 즉 능동적인 삶이다. 자신의 일을 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 공동체에 참여하는 삶, 그리고 결국 재능을 낭비하기 보다는 잠재력을 실현하는 삶. 

 심리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차이를 이해했다. 그들은 '헤도니아'를 '행복'으로 정의한다면 '에우다이모니아'는 '착하게 살고 선행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심오한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자기 안에 있는 최선의 모습을 찾아 개발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훌륭한 인격을 지키는 삶을 뜻한다. 그러한 삶은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즐거움을 키우고 고통은 피하는 삶을 목표로 삼을수록, 깊이와 의미, 공동체가 결여된 삶을 살 확률이 높다." 한편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

  • 💬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퇴사를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고 혼자 일하는 것이 맞다고. 위 문장이 딱 그때의 내 상태를 표현해주는 것 같다. 고통을 피하는 삶을 살수록 공동체가 결여된 삶을 산다라.
  • 종종 왜 이렇게 까다롭게 태어났을까 하는 질문을 한다.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고 태어날 때 정해진다고들 한다. 물론 어느정도 성향이 바뀔 수도 있지만 그 바뀔 수 있는 범위도 정해져있다고 한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 부터 활발한 사람이 커서도 활발하고, 조용한 사람들은 커서도 조용하니까. 종종 특정 상황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성격이 나올 수도 있지만 '성향'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특성이 있다는 것과 동일하다. 사람도 좋아하고 인생이 즐겁다고 이야기하는 활발한 성격으로 태어났다면 이런 고민을 안해도 됐을 것 같기도 하다. 
  • 그렇지만 외향적인 사람들이라고 고민이 없지는 않겠지? 내향적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고민들도 있겠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향적이라는 것은 정말 외향적인 것보다 부족한 성향인 것일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우울하기도 하고 해결 방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내가 가진 것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옳다.내향적인 사람은 민감하고 걱정도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살피고 더 세심하게 일을 할 수 있다. 분명히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부족한 것에 집중하는 것도 내향적인 사람의 특성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자. 까다로운 나야, 의미있게 살아보자 🙏

 

 

 바우마이스터 교수 팀은 행복한 삶은 편안한 삶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즉 행복한 삶은 대체로 기분이 좋으며 스트레스와 걱정거리가 적다. 또 신체 건강하고,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삶이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대로다. 하지만 놀랍게도 행복만 추구하는 일은 이기적인 행동에 속한다. 즉 행복을 좇는 사람들은 '주는 사람'보다는 '받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의미 없는 행복'은 비교적 피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심지어 이기적이기까지 한 삶의 특징이다. 그런 삶은 만사 순탄하고, 필요와 욕구가 쉽게 충족되며, 어렵거나 벅찬 일은 피한다.

 반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면 '주는 사람'이 되기 쉬우며,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관여하고 기여한다. 삶의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을 사고 아이들을 돌보고 심지어는 투쟁하는 행위와도 관련이 있다. 연구자들은 투쟁이란 쟁취하고자 하는 신념이나 이상이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런 행위들을 하려면 더 큰 무언가에 투자해야 하므로, 의미 있는 삶은 행복한 삶보다 더 높은 차원의 걱정, 스트레스, 불안감을 동반한다. 한 예를 보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잘 알다시피 육아는 행복 수준을 낮춘다. 연구에 참여한 부모들에게서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즉 의미와 행복은 상충할 수 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일 역시 장래에 더 심오한 형태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 💬 나의 걱정, 스트레스, 불안들이 사실은 내가 의미있게 살거나 살기 위해서 투쟁 중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러면 정말 좋겠다. 그 대답은 내가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겠지.

# 22.1.16 (일)

📖 24/340

 의미는 대단한 '계시'가 아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신문을 파는 노점상에게 인사를 건네고 우울해 보이는 직장 동료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다. 사람들의 몸매 관리를 돕고 아이에게 좋은 부모나 멘토가 되는 일이다.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에서 감탄하며 별을 보거나, 친구들과 함께 '중세 기도회' 모임에 나가는 일이다. 고통을 겪는 참전 군인들을 위해 커피숍을 여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일이다. 식물을 돌보는 일이다.

 이런 행위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소하다. 하지만 모이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된다.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소박하지만 매우 확실한, 작은 의미에서부터 온다.

  • 💬 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쳐야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강박을 갖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의미를 만들자. 의미있는 삶이란 이런 작은 의미들의 연속일 것이다. 한번에 뻥 터지는 것이 아니라.

 

📖 34/340

듀런트는 편지에서, 의미의 전통적 원천이 사라진 일이 어쨰서 그토록 비극적인지 설명한다.  "천문학자들은 인간사가 별의 궤도에서 짧은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지리학자들은 문명이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 불안정한 시간에 불과하다고 하고, 생물학자들은 모든 생명이 전쟁 즉 개인과 집단, 나라와 연합, 종족 간 생존경쟁이라고 합니다. 또 역사학자들은 '진보'는 망상이며, 그 영광의 끝은 반드시 쇠퇴라고 이야기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의지와 자아는 유전과 환경의 무력한 노리개이며, 한때 청렴한 사람은 뇌가 일시적 발광을 일으킨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한편 철학자들은 진실에 대한 생각을 논증하는 데 집중해, 삶은 무의미하다는 진실을 논증했다. "삶이란 철학의 관점에서 크게 보면 지구상에 인간이라는 곤충의 일시적 번식, 즉 행성의 금세아물 습진이었다."

 

 

📖 38/340

종교학자 휴스턴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사람은 이따금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자문한다. 삶이 힘들 때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과 같다. 그렇지 않다고 결론 내리는 사람들은 자살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잠식해 들어오는 세월의 적막감, 즉 우울과 권태와 절망에 무릎 꿇음으로써 삶을 포기한다."

  • 💬 도저히 왜 사는이 이유를 몰랐던 적이 있다. 의식주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일도 하고 있었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평생 이렇게 살아야한다면 우울하기만 했다. 80-90까지 살 자신이 없었다. 길을 돌아다니면 노인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죽는다면 늙어서 죽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 22.1.17 (월)

📖 48/340

의미가 더는 바깥세상에서 오지 않을 때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 자유를 갖는다.

 

 카뮈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조리에 맞서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시시포스가 보인 태도다. 시시포스는 신들을 속이고 죽음의 신을 농락한 죄로 벌을 받는데, 자신의 운명을 애석해하거나 더 나은 삶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 하는 신들을 경멸하며 의미 있는 삶에 필요한 세 가지, 바로 저항, 열정, 자유를 실천한다.

 시시포스는 산기슭으로 돌아올 때마다 선택에 맞닥뜨린다. 포기하느냐 계속하느냐. 시시포스는 힘든 길을 택한다. 과업을 받아들이고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고통스러운 작업에 매진한다. 시시포스는 신들을 경멸하며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된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카뮈는 이렇게 말한다. 그 바위가 시시포스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시시포스의 노동은 쓸모없어 보이지만 그 일을 대하는 시시포스의 당당한 태도가 노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정상을 향해 가는 노력 그 자체만으로도 한 사람의 마음이 충만해진다. 시시포스는 행복했을 것이다."

  • 💬 나의 글은 나의 것이다.

 

📖 50/340

"나의 영혼이여, 불멸의 삶을 꿈꾸지 말되 모든 가능성에 도전하라."

 

세상에 굴복하기보다는 열정을 가지고 똑바로 마주하고, 현재의 고통과 상실, 노력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라. "신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카뮈는 세 가지 답을 했다. 살고, 행동하고, 쓴다"

  • 💬 더 격렬하게 온 시간을 나에게 투자하고 싶다. 앞서 나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좇으며 내 삶을 자취를 정리하고 길을 내고 싶다. 누군가는 목표가 워킹홀리데이, 대학원 입학일 수 있다. 사람마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방법은 다르다. 꼭 공간이 아닐 수 있다. 나는 정신적인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 내가 해외여행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까? 중요한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잠이 오는 것이 안타깝다. 글을 계속 읽고 싶다. 

 

📖 56/340

삶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

 

그들은 우리와 타인의 관계,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명감,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 나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와 맺는 관계에서 의미가 생긴다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장했다. 

 

네 가지 주제, 즉 유대감, 목적, 스토리텔링, 초월은 의미를 받치는 네 개의 기둥이었다.

 


# 22.1.18 (화)

📖 72/340

슈피츠가 연구한 아이들의 삶에 지속적이고 친밀한 유대를 맺을 핵심적 인물이 없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들 옆에서 아이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하고,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으며, 온전히 돌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제공할 사람. 아이들은 그런 유대감을 느낄 기회를 차단당했다. 그 때문에 몸과 마음이 병들었던 것이다.

 

슈피츠는 이 아이들이 자포자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삶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찍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을 대부분 마음의 상처 때문에 죽은 것 같았다. 현대 연구는 그 이유를 밝힌다. 과학자들은 만성적 외로움이 면역체계를 위태롭게 만들어 조기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살아남은 영아들은 몸과 마음의 병을 앓았다. 또 교도소 유아원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몸집이 더 작고 자신감이 없으며, 사회 적응력도 낮았다. 

 

나이가 어리든 많은 사람이 건강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데는 음식과 주거지 이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사랑과 관심, 유대감이다.

 


# 22.1.21 (금)

📖 90/340

비록 누군가에게 양질의 관계를 맺자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먼저 그런 관계를 시작하거나 서로 주고받는 일은 가능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에게 날선 행동을 하는 대신 따뜻하게 대할 수 있다.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의 눈을 피하는 대신 인사를 건넬 수 있다. 타인을 무시하는 대신 존중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 94/340

의미를 찾는 일은 단순히 철학적 탐구가 아니다. 자주 이야기되는 것처럼, 또는 내가 대학에서 생각한 것처럼 의미는 자기 안에서, 자신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대개 다른 사람들 안에서 찾을 수 있다. 타인에게 관심을 쏟음으로써 우리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유대감이라는 기둥을 세운다. 자신의 삶 안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면 우선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 💬 일단 독자를 생각하지 말고 나를 위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무색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또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것일까. 당연히 타인을 생각하는 것이 좋지만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서 타인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렵고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지...

# 22.1.22 (토)

📖 102/340

사는 이유가 꼭 거창해야 할까?

스탠퍼드 대학교 발달심리학 교수 윌리엄 데이먼에 따르면 목적에는 두 가지 중요한 면이 있다. 첫째, 목적은 '지속적이고 원대한 목표'다. 목표는 대부분 회사에 늦지 않거나 헬스클럽에 가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 일상적이고 단기적이다. 반면 목적은 항상 실천하는 일의 목표다. 목적은 앞을 향하는 화살로, 우리 행동의 동기이자 우리 삶의 구성 원리 역할을 한다.

  • 💬 목적과 목표의 구분

둘째, 목적은 세상에 대한 기여를 수반한다. 데이먼과 동료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목적은) 개인의 의미 추구인 동시에 대외적 요소, 즉 세상을 변화시켜 자신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인간의 권익 증진 또는 학력 차 줄이기 노력 같은 중요한 일은 물론 더 작은 차원의 일도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십 대들은 청소, 요리, 동생 돌보기 등 부모님의 일을 도우면서 더 큰 목적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목적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도 큰 의미와 만족을 느낀다. 회복탄력성이 강하고 의욕적이며 삶의 고락을 더 잘 헤쳐나간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매일 하는 일에서 목적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목적 없이 허송세월하는 경향이 있다. 

 

📖 110/340

자기 이해로 시작되는 삶

코스의 이야기에는 중요한 교훈이 담겨있다. 목적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과 자기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 우리는 저마다 강점, 재능, 지식, 경험이 다르고, 그러한 것들이 모여서 우리 정체성이 된다. 또 우리는 저마다 목적이 다르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치관, 즉 우리 정체성에 맞는 목적이.

 

저명한 20세기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정체성이 복잡하고 다면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체성은 한 개인의 특성뿐 아니라 그 사람의 출신, 목적, 또 사회와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적응력까지 포함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은 자신의 핵심 신념과 가치, 삶의 목표를 알고 있으며, 자신이 속한 집단과 사회가 자신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이해한다. 그런 사람은 청소년 시절 생기는 중요한 궁금증에 답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삶의 모든 단계에서 이 질문을 수시로 고민한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 모습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고 삶의 목표를 이룬 사람은 '절망감' 대신 '자아 통합감'을 느낀다고 에릭슨은 말했다.

 

 

📖 112/230

무의식적으로라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떠올릴 때 삶은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강점을 직장에서 활용할 때 자신의 직업이 더 의미 있다고 느끼고 결국 업무 능력도 그만큼 높아진다. 또 핵심 가치관과 관심사에 잘 맞는 목표를 좇을 때 더 큰 만족감과 유능감을 느낀다. 난관을 잘 극복하고 실제로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도 높다. 즉 더 큰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간다.

 

 

📖 114/340

외로웠고 고향이 그리웠지만 결국에는 적응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감정들이 예술가로서 쓸모 있는 무언가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안전지대에서 밀려나 소외를 경험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미국에 온 일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어린 시절 경험을 살려 작업하는 예술가로서 활동 방향을 정했다.

  • 💬 힘든 일을 겪어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 이유. 좋은 방식으로 승화하면 좋은 컨텐츠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 22.1.24 (월)

📖 116/340

"우리는 저마다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 능력을 발견하려면 시간이 걸리죠. 여러 겹의 층이 우리의 진짜 잠재력을 감추고 잇지만, 떄가 되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운명을 타고났는지 발견하는 거죠. 하누만처럼요."

  • 💬 나도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너무 답답하다.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없으면 어떡하지. 너무 운명론적인 생각일까.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 

 

만자리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으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멘토의 도움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낯선 땅 미국으로 간 경험은 자신의 세상을 넓히고, 또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아는 계기가 됐다.

  • 💬 내가 너무 빠르게 나를 알기 위해서 조급해서 그런걸까??? 이 막막함을 어떻게 해소해야할지 모르겠다. 누가 답을 알려줬으면. 아니면 가이드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 120/340

와튼스쿨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 자신의 직업이 의미 있다고 일관된 평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직업을 다른 사람을 돕는 수단으로 본다는 점이다.

 

📖 122/340

매일의 일상과 일에서 목적을 발견하는 능력은 의미는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케네디 대통령이 나사에서 만난 청소부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간의 달 착륙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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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자기 천직을 찾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목적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세상에는 매장 직원, 쿠폰 분류자, 회계 담당자,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고속도로 교통 통제원, 부모, 정부 관료, 바텐더들도 산다. 수많은 간호사, 교사, 사무원이 매일같이 해야 하는 문서 작업과 업무의 늪에 빠져, 때로 더 큰 목적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을 돕는 기회로 볼 때 우리의 삶과 일은 더 의미가 깊어진다. 우리는 저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낸다. 가족 안에서, 공동체에서, 직장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남길 수 있는 유산이다.

 


# 22.1.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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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취약성에 뿌리를 두되 지나치게 감정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번스는 발견했다. 번스는, 이야기는 '상처가 아닌 흉터'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스토리텔러의 머릿속에 오래 들어앉아 있어야 그 경험을 돌아보며 의미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번스는 스토리텔러가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기 인생의 경험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되고, 그 경험을 통찰하고, 과거에는 깨닫지 못했던 교훈을 얻는 모습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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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끈질기게 매달린 희망 덕에 얻은 건 정서적으로 멈춰 있는 나 자신뿐이었습니다." 결국 제프리는 자신의 희망이 현실 부정의 한 형태였음을 깨달았다. 자신과 부모님의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서 희망을 버리고 자기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응어리가 풀렸다.

  • 💬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구나. 헛된 희망은 오히려 현실을 부정하게 만드는 법. 때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은 쿨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하는 것 같다. 내가 가진 헛된 희망은 무엇일까. 
  • 하지만 상상으로 포기하기엔 이르다. 일단 이뤄보려고 최대한 노력은 해봐야한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고 포기할 수 있으니.

 

우리의 삶은 정해진 형태를 따라가지 않는다. "각자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다가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형태를 발견한다." 즉 우리의 정체성과 경험은 계속 변한다.

  • 💬 글을 쓸 때는 어떤 내용을 써야할 지 고민이 많다. 그러나 일단 쓰고 나면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와 생각을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쓰는 행위가 스토리를 만든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우리의 그 행위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의 조각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통일된 전체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삶을 일관된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일관성이 의미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우리 정체성을 정의할 때 필수다. 즉 이야기를 통해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지금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 💬 책을 꼭 만들어야겠다.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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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댄 맥애덤스

'내러티브 정체성',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만드는 내면화된 이야기. '진짜 나의 모습과 출신, 삶의 과정,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한 개인적 신화. 허구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내러티브 정체성에는 우리를 돕는 영웅과 우리를 해하는 악당이 있고, 극복해야 할 난관과 견뎌야 할 고통이 있다. 

  • 💬 영웅, 악당, 고통, 의미 -> 이 중 하나만 있다면 좋은 내러티브가 될 수 없다. 고통만 있다면 배설적인 글이 될 것이며 영웅만 있다면 의미없는 천사 이야기가 될 것이고 의미만 있으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 악당 = 내 안의 부정적인 나
  • 영웅 = 내 안의 멘토
  • 고통 = 악당이 만들어내거나 외부적인 위협에 의한 것
  • 의미 = 결국 고통을 이겨낸 나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는 주는 부분)
  • 결국 악당과 고통에 공감하고 영웅이라는 멘토를 얻어서 자신도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한 개인의 인생 이야기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보다 '이야기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맥애덤스는 말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좋든 나쁘든 삶의 가장 특이한 사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고 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건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완전히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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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 스토리와 실패 스토리는 우리가 우리 삶에 대해 만들어낼 수 있는 두 종류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이를테면 어떤 인생 이야기는 내면의 변화와 개인의 성장이 주를 이루는 반면, 어떤 이야기는 정체와 퇴행이 주를 이룬다. 어떤 이야기는 교감, 사랑, 친밀한 관계가 주제이고, 또 다른 이야기는 고독과 소외가 주제이다. 누구는 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이야기하고, 누구는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이야기한다. 또 누군가의 이야기에는 이런 주제들이 섞여 있다. 맥애덤스는 구원의 이야기를 포함해 자신의 삶이 의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주로 성장, 교감, 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을 갖게 해준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며 사랑받고 있고 점점 성장 중이며 또 어떤 장애물을 만나든 좋은 결과로 보상받으리라고 믿는다.

  • 💬 어떤 스토리를 선택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우리 삶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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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은 심리 치료사와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편집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다른 무엇보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며, 그동안 겪은 모든 고난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랜트와 더턴의 연구에 따르면 의미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스스로 후원자라고 말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한 이야기는 결국 의미 있는 행동을 낳고, 그들의 노동시간에 더 큰 명분을 부여했다.

  • 💬 참 신기하다. 지금 글을 쓰면서 겪고 있는 과정이다. 글쓰기 습관과 나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태도가 바뀔지 몰랐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피드백 받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는 나에 대한 목표가 꼭 디자인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동료들을 돕게 만들었다. 누군가 무엇을 물어볼 때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내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했는데.

# 22.1.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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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지금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지 이해하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서도 의미를 찾는다. 소설이든 영화든 라디오든 무대 위에서든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는 자신의 가치와 경험을 돌아보게 해준다.

 

📖 156/340 🎁

혼자 배에 남은 파이는 비슷한 과정을 경험한다. 우화를 통해 실제로는 마주하기 힘든 경험을 감당한다. 파이에게는 호랑이의 성장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호랑이가 주인의 훈련을 통해 폭령성을 길들이는 법을 배운 것처럼, 파이는 정신, 감정, 신체를 단련해 바다에서 몇 개월간 살아남는다. 그리고 마침내 멕시코의 한 해변에 도착한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 💬 최근 글을 쓰면서 회사에서 얻는 것이 많고 나는 생각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답이 나왔다 . 그리고 다시 고민이 되었다. 나는 마인드와 상황이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쓰고 싶었는데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어서 전달이 안 될 것 같았다. 물론 1차로는 나를 위한 책을 내자고 생각했지만 욕심이 많아서인지 그래도 읽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용기도. 
  • 그런데 또 쓰면서 생각해보니 저런 결론도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낸 결론이었다. 다른 사람들로 자신의 환경을 돌아보면서 내가 작은 거스름을 크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히려 결론이 나는 하등 의미없는 사람이고 인생도 쓰레기라고 나왔으면 오히려 무의미한 글이 되지 않았을까. 갑자기 다행이다. 좋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스토리텔러들은 청중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온통 자기 이야기만 해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이야기는 공기 중으로 뻗어나가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자기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 💬 오늘도 스토리텔링을 보면서 좋은 깨달음을 얻고 간다. 

# 22.1.30 (일)

📖 166/340

하찮은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 삶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을 키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광활하고 불가해한 우주 안에서 나 자신이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느끼는 극도의 겸허함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안에 깊고 강한 의미를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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